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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진중권의 책을 이렇다 저렇다 설명하고 평가하기에는 약간의 두려움이 앞선다. 그의 '독설'이 내가 쓴 글에 쏟아부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대담한 용기와 그 용기를 탄탄히 뒷받침해 주는 단단한 지적 토대에 놀라게 된다.

이 책 <폭력과 상스러움>은 진중권의 냉철한 현실 비판 의식과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문체가 극명히 드러나는 사회 비판서이다. 작가는 신문, 잡지 혹은 책에서 우연히 마주친 구절들의 인용과 그에 대한 코멘트로 이 책을 구성하였다고 한다. 그는 우리 나라의 모습을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지적한다.

"우연히 스크랩한 글 쪼가리들을 뒤적이다가 그 속에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이념의 그림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우리 사회의 지배적 망탈리테(mentality)가 정치적 국가주의, 경제적 자유지상주의, 문화적 보수주의의 세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이 작업을 통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이 세 가지 구조적 특징들은 거대한 한국 사회 전체를 보여 주고 있을 뿐 아니라, 사소한 미시 구조 속에도 그대로 반영된다는 것이 이 저자의 논지이다. 예를 들면 '왕따'나 '짝짓기'와 같은 아이들의 하찮은 놀이 속에도 이러한 사회적 구조가 반영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정치적 국가주의는 '괴상한 집단주의'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집단과 하나가 되는 한에서만 개체는 안전하다. 그리하여 부조리한 실존들은 괴상한 집단주의 속에서만 구원을 찾고, 필사적으로 자기를 집단과 동일시하려 한다." 한 개인적 존재는 이 집단 안에서만이 평온을 찾을 수 있으며, 여기서 벗어나는 존재는 왕따 취급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은 집단 중심 사회는 또한 이기주의적인 속성까지 지닌다. 전체적인 폭력과 억압을 휘두르며 자기에게 포함되지 않은 희생양인 '왕따'를 찾아가는 것이다. 집단적 공동체는 이 희생양에게 가시적, 비가시적 폭력을 행사하면서, 자기들의 독단적 의식을 공고히 한다. 이 국가주의, 집단주의는 폭력에 대해서 너무나 관대하다.

그러면 우리에게 있어 자유는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의 '자유'란 오로지 "경제적인 자유,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로 존재할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민주의 공존 체제를 찾아보기 어렵다. 저자는 "자유와 민주는 서로 보완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 두 요소가 다양한 형태로 결합하여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자유의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풍토 덕분에, 자유와 민주가 결합하여 다양한 정치적 방향을 수립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자유주의의 형성을 위해서 진보주의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자유주의의 요소를 제것으로 하여, 진보의 본질을 배반하는 답답한 보수성"을 벗어나길 촉구한다.

그 방법으로써 개인을 자율적 주체로 해방시킬 것을 역설한다. 그리고 "개인들이 자유로운 소통의 망을 구성해, 거기서 얻어지는 자발적 합의로 '국가주의'라는 허구적 공동체를 '사회 정의'와 '연대성'에 입각한 실질적 공동체로 전환시킬 것"을 주장한다.

그는 "침묵하지 않는 강준만은 어떤 의미에서는 최후의 근대적 지식인"이라고 평하면서, 새로운 책임감을 갖고 자기 할 말을 똑바로 할 수 있는 지식인의 선구적 역할을 강조한다. 그리고 진정한 정체성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인간 관계의 망이 답답한 구속으로 작용하는 시대에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관계의 유형을 만들어 내어 정체성으로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다.

저자는 이러한 역할 수행자로서의 작가들의 임무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지적을 한다. 그는 "때로 작가는 사회에 책임을 지기 위해 문학을 현실 참여의 무기로 삼아 정치적 앙가주망을 해야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작가들이란 어떤가? 그가 말하는 대로라면 "우리들의 찌그러진 영웅"들에 불과하다. 사회적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그들 개인의 멘탈리티보다 특정 인간들의 집단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면서 작가랍네 큰소리친다.

이 책을 소개하면서 시인 노혜경은 진중권의 매력을 "궂은 싸움에서 양비론을 택하지 않는 용감함, 다수가 몽매할 때 과감하게 말하는 것"이라고 평한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어색한 양비론을 벗어 던지고, 자기의 목소리를 과감히 내는 진중권. 그의 거친 입이 있기에 이 사회가 자기의 환부(患部)를 발견하고, 그것을 도려내어 새 살을 돋게 하는 발전적 지향점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

폭력과 상스러움 -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진중권 지음, 푸른숲(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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