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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6일 메가와티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반다아체를 찾기 이틀 전 반다아체에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아체 주립 시리야 쿠알라 대학 다이얀 다우드 교수는 오후 2시 50분 시청에서 불과 2백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테구 다우드 베레우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다이얀 교수의 차는 운전사 미스란 씨가 운전하고 있었고 다이얀 교수는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이때 오토바이를 탄 두 명의 무장괴한이 다이얀 교수의 차 왼편으로 접근하면서 다이얀 교수에게 총격을 가했다. 두 발의 총탄 중 한 발은 다이얀 교수의 머리를, 나머지 한 발은 가슴을 정확히 관통했다.

총격을 면한 운전사 미스란 씨는 차를 현장에서 3백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자이오넬 아비딘 종합병원으로 몰았으나 다이얀 교수는 도착한 지 30분만에 사망했다.

인도네시아 경찰은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그랬듯이 이번에도 범인을 검거하는 것은 고사하고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다이얀 교수 암살 사건은 지난 2년간 발생한 공인의 위치에 있는 아체인에 대한 암살 사건 중 아홉번째 사건이다.

누가 다이얀 교수를 죽였을까? 다이얀 교수를 죽인 이들은 무슨 이유로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다이얀 교수의 죽음으로 이득을 얻는 사람 또는 집단은 누구일까?

나는 사건 발생 다음날인 9월 7일 오전 아체 지역 발전을 위해 활동하는 NGO인 '지역사회발전재단'에서 일하는 마리살 씨를 만나 의견을 들어보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인도네시아 군경의 소행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다이얀 교수가 최근 메가와티 대통령의 아체 방문을 앞두고 인도네시아 정부와 무장반군세력인 자유아체운동(GAM)의 대화를 중재하고 나섰던 점을 지적했다. 그는 대화를 원치 않는 쪽에서 다이얀 교수를 암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도네시아 정부는 대화를 원치 않았다는 말인가?

다이얀 교수가 대화 중재를 제의했을 때 인도네시아 정부와 자유아체운동(GAM) 양 측이 모두 제의를 거부했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지만 '자유아체운동(GAM)은 아체인들을 대표하는 여러 세력 중 하나일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자유아체운동(GAM)은 스웨덴에 망명해 있는 자신들의 최고 지도자 하산 티로와 제3국에서 만나 대화할 것을 주장하며 대화 중재 제의를 거부했었다.

자유아체운동(GAM)이 다이얀 교수를 암살한 것 아니냐는 '자카르타 포스트' 기자의 질문에 자유아체운동(GAM)의 아야 소프난 대변인은 사건 당일 반다아체는 메가와티 대통령의 방문을 이틀 앞둔 상황에서 인도네시아 군경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있었고 자신들은 모두 반다아체 외곽으로 밀려나 있었다는 점을 들어 오히려 인도네시아 군경의 소행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내가 보기에도 사건 당일 반다아체는 완전히 인도네시아 군경의 통제 아래 놓여 있었다. 나만 해도 이날 거리에서 인도네시아 군인으로부터 몸수색을 당했고 거리 곳곳은 바리케이드의 물결이었다. 자유아체운동(GAM)과의 접촉을 꾀하던 나는 "모든 요원이 반다아체를 빠져나갔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사건 발생 후 내가 만난 아체인들은 한결같이 자유아체운동(GAM)이 다이얀 교수를 암살했을 리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모두 인도네시아 군경을 사건의 배후로 지목했는데 그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번 사건은 인도네시아 군경이 다이얀 교수를 암살했다는,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충분히 가는 사건이다.

현재 인도네시아 정부와 자유아체운동(GAM)은 '평화협상' 또는 '대화'를 두고 몇 가지 이견을 보이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문제점이 바로 인도네시아 정부가 사실상 자유아체운동(GAM)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아체인들과 대화하겠다고 하면서 자유아체운동(GAM)도 그 자리에 끼워주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다분히 현실을 무시한 발상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 인도네시아 정부가 아체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기 위해 만나서 대화해야 할 실체는 자유아체운동(GAM)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유아체운동(GAM)이 총을 들고 인도네시아 정부와 맞서 싸우고 있는 상황이 주된 문제인데 그들을 내버려두고 누구와 대화하겠다는 것인가? 바로 이 점에서 인도네시아 정부는 진정한 대화의지를 의심받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다이얀 교수의 대화 중재 제의는 자유아체운동(GAM)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인도네시아 정부를 불편하게 했고 그래서 인도네시아 군경 정보기관에서 그를 암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이 성립하는 것이다.

다이얀 교수가 암살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대부분의 반다아체 시민들이 일터를 떠나 집으로 향했다는 사실 또한 인도네시아 군경이 다이얀 교수를 암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인도네시아 군경이 메가와티 대통령의 아체 방문을 이틀 앞두고 아체인들이 '허튼 짓'을 못하도록 '분위기'를 잡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부터 메가와티 대통령이 짧은 연설을 마치고 반다아체를 떠나던 날까지 시내의 거의 모든 상점이 문들 닫았다.

물론, 다이얀 교수의 대화 중재 제의를 자유아체운동(GAM)이 거절했었다는 점에서 자유아체운동(GAM)을 암살 혐의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난해 북부 수마트라 메단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자파르 시디크 함자의 죽음 등 수많은 정치적 암살 사건이 단 한 건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대다수 아체인들이 인도네시아 군경 정보기관을 의심하게 하고 있다. 이 점은 우리나라의 수많은 의문사 사건을 돌이켜봐도 무슨 말인지 쉽게 알 수 것이다.

어쨌든지간에 다이얀 교수의 죽음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 아체에서는 아체의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립적 인사들이 아체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나서는 일에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언제까지 국제사회는 침묵할 것인가? 메가와티 대통령이 와히드 대통령을 몰아내고 대통령 자리에 올랐을 때 환영 성명을 발표한 바 있는 우리 정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는 우리나라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언제까지 방관만 할 것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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