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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아체의 한 공장 정문에 '리퍼런덤 예스(주민투표 찬성)'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 ⓒ 김준성
지난 8월30일 동티모르인들은 역사적인 제헌의회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러내 내년 초로 예정된 완전 독립을 향한 발걸음에 속도를 더했다.

인도네시아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주민투표를 거쳐 UN 관리하에 독립을 향한 발걸음을 차근차근 내딛고 있는 동티모르를 아체인들은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반다아체에서 '엉클 홈스테이'라는 여행자 숙소를 운영하고 있는 압둘(56) 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아체와 동티모르는 상황이 여러 모로 다릅니다"라고 말하는 압둘 씨는 그 이유로 '너무도 강한 자카르타 중앙정부의 힘'을 들었다. 그러나 동티모르인들이 독립을 성취하기 위해 싸웠던 대상도 '너무도 강한 자카르타 중앙정부' 아니었던가.

이에 대해 압둘 씨는 동티모르는 국제사회가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에 비해 아체는 그렇지 않다는 점과 인도네시아 정부가 동티모르 독립 허용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할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다르다는 점을 덧붙였다.

"동티모르는 운이 좋았습니다. 수하르토가 쫓겨나고 하비비가 과도정부를 이끌면서 인도네시아 중앙정부의 힘이 약해졌을 때 그들을 국제사회가 주목했거든요."

그는 지금은 와히드 전 대통령을 탄핵하고 집권한 메가와티 현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군부와 국제사회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어 "아체의 독립투쟁은 전망이 어둡다"고 설명했다.

현재 아체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군경의 수는 약 1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비해 무장독립투쟁을 이끌고 있는 자유아체운동(GAM)의 병력은 약 3천명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사력에서부터 상대가 안되는 것이다.

아체 독립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체인임을 자랑스러워 하는 압둘 씨. ⓒ 김준성
압둘 씨가 언급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이라는 측면에서도 아체인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 아래 놓여 있다. 인도네시아 연간 예산의 13%를 담당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액화천연가스 회사인 '아룬'은 미국기업 모빌과 인도네시아 중앙정부의 합작회사이며 일본도 이에 일부 관련되어 있다. 이러니 미국이나 일본이 아체인들의 독립투쟁에 호의적일 리가 없다.

게다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한국과 같은 이웃 나라들이 인도네시아의 정정 불안을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를 뒤흔들고 있는 아체인들의 무장독립투쟁과 같은 분리주의 운동은 국제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메가와티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 후 동남아시아 순방 길에 태국에 들렀을 때 탁신 태국 수상은 태국 남주 송클라 지역에서 아체 지역으로 무기가 중개되고 있다는 메가와티 대통령의 말을 듣고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수상도 자국 내의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 필리핀 남부의 이슬람 반군이 아체의 자유아체운동(GAM)과 손잡고 '동남아시아의 이슬람 근본주의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을 만큼 아체인들의 독립투쟁에 부정적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압둘 씨가 아체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나름대로 이해가 된다. 내가 만나본 사람들만을 놓고 보자면 사실 압둘 씨만이 아니라 많은 아체인들이 독립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힘이 너무 미약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체인들의 힘은 과연 미약한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도네시아 중앙정부의 힘은 너무 강한가? 내가 보기에는 아체인들은 그리 약하지 않았고 인도네시아 중앙정부는 그리 강하지 않았다.

동티모르인들이 그랬듯이 대다수의 아체인들은 독립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동티모르에 비해 '훨씬'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그들도 동티모르이 구스마오와 같이 하산 티로라는 지도자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동티모르 못지 않은 강한 도덕적 명분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약하지 않다.

한편 인도네시아 정부도 그리 강한 것만은 아니다. 비록 메가와티 대통령이 군부의 강한 영향 아래 놓여 있다고는 하지만 군부의 힘 자체가 수하르토 독재정권 때보다 훨씬 약화됐고 앞으로도 꾸준히 약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와히드 전 대통령을 몰아낼 때와 같은 단결력을 인도네시아 보수 세력들이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름대로 우여곡절을 겪고는 있지만 인도네시아 사회는 '민주화의 길'을 걷고 있다.

독립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압둘 씨는 "우리는 네덜란드와 일본, 자바인들과 끊임없이 싸워 왔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총칼로 탄압했지만 우리는 그에 굴하지 않고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통해 아체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내게 보여줬다.

그의 말대로 아체인들은 18세기에 독립국가를 형성한 이래로 끊임없이 외래 식민주의자들과 싸워왔다. 이 점이 바로 비록 아체가 동티모르와는 다른 상황 아래 놓여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립의 길이 결코 멀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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