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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대에 있어서 지배 계급의 사상이 바로 지배 이념이다. 즉 사회의 지배적인 물질적 권력을 소유하는 계급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적인 정신적 권력을 가진 것이다. 물질적 생산을 위한 수단을 수중에 가지고 있는 계급은 동시에 정신적 생산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정신적 생산을 위한 수단을 갖지 못한 사람은 그것을 소유한 자에게 대개 예속된다. 지배 사상은 지배적인 물질적 관계의 이념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즉 이념으로 표현된 지배적인 물질적 관계인 것이다. 한 계급을 지배 계급으로 만드는 이 관계는, 말하자면 그들의 지배사상인 것이다. - 마르크스ㆍ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왜 정부는 언론 통제, 방송 장악을 포기하지 않는 걸까? 두말할 것 없이 그 직접적인 이유는 "국민의 눈과 귀를 막기 위해서"이겠지만 보다 근원적인 배경에는 지배 이데올로기 메커니즘이 도사리고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밝혔듯이 "사회의 지배적인 물질적 권력을 소유하는 계급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적인 정신적 권력을 가지고 있고, 물질적 생산을 위한 수단을 수중에 가지고 있는 계급은 동시에 정신적 생산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 결과 정신적 생산을 위한 수단을 갖지 못한 사람은 그것을 소유한 자에게 예속되는 것이다."

굳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입을 빌지 않더라도 물질적 권력과 정신적 권력의 유기적 관계를 우리는 70~80년대에 온몸으로 체득한 바 있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지금, 집단기억의 형태로 무의식 속에 수납되어 있던 비극의 역사가 판도라의 상자를 부수고 다시 뛰쳐나오려 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KBS 보신각 타종식 왜곡 방송은 그 징후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프로파간다로 지배 이데올로기 확산

지배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대중매체란 사실은 노암 촘스키, 하워드 진 등의 저술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노암 촘스키는 지배권력의 조직적인 프로파간다(선전, 선동)가 대중을 어떤 식으로 기만하고 세뇌하는지 지속적으로 폭로해 왔다.

자, 프로파간다 산업은 그저 재미삼아 수십억 달러를 쏟아 붓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이미지를 주입하는 일이고, 사회 통제 수단을 부과하는 일입니다. 민중을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늘 두려움을 유발하는 것이고 두려움의 구체적 대상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 노암 촘스키,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촘스키가 말한 프로파간다 산업은 우리에게도 더이상 낯설지 않다. 사실상 대기업의 광고가 이미지 정치를 대행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다. 그것은 정권 교체 이후 대기업들이 쏟아낸 CF를 일람(一覽)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정권 교체 이후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는 대기업 CF들은 예외없이 노무현 정부 시절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장밋빛으로 물든 외피 안을 장식하는 것은 산업화 시대에 대한 향수, 강요된 애국주의, 획일화된 성장주의 같은 퇴색한 이미지들뿐이다.

한국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                   

그렇다면 도대체 한국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무엇일까? 진중권씨의 말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국가주의와 자유지상주의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짝짓기 놀이를 하는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다. 어른들 역시 거시적 차원에서 짝짓기 놀이를 한다. 가령 ‘국가주의’라는 집단주의 이념과 ‘자유지상주의’라는 극단적 이기주의. 실제로 우리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이 두 요소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바로 이것이 우리 사회의 게임 규칙이다. “한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라는 마르크스의 말처럼, 국가주의+자유주의의 이념적 블록은 한국의 지배계급을 이루는 두 세력의 연합으로도 존재한다. 가령 국가주의는 일찍이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은 군부의 이데올로기, 자유지상주의는 이들의 권력 밑에서 복무했던 테크노크라트들의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신이 자기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듯이 지배계급은 사회의 성원들을 꼭 자기들의 형상대로 찍어내는 것이다. (....) ‘국가주의+자유지상주의’라는 우리 사회의 지배이념은 일제의 식민통치를 받은 후 미국의 영향 아래 발전해온 한반도의 불행한 역사의 그림이라 할 수 있다. - 진중권 <폭력과 상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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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앞서 언급한 대기업들의 CF 속에도 국가주의(집단주의, 애국주의)와 자유지상주의(극단적 이기주의, 성장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듯하다. 아무튼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신이 자기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듯이 지배계급은 사회의 성원들을 꼭 자기들의 형상대로 찍어내려 한다"는 진중권씨의 말이 피부에 절실히 와닿는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평소 대한민국 정체성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한나라당이 자랑하는 그 정체성이란 도대체 뭘까? 혹시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하나? 그렇다면 과연 한나라당은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가슴 깊이 존중하고 있는 걸까?

덧붙이는 글 | 진중권, <폭력과 상스러움>, 푸른숲, 2002
가격 12,000원



폭력과 상스러움 -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진중권 지음, 푸른숲(2002)


태그:#언론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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