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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우리는∼ 노무현을 사랑합니다."

'붉은 악마'와 '노사모'. 그들은 운동장과 정치판에서 당당하게 응원 구호를 외치고 율동을 하고 사랑을 고백한다. 한국 축구와 정치를 바꾸려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아우성이고 몸부림이다.

그들은 직접 그라운드와 정치판에 뛰어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선수'와 '후보'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절망에 빠진 한국 축구와 정치를 사랑하고, 더 간절한 마음으로 절망의 벼랑 끝에서 희망을 길어올리는 '전령사들'이다.

'정지환의 인물파일'에서 개인적 인물이 아닌 집단적 인물을 다루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월드컵과 대선이라는 '큰 경기'를 앞둔 이 두 '집단적 인물'의 6가지 닮은 점을 분석해봤다.

▲ 붉은악마는 한국축구가 허무주의와 패배주의에 휩싸여 있던 상황에서 절망의 박토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1. '구경꾼과 동원의 대상'에서 '참여자와 개혁의 주체'로 나섰다

동원의 대상에서 개혁의 주체로!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구경꾼에서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자로!

붉은 악마(국가대표 축구팀 서포터즈)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가 우리 사회에 던져준 가장 큰 화두가 무엇인지 말하라고 하면, 나는 이 두 가지를 제일 먼저 거론하고 싶다.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이든 결과론적인 것이든, 그들은 '참여의 사회학'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사실 그 동안 우리는 '동원의 사회학'을 무비판적으로 학습했던 모범생(?)이었다. 교장 선생님의 일방적인 훈화와 "충성"이라는 구호가 전부였던 아침 조회, 애향단 깃발 아래 한 줄로 등교하던 시골학교의 학생들, 외국 원수가 방한하면 수업을 중단한 채 태극기를 들고 연도에 도열했던 서울학교의 학생들…. 그것은 우리의 일상적 추억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뒤에도 군대(혹은 감옥), 예비군, 민방위, 반상회가 우리를 기다렸다. 그것은 배타적 애국심과 내재적 복종을 강요한 '군국신민(軍國臣民)'의 훈련과정 그 자체이기도 했다. 99.99%의 압도적 찬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체육관 선거'는 또 어떻고!(그 시절 나는 대통령은 반드시 박정희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세상은 바뀌기 시작했다. 참여연대, 자치연대, 시민연대 등의 명칭이 붙은 '시민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며 새마을운동본부,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자유총연맹 등의 '관변단체'를 대체하기 시작했고, 생활운동, 생활정치, 생활체육 등의 단어가 낯설지 않은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붉은 악마와 노사모는 바로 그런 시대적 흐름을 스포츠와 정치에서 구현한 상징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응원단과 정치조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치어 리더가 주도하는 응원단에 참가한 회사원·은행원·학생 등이 있었고, 관광버스가 실어 나른 전당대회의 평생동지(5공화국 당시 민정당 당원의 별칭)와 월계수(6공)·나사본(문민정부)·연청(국민의 정부) 등의 선거조직이 있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발적인 응원단과 진정한 의미의 평당원이라고 하기보다는 금력과 권력으로 동원되거나 수동적으로 참여한 '구경꾼'과 '박수부대'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붉은 악마와 노사모는 그런 조직과는 완전히 차원을 달리한다. 노사모는 회원들이 자기 돈을 써가며 활동한다는 점에서 '돈 먹는 하마'로 알려진 기존의 관변단체나 선거 사조직과 다르고, 붉은 악마는 경기가 끝난 뒤 주변을 청소한다는 점에서 동원된 응원단이나 난동을 부리는 훌리건과 다르다.

'자발성의 미학'을 구현하고 있는 붉은 악마와 노사모의 사회적 의미를 단순한 '신드롬'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차원에서 읽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 '노사모'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장을 축제의 공간으로 만들었거니와, 실제로 그들은 축제를 만들고 즐길 줄 아는 능력이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2. '신드롬'이란 용어까지 생겨날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붉은 악마 신드롬'과 '노사모 신드롬'은 이제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됐다. 아울러 이들과 관련된 분야에서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는 등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붉은 악마와 관련된 월드컵에서는 '방송가 스타'를 빼놓을 수 없다. SBS의 송재익 아나운서-신문선 해설위원 복식조가 상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환상콤비'로 불리는 두 사람은 '그라운드의 음유시인'이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특히 감칠맛 나는 언어 구사로 인기를 얻고 있는 송재익 씨는 팬클럽까지 생겨났는데, 다음에 소개하는 '송재익 어록'은 인구에 회자되며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 코너킥, 응집력이 없는 게 마치 안남미로 지은 밥 같아요."(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세트플레이가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하자) "오늘 저 주심이 카드를 안 가져 왔나 봐요." "저는 저 주심의 주머니를 뒤져보고 싶네요."(잉글랜드와 평가전에서 심판이 반칙 휘슬을 잘 불지 않자 신문선 씨와 나눈 대화) "홍명보가 없는 한국팀, 막대기 없는 대걸레예요."(19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 당시 한·일전이 잘 안 풀리자)

송재익-신문선 씨의 인기는 이제 중계방송도 과거의 "한 사람 제치고, 두 사람 제치고, 슛- 골인!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식의 딱딱하고 단조로운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이제 중계방송에서도 인생유전과 시대정신을 논하는 격조 있는 해설을 원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송재익 씨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독일이 우승을 차지하자 "독일 병정들이 FIFA 컵을 안고 고국으로 돌아가면 나라가 통일되어 있을 겁니다"라는 즉석 멘트를 하며 분단된 조국이 생각나 목이 메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노사모와 관련된 민주당 국민경선 당시에도 '인터넷 스타'가 탄생했다. 정치혁명과 더불어 언론혁명을 일으킨 <오마이뉴스>의 동영상 생중계 당시 해설자로 나선 정치평론가 유창선-김광식 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특히 구수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해설로 네티즌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유창선 씨는 '인터넷 언론계의 신문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편 유창선-김광식 씨의 해설 스타일을 프로야구 해설자인 하일성 씨와 허구연 씨에 비유하는 네티즌도 있었다.

붉은 악마와 노사모의 아류(亞流)도 덩달아 등장했다. '백의천사' 'KTF 응원단' '창사랑'(이회창 지지 모임) '민사랑'(김민석 지지 모임)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응원방식이나 활동방식이 어디까지나 원조(元祖)인 붉은 악마와 노사모가 이미 구축해 놓은 것을 표준으로 삼고 있음은 물론이다.


3.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절망의 끝에서 희망의 씨앗을 뿌렸다

노사모의 탄생은 한 정치인의 '처절한 패배'에서 비롯됐다.

2000년 4·13총선에서 지역주의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며 부산에서 출마한 노무현 후보가 낙선하자 수많은 네티즌들이 그의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눈물의 편지'를 올리기 시작했다. 지역주의의 굴레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한국정치에 절망을 느낀 그들은 '바보 노무현'을 통해 한국정치의 희망을 만들기 위한 대장정에 들어갔다.

그리고 2년만에 그들은 한국정치의 명예혁명을 이끈 '태풍의 눈'이 되었다. 특히 '3·16 광주혁명'은 정치에 대한 국민 대중의 냉소주의를 일거에 걷어내 버렸다(나는 당시 그 혁명을 이끌었던 '무명용사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들의 곡진한 사연과 비사를 소개할 생각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에 놀란 젊은이들은 다시 '눈물의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고, 사회학자들은 그들의 실험을 "정치적 허무주의를 극복한 긍정적 사례"로 평가하기도 했다.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탄생한 붉은 악마가 단시간 내에 전면으로 부상한 과정도 노사모와 비슷하거니와, 그들 역시 한국축구가 허무주의와 패배주의에 휩싸여 있던 상황에서 절망의 박토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붉은 악마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홍상혁 씨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네덜란드에 대패한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축구 K리그가 예상치 않은 열기로 폭발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분석한 바 있다.

(1)선진구단 운영을 선보이며 신선한 바람을 주도한 수원삼성 블루윙즈의 창단 (2)경기결과 산정방식과 리그 운영방식을 흥미 위주로 바꾸고 지역 연고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공격적 마케팅의 추진 (3)축구장 분위기를 록 공연장을 방불케 하는 열정의 공간으로 바꾼 10대에서 30대 사이의 젊은 서포터즈의 등장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분석틀을 노사모에 적용해보면 신기하게도 다음과 같이 그대로 들어맞는다.

(1)대권·당권분리와 국민경선제를 수용하며 정치권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온 민주당의 변신 (2)제주도를 '한국의 뉴햄프셔 주'로 만든 지역순회 방식과 엎치락뒤치락하는 순위다툼으로 흥미를 유발한 중간결과 발표방식을 도입한 국민참여경선제의 추진 (3)썰렁했던 정치행사장을 축제의 장으로 만든 20대에서 30대 사이의 젊은 노사모 회원의 등장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젊은 세대를 주축으로 하고 있지만 일가족이 함께 참가할 정도의 광범한 참여폭, 인터넷을 매개로 삼아 정보를 공유하는 네트워크 방식, 선수·정치인과 팬들의 교감을 통해 기존의 체육·정치문화를 바꿨다는 점에서도 붉은 악마와 노사모는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4. 소신과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뛰는 '선수'를 '뚝배기'처럼 지지했다

고사성어로 본 노사모와 붉은 악마
'모수자천'과 '빈자일등'


붉은 악마와 노사모의 성격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자발적 참여'와 '지극한 정성'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에 소개하는 두 개의 고사성어를 통해 우리는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볼 수 있다.

<사기(史記)>에 나오는 '모수자천(毛遂自薦)'은 "스스로의 재능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천거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조나라가 진나라의 침략을 받아 망국의 위기에 놓였다. 조왕은 초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기로 하고 사신을 파견했다. 중대과업을 부여받은 사신은 유명하고 실력 있는 인재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때 모수(毛遂)라는 무명의 인사가 자신을 천거했는데,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비웃었다. 그러나 결국 초나라의 지원을 받아내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사람은 모수였다.

<현우경(賢愚經)>에 나오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은 "가난한 자가 정성을 다해 밝힌 등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도에 난타(難陀)라는 한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워낙 가난해서 부처님께 공양할 등불이 없었다. 그녀는 어렵게 모은 한 푼으로 가까스로 기름을 사서 등불을 밝혔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호화롭게 치장하고 기름을 가득 채운 부자들의 등불은 시간이 흐르면서 모두 꺼졌지만, 난타가 켠 등불만은 꺼지지 않고 어둠을 밝힌 것이다. 그 등불에는 기름보다 더 소중한 정성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붉은 악마는 서포트해야 할 태극전사(국가대표)와 지역연고 클럽의 선수(지역대표)가 있고, 노사모는 지지하고 지원해야 할 노짱(노무현에게 붙여준 노사모의 애칭)과 개혁적 정치인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의 지지와 지원의 방식은 과거 혹은 타인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성격을 달리한다.

한국축구와 한국정치가 슬럼프에 빠지거나 실망을 안겨주었을 때 다수의 국민이나 언론은 너무나 쉽게 냉소하고 조롱했다. 예컨대 한국축구가 잘 할 때는 '영웅'으로 만들고, 못할 때는 '역적'으로 만드는 '냄비언론'의 널뛰기 보도는 한국축구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로까지 지적돼 왔다.

그래서 실제로 중요한 경기 때마다 선수들은 경기 외적인 심리적 위축감 때문에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붉은 악마와 노사모의 접근방식은 '냄비'와는 대조적인 '뚝배기'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언젠가는 잘할 것이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소신과 열정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에 대해서는 변치 않는 사랑과 지원을 보냈다. 장맛이 우러날 때까지 '뚝배기'처럼 은근하게 기다려준 것이다.

포용력과 유연성도 붉은 악마와 노사모의 닮은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들은 태극전사와 노짱에게 뜨거운 사랑과 지지를 보내지만, 그것이 배타적이고 일방적이지는 않다.

실제로 붉은 악마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전 당시 한국에서 일본과 경기를 할 때 응원석 전면에 "Let's go to France together"라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어 수많은 일본인들을 감동시킨 바 있다. 최근 상암구장 개장 기념으로 열린 크로아티아전 당시에는 소수에 불과한 '백의천사' 응원단을 포용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노사모도 경선장에서 다른 후보 지지자들과 달리 타 후보에게도 연호와 박수를 보냈으며, 4·27 전당대회 때는 이인제, 정동영, 김근태, 한화갑, 김중권, 유종근 후보 등 패배하거나 중도에 탈락한 모든 경선주자의 이름을 적은 깃발을 들고 나타나기도 했다.

그것은 그들이 '제로-섬 게임'에서 '윈-윈 게임'으로 발상을 전환한 증거라고 할 수 있거니와, 장외 경기가 장내 경기의 판도와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 그라운드 밖에 서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히딩크 감독 ⓒ 오마이뉴스 권우성


5. '사이비종교'와 '정치룸펜'으로 매도하는 '비토세력'이 있다

노무현과 히딩크도 닮았다?
일부 언론 부당한 공격 소신으로 돌파


붉은 악마와 노사모처럼 히딩크와 노무현도 닮은 점이 많다. 무엇보다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일부 언론과의 갈등과 대결이다. 다음은 히딩크 감독을 향해 쏟아 부은 <조선일보>의 말 화살이다.

"히딩크 한국축구에 열정이 없다"(2001.8.17) "패배할 때마다 말 바꾸는 히딩크" "히딩크 8개월 적자, 트루시에 3년 흑자"(2001.8.22) "히딩크 감독 지지도 '잘못하고 있다' 44%"(2001.8.27) "한국축구 틀은 언제 잡히나"(2001.9.15) "한국축구 테스트만 하다 날샌다"(2002.2.4) "히딩크식 말 바꾸기"(2002.3.15).

마치 8개월도 되기 전에 옥동자를 낳으라고 채근한 셈인데, 그것은 '팔삭동이'라도 낳으면 된다는 위험하고 무책임한 공격이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이 서서히 성과를 거두며 축구팬의 인정을 받기 시작하자 <조선일보>의 태도는 돌변했다. "히딩크 감독의 '마이웨이' 적중, 믿어도 될 것 같다"(2002.3.29)고 보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노무현 후보에 대한 <조선일보>의 그런 보도는 훨씬 더 많다. 결국 두 사람은 일부 언론의 부당하고 일관성 없는 비난과 공격에도 불구하고 소신과 원칙을 가지고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 즉 '마이웨이'를 고집했다는 점에서 닮았다고 할 수 있다.
붉은악마와 노사모는 일부 세력의 선입관과 편견에 의해 불순한 세력이라도 되는 듯이 매도당한 적이 있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붉은악마(red devil)는 명칭과 관련, 수많은 오해를 받았다. 우선 극우·반공 성향을 가진 일부 언론과 세력은 '붉은(red)'이라는 관형어를 걸고 넘어졌다. 그들은 'red'라고 하면 아직도 무조건 '빨갱이'를 연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사실 'red'는 열정을 상징하는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색깔이다. 그런 점에서 붉은 악마는 붉은색만은 절대 안 된다는 '한국의 르펜'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존재인가를 대중적으로 확인시킨 전과를 올린 셈이다.

또한 그것은 노무현 후보가 경선과정에서 불거진 장인의 좌익전력 논란을 정면으로 돌파함으로써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 있던 '심리적 연좌제'를 무너뜨린 것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악마(devil)'라는 말은 보수적인 기독교단으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악마숭배 의식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킨다는 것이 그들이 내세운 비판의 이유였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백의천사'라는 응원단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붉은 악마라는 용어가 생겨난 연원을 잘 몰라서 빚어진 해프닝이다. 실제로 붉은 악마는 1980년대 초반 멕시코 청소년 축구대회에서 '박종환 사단'이 4강 신화를 이뤄냈을 때 외신이 붙여준 '애칭'이다.

노사모도 일부 정치세력에 의해 불순한 세력으로 매도당했다. 노사모를 가리켜 '사이비종교'과 '정치룸펜'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한 박원홍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적인 경우다. 일부 수구언론도 노사모를 호시탐탐 흠집내기에 여념이 없다.

정치행사의 동원대상에 불과했던 평범한 사람들이 정치개혁의 주체로 나선 것을 칭찬하고 격려해 주지는 못할망정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정치인과 언론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결국 우리는 붉은 악마와 노사모의 비토세력이 비슷한 세계관과 성향을 가진 세력임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아울러 그들이 즐겨 취하는 공격방식이 '색깔론'과 맥이 닿아 있음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은 일반 국민이 '동원의 대상'에 불과했던 '화려한 과거'를 내심 그리워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6. 축제를 만들고 즐기면서 '구조적 개혁'을 꿈꾼다

붉은 악마와 노사모는 운동장과 경선장을 축제의 공간으로 만들었거니와, 실제로 그들은 축제를 만들고 즐길 줄 아는 능력이 있다. 도덕적 의무감에 떠밀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나는 국민경선이 시작되기 몇 달 전 수백명의 노사모 회원들이 노무현 후보와 함께 만나는 행사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날 회원들은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신혼여행을 단축하고 참가한 신혼부부도 있었고, 휠체어를 타고 온 장애우도 있었고, 나들이 겸 나온 일가족도 있었다. 중학생에서 대머리 아저씨에 이르기까지 참석자의 연령과 직업도 다양했다.

그렇다면 각자 다른 영역에서 살고 있던 평범한 생활인들이 한 정치인을 매개로 한 자리에 모이게 만든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물론 그것은 한국정치가 변화하고 발전하기를 염원하는 '구조적 개혁'에 대한 열망이다. 그들이 '조선일보 50만부 절독운동'을 선언한 것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고 할 것이다.

노사모는 노무현에 대한 '맹목적 애정'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다. 도리어 그들은 노무현이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면 과감히 비판할 줄도 안다. 실제로 그들은 "노무현이 원칙과 소신을 저버리면 언제라도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서슴없이 공언한다. 기존의 다른 정치인 지지모임에선 결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맹목적 애정'의 수준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는 붉은 악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붉은 악마가 특정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의 팬클럽과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르다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 팬클럽은 다른 선수나 연예인, 혹은 사회적 문제에는 도통 무관심한 채 자신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에게만 '맹목적 애정'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붉은 악마는 다르다. 그들은 국가대표나 프로축구에만 '맹목적 애정'을 보내지 않고, 유소년 축구나 여자 축구의 발전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다. 그들이 '냄비언론'의 선정적이고 상업적인 보도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적 글쓰기를 수행하는 것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고 할 것이다.

붉은 악마와 노사모.

다른 사회 분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처럼 '생활혁명'의 기치를 높이 들고 봉기(?)할 때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낡고 썩은 기득권과 구체제를 갈아엎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들은 '아름다운 혁명'의 전령사들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가 지난 5월 24일 CBS 라디오 <변상욱의 시사터치>에 출연해서 방송하고 주간 <오마이뉴스2002>에 게재했던 기사를 보강해서 올린 것입니다. 방송 내용은 CBS 인터넷 홈페이지(cbs.co.kr)에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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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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