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다큐멘터리에 일가견이 있는 한 중견 PD가 어느날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제 이거 찍고 나서 자연 다큐멘터리는 그만두어야겠다'는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물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건 완전 마약이야. 중독되는 것 같아."자연 다큐멘터리의 묘미를 잘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자연의 세계는 너무나도 오묘하고 신기하고 놀랍다. 다만 사람들이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고 건성으로 그러려니 하고 생각을 하니까 그렇지 그 안에는 생존과 번식을 위한 놀라운 몸부림들이 존재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회사에서 하는 사업으로서의 영상물 제작이 아니라 내 개인적인 작업으로 지금 반포의 매미를 촬영하고 있는데 매일 발견하는 새로운 세상에 나는 완전히 넋을 잃고 있다. 촬영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나는 밤마다 매미 소리에 시달리고 있다. 촬영 동안 나무 아래에서 들은 매매소리가 실내에서도 들린다. 일종의 이명현상인 듯하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다음날 다시 매미를 찍으러 나간다. 그 놀라운 자연의 광경이 나를 다시 거기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어느날 내가 사는 문 앞에서 죽어가고 있는 한 매미를 발견했고 그날 이후 아파트 앞 정원에서 매매의 생태를 기록하고 있다. 작은 호기심에서 출발한 촬영이 결국 하나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겠다는 생각까지 발전했고, 촬영을 해가면서 매매의 생태가 우리의 환경문제와도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글은 반포 매미에 대한 나의 촬영 과정과 나의 호기심의 발전 과정을 기록한 것이며 이 기록이 끝날 무렵 하나의 작고 예쁜 자연 다큐멘터리 '한 여름의 기록-반포매미(가제)'가 사람들에게 공개될 것이다. 이번 글부터 시작해서 몇 편이 될는지 언제까지 될는지 모를 나의 끊임없는 매미에 대한 호기심을 기약없이 연재할 것이다. 가급적이면 내 호기심이 소진될 때까지이기를 희망하지만 내 능력을 지금으로서는 장담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내년 여름을 기다릴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나의 관찰지. 내가 매미를 관찰하기 시작한 아파트 정원 ⓒ 박성호
2001.7.26(목)오전휴가의 마지막 날이었다. 휴가 동안 하는 일도 없이 집에서 빈둥대던 나에게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일이 생겼다. 반포 한신 아파트 318동 802호(나의 집) 앞에 죽기 직전의 매미가 떨어져 있는 것 발견. 생명의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나는 그 마지막 죽음의 순간을 촬영했다. 하루 종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고 있는 매미. 그 매미가 도대체 어디에 있나 호기심이 발동했다. 오후나무에서 울고 있기는 하나 잘 보이지 않는 매미.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러 아파트 앞 정원과 나무를 살피기 시작했다. 먼저 8층의 아파트 복도에서 아파트 주변의 나무들을 롱샷으로 촬영했다. 매미 소리가 특정한 나무에서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복도쪽의 정원에 있는 나무들보다 건너 동의 아파트 베란다 쪽 나무에서 매미 소리가 많이 났다. 그리고 정원으로 내려갔다.
▲탈피를 하고 남은 매미 껍질 이런 껍질은 길가, 나무, 혹은 보도블럭 등 여러 군데서 발견할 수 있다. ⓒ 박성호
매미의 존재는 발견하기 힘들었으나 나무줄기, 혹은 잎의 뒷면에 붙어 있는 매미의 허물을 무수히 발견할 수 있었고 이들을 촬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무에 앉아 있는 살아 있는, 울고 있는 매미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시야가 넓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무에 앉아 있는 매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때 생기기 시작한 의구심은 저 매미가 이 허물에서 나온 것이라면 허물에 벗기 전의 매미 혹은 허물을 벗는 매미는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2001.7.27(금)오전휴가를 마치고 출근을 했다. 나의 첫번째 일은 회사 일이 아니라 매미의 생태, 그리고 일생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지고, 신문도 찾아 보니 매미에 대한 정보가 꽤 있었다. 매미는 알을 나무 재부 속에 낳으며 부화한 유충은 지상에 떨어져 곧 흙 속으로 숨어 들어간다. 유충의 앞다리는 두더지처럼 크게 발달하여 땅을 파는 데 적합한 형으로 되어 있다. 매미의 유충은 지중 생활을 하고 수목의 뿌리에서 도관액을 빨아 먹으면서 성장한다. 이 수액은 수분이 많고 영양분이 낮기 때문에 대부분의 매미는 성장하는 데 여러 해가 걸린다. 세대 기간이 짧아 연중 2∼3회가 거듭되는 무리도 있는 반면, 매미 무리와 같이 2∼5년에서 13∼17년이나 되는 긴 생활사를 가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다 자란 유충은 해가 질 무렵, 땅 위로 올라와 나무를 찾아 기어간다. 그리고 나무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자신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을 벗고 나온다는 것이었다.
▲밤에 보도블럭에서 발견한 매미 껍질
ⓒ 박성호
퇴근 후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놀라움으로 회사 일을 대충 정리하고 일찌감치 퇴근을 했다. 그리고 다시 아파트 정원으로 달려갔다. 마침 해질녘이었고 매미 유충을 발견하기 위해 정원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 그러나 내 눈에는 단 한 마리의 유충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모두 이미 몸은 빠져나가 버린 허물들뿐이었다. 갈색의 반투명인 매미유충의 허물들은 형태는 매미형태와 거의 흡사했다. 다만 날개는 없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앞쪽 등에 갈라져 있었고 그 안으로는 텅 비어 있었다.저녁7시해가 져 어두워지자 나는 조그만 조명을 들고 다니면서 찾아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대신에 나의 카메라를 사로잡은 것은 쥐며느리와 개미 군단이었다. 조명을 켜고 쥐며느리를 촬영하느라 카메라가 따라가자 쥐며느리는 상당히 빠르게 도망을 갔다. 사람 몸통만한 나무의 아래 부분에서 나무둘레를 따라 다람쥐 체바퀴 돌 듯 계속 도망갔다. 한눈에 녀석의 감각은 빛에 상당히 민감함을 알 수 있었다.
▲매미대신 발견한 쥐며느리 ⓒ 박성호
이렇게 작은 물체를 촬영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일종의 접사촬영을 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내가 가지고 있는 디지털 핸디캠은 다른 별도의 렌즈 없이 카메라에 달려 있는 렌즈로 접사촬영이 가능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접사촬영을 하기 위해서는 피사체에 아주 가깝게 렌즈를 들이대야 하는데 낮에는 괜찮지만 밤에는 조명을 주기가 힘들었다. 카메라 렌즈 자체가 물체를 가려 조명을 차단하기 때문에 조명의 방향을 일일이 바꾸어 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여러 사람이 하는 작업이 아니라 혼자 하는 작업이어서 더욱 힘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명을 고정시켜 놓고 촬영을 하다가 결국에는 한 손에는 카메라를 한 손에는 조명을 들고 계속 조명의 방향을 바꾸어주면서 촬영을 하게 되었다. 그랬더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다른 한 손이 자유롭지 않으니 수동촬영이 힘들어졌다. 수동으로 촬영을 하려면 한 손으로는 카메라의 몸체를 잡고 레코딩 버튼과 줌기능을 조절하고 다른 한 손으로 렌즈를 돌려 가면서 포커스를 맞추게 되는데 포커스를 맞추어야 할 손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차츰차츰 새로운 촬영 노하우를 발견하게 되겠지만 현재로서는 아주 힘든 촬영이 계속되고 있었다. 개미군단도 아주 바빴다. 쥐며느리를 발견한 옆의 나무 밑둥치에는 거대한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육안으로 보면 작은 개미 구멍이지만 카메라의 매크로 기능을 이용해 가까이 대고 촬영을 하자 그 작은 구멍이 엄청나게 크게 보였다. 그리고 그 입구에는 개미들이 쉴 새 없이 들락날락했다. 뭔가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혹시 이 구멍의 끝에 매미유충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매미의 유충이 떨어졌다면 분명 들어간 구멍이 있을테고 그것을 개미들이 이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개미와 매미유충에게는 미안하지만 작은 막대기로 구멍을 파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건 실수였다. 조금 파 들어가지 그들의 굴은 막혀 버렸다. 나는 개미와 매매가 해놓은 공사를 순식간에 망쳐 놓은 셈이었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도 잠깐이었다. 내가 저지른 일이 그들에게 엄청난 재해일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개미들에게는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굴은 막혀 버렸지만 나의 공사로 인해 땅 속에 있는 이름 모를 애벌레가 땅 위로 노출된 것이었다. 굴이 있던 자리는 움푹 패인 모습으로 변해 있었는데 거기에 있던 애벌레 주위로 개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개미들이 그런 먹이를 그냥 둘리가 없었다. 1센티미터 만한 애벌레한테 2,3밀리미터 정도 되는 개미는 문제가 안될 줄 알았는데 애벌레의 생존의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개미에게 공격당하고 있는 이름 모를 애벌레 ⓒ 박성호
한국전때 중공군이 사용한 인해전술이 동원되고 있었다. 물밀듯이 밀려드는 개미한테 애벌레는 속수무책이었다. 몸을 움츠려 자신을 보호하는 게 다였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개미들은 움푹 패인 자리에 다시 새로운 굴들을 이미 뚫고 있었고 아마 내가 본 하나의 굴 아래로 여러 개의 굴이 있었던 것 같았다. 조금 작업을 하더니 여러 개의 굴이 나타났다. 그때부터 개미들은 애벌레를 더욱 더 가열차게 공격했다. 공격이라기보다 운송을 하고 있었다. 작은 개미가 큰 덩치의 애벌레에 들러붙어 기어오르기도 하고 밑으로 들어가기도 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그러자 애벌레는 점점 개미굴 쪽으로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방어행동으로 몸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결과적으로는 굴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었다. 개미의 공격대상이 되고 있는 애벌레가 한 마리가 아니었다. 첫번째 발견한 것보다 좀더 작은 다른 애벌레도 똑같은 공격을 받고 있었다. 개미의 목표는 먹이를 통째로 개미굴로 가지고 들어가는 것인 듯했다. 지루한 몸싸움이 30분 동안 계속되었다. 거리상으로 굴까지 5센티미터 정도였지만 그 거리가 그들의 지루한 싸움에서 보면 시간거리로 30분이나 되는 것이었다. 결국 작은 애벌레가 먼저 통째로 개미굴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에 바로 큰 애벌레가 개미굴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개미의 먹이사냥 광경은 그야말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예전에 '마이크로'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비슷한 광경을 보기는 했지만 남이 찍어 놓은 영상을 보는 것과 내가 그 광경을 보면서 촬영을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였다.나는 그들의 지루한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마치 뭔가에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나의 촬영은 끝이 났다. 저녁 7시에 시작한 촬영이 7시간이나 경과한 것이었는데 나에게는 그 시간이 단지 1,2시간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결론적으로 그 구멍은 단지 개미굴일 뿐 매미 유충이 들어간 구멍은 아니었다. 원래 의도한 매미유충이나 그들이 들어가 있는 구멍은 찾을 수가 없었지만 작품상으로 볼 때 3,4분 길이 정도는 충분히 나올 듯했다. 나는 여전히 밤에도 울어대고 있는 매미소리를 뒤로 하고 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다음 편에는 매미유충을 발견한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성충이 되기 위해 탈바꿈하는 이야기를 올릴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www.degadocu.com'에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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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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