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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24.com
당신이 알고 있는 뛰어난 여성 과학자의 이름을 세 사람만 말해보라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아마도 나는 퀴리 부인의 이름을 얼른 말해놓고는 그 다음은 머뭇거릴 것이다. 또 누구 없나? 그러나 한참 생각해 봐도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이름들은 뉴턴, 갈릴레오, 린네, 다윈, 아인슈타인 등 하나같이 남성들뿐이다.

따라서 위 질문은 열혈 페미니스트가 학문 분야, 특히 과학계에 있어서의 성적 불평등에 대한 연구를 위해 작성한 설문조사에 포함시킨 한 문항쯤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지구상에 남아있는 최후의 생물학적 미개척지의 하나인 열대의 우람한 나무들의 우듬지를 오르내린 여성 생물학자 마거릿 로우먼(Margaret D. Lowman)이 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나눠준 설문지에서 이 질문을 던졌는데, 나처럼 마리 퀴리를 적은 학생도 있고 거기에 레이첼 카슨(생태학자로 그 유명한 <침묵의 봄>의 저자)의 이름을 덧붙인 학생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빈칸으로 비워두거나 혹은 “아는 사람이 없음”이라고 썼다고 한다.

예상되었지만 실망스러운 이러한 결과를 앞에 놓고 그녀는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과학계, 그 중에서도 특히 생물학, 또 그 중에서도 식물학에선 여성들이 왜 이렇게 드문가?

2.

지난 20년 동안 열대 우림의 우듬지 연구에 바친 자신의 삶과 모험담을 담고 있는 마거릿 로우먼의 저서 <나무 위 나의 인생>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그녀 자신의 대답을 담고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자연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야생나비를 수집하던 수줍은 소녀가 어떻게 열대 우림 우듬지 생물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는 과학자자가 될 수 있었을까? 분명 그녀가 이러한 위치에 이르기까지 극복해내야만 했던 난관은 쉽고 가벼운 것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여성으로서 말이다. 이 책에는 그러한 이야기들이 재미있는 일화와 함께 매우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있다.

그녀가 책에 언급하고 있는 것에 따르면, 독충이나 뱀에 물리거나 또는 나무 위에서 떨어져 부상당하는 등 현장 조사와 연구를 위하여 때로는 목숨까지도 걸어야 하는 위험들이 바로 생물학자들이 직면하는 가장 큰 난관이다.

또한 실험지의 숲 바닥에서 돋아나는 나무들의 새싹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관찰하고 측정하기 위해서 수십 수백 아니 수천 시간을 숲 바닥에 엎드려 기어다니면서 수만 개에 달하는 알루미늄 명찰을 하나하나 달아주는 일은 웬만한 체력과 끈기로는 견디기 힘든 노역으로서, 체력과 인내심이야말로 생물학자들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자질임을 깨닫게 한다.

그런데 그녀는 결혼을 하면서 겪어야 했던 가사와 육아에 대한 의무와 과학에 대한 열정 사이에서 벌인 힘겨운 줄타기가 이러한 물리적 난관들보다 훨씬 더 큰 어려움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단순히 여성이라는 사실 때문에 겪어야만 하는 이러한 심리적 위험이야말로 여성들이 과학자가 되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난관일지도 모른다. 특히 그녀가 결혼생활을 하였던 보수적인 호주의 변방에서는 그녀의 재생산 능력이 그녀의 과학정신보다 높게 평가되고 그녀에게 부과된 가사에 대한 의무가 그녀가 꿈꾸는 과학에 대한 열정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졌기에 그녀가 느낀 좌절감은 더했으리라.

마치 1980년대 중반 호주의 농촌을 휩쓴 유카리나무 잎병처럼 과학자가 되려는 그녀의 꿈을 가로막고 있는 이러한 답답한 현실에서 그녀를 구해준 것은 미국의 모교에서 제안한 6개월간의 방문교수 자리였다.

남편은 호주에 남겨둔 채 아이들 둘을 데리고 미국으로 과감하게 건너온 그녀는 연구를 계속하며 미국과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숲에서 나무들의 우듬지를 오르내리면서 자신의 삶을 다시 발견한다. 이로 인해 결국은 남편과 이혼을 하게 되지만 숲과 그 숲의 나무들과 결혼한 생물학자로서 그녀의 삶은 생명력이 넘쳐나는 푸르름이며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티끌만큼의 후회도 없다.

책의 마지막에서 그녀가 결론 삼아 적고 있는 다음과 같은 말에 우리가 깊이 공감을 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우리에게 던졌던 질문에 대한 그녀 자신의 대답일 터인데, 그 대답이 열혈 페미니스트의 열변보다 더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은 그녀가 통과해온 삶이 이를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의 인생 여정을 통해 획득한 가장 뜻깊은 통찰은 불평을 하든, 소리를 지르든 똑같은 힘이 들지만, 그 결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다르다는 것이다. 불평을 하는 대신 소리 지르는 법을 배우라. 그것이 내가 배운 가장 값진 가르침이었다.”

3.

그렇지만 <나무 위 나의 인생>에서 그녀가 내지르는 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다. 아마도 가장 고통스러운 시절이었을 호주 농촌에서의 결혼생활조차도 그녀는 즐거운 기억들로 추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곳의 아름답고 광활한 대지와 숲이 전업주부와 과학자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던 그녀의 생활에 큰 위안을 주었던 것 같다.

나는 그녀의 이러한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이야말로 오늘날 남성들로 둘러싸인 과학의 숲에서 한 그루 우듬지 나무로 그녀가 우뚝 서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숲의 음지에서 싹을 틔워 35년이 지나도록 겨우 5인치밖에 자라지 못하지만, 마침내는 숲의 우듬지 나무로 성장하여 숲의 모든 나무들을 눈 아래 두는 내음성 나무의 그 타고난 기다리는 능력처럼 그녀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이야말로 그녀를 세계적인 생물학자로 키워준 숨은 공로자인 것이다.

나무 위 나의 인생

마거릿 D. 로우먼 지음, 유시주 옮김, 눌와(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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