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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쓸모있는 소중한 삶이고 책

돌고 돌아 이리로도 가고 저리로도 가는 삶은 헌책방 삶이지요. 더불어 정리해고되거나 퇴출로 가닥잡힌 삶은 헌책방에서도 써먹지 못해 폐지로 곧바로 가고마는 삶이고요. 그러나 우리 삶이 헌책방 같다 함에는 처음 온누리 빛을 보고 나온 우리들이 오래도록 두고두고 슬기를 거듭거듭 얻어가며 누구나 쓸모가 있다는 뜻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은 세상에 쓸모 없는 것은 만들지 않았어<권정생-강아지똥>"라는 외침처럼 "헌책방에는 쓸모 없는 책이라곤 한 권도 없어" 하는 외침이 있습니다.

<강아지똥>에서 `강아지똥(개똥)'은 민들레가 새봄에 샛노란 꽃을 피우는 거름 구실을 합니다. 헌책방에 가득한 책은 마지막엔 `폐지'로 제 쓸모를 다 하지만, 책방에서는 `제 임자'를 만나서 `책'으로 마지막 쓸모를 다 합니다. 사람도 죽으면 다시 땅으로 돌아가 땅을 기름지게 하는 거름으로 썩듯 책도 마지막엔 폐지가 되지만 폐지가 되기 앞서까지는 책 구실을 톡톡히 하지요.

사람 삶도 책 삶과 빗대면 늙어서 죽든(책이 낡아 폐지 처리) 사고로 죽든(필화 사건이나 정부 통제 따위로 세상에 제대로 나오지 못함) 살아 있는 동안 세상에 있는 한 사람 몫을 넉넉히 합니다.

책을 찾는 멀고 긴 길

헌책방에서 책을 찾는 일은 `꼭 있다'는 믿음을 가지지 않고 찾는 일입니다. 도서관은 이런 책이 있으니 간다, 좀 더 큰 도서관일수록 자료가 많다는 믿음을 갖고 가지요. 하지만 헌책방은 크기가 작거나 크거나 "도대체 내가 만날 책은 어떤 책인지" 알 길이 없지요.

자주 만나는 책을 또 만날 수 있습니다. 요즘 헌책방에서 눈에 자주 띄는 책은 <서갑숙-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 배우가...>라는 책입니다. 한땐 날마다 쇄를 찍어대는 데도 책방에 물건을 대기가 어렵다고 했지요? 그러나 지금은? 지금 이 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마광수 씨가 쓴 <즐거운 사라>는 한때 판금조치 당해서 헌책방에서 한 권에 만 원도 넘는 값에 사고팔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헌책방에선 이런 책들도 만나지만 그 동안 도서관에서 찾다 찾다 못찾은 책, 언제 한 번 읽어 보리라 마음먹고 이름만 머릿속에 새겨둔 책, 지은이도 책이름도 펴낸 곳도 낯설지만 막상 책을 펴들고 살펴보니 이렇게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 없을만치 소중하고 값진 책...

언젠가 용산 <뿌리서점>에 갔더니 아저씨가 고물상에서 사온 성경을 뒤적이다가 교회에서 쓰던 헌금봉투를 만납니다. 아저씨는 "이것도 백 년 지나면 일억은 할 텐데..." 하는 말씀을 하면서 헌금봉투를 꼬깃꼬깃 구겨서 버립니다. 엥? 100해 두면 일억은 된다면서 왜 버리느냐구요? 글쎄. 아저씨는 백 년을 사실 수 없으니 농담삼아 하는 말일 수 있고 누군가 이런 걸 갖고 있으면 소중한 자료가 될 수도 있겠다는 말이지요.

헌책방에서 책을 찾는 일은 험합니다. 멀고 먼 길입니다. 내가 바라는 책이 나온다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찾는 책이 있어도 내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살 수 있는지, 값이 마음에 드는지도 장담할 수 없고요. 그러나 헌책방은 언제나 `헌 책과 낡은 책' 사이에서 `새롭게 빛나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책'을 만난다는 `새로움'이 있지요. `낯설고 설레이는 만남'이 있지요.

낯설고 설레이는 만남

그렇다 해도 이 낯설고 설레이는 만남을 헌책방에 갈 적마다 느낀다는 말조차 `대놓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헌책방은 이런 생각도 까맣게 구석에 모셔놓고 한갓지고 가붓한 마음으로 "어떤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찾아갈 때야 비로소 책들이 제 몸을 드러내니까요.

그리고 헌책방은 책을 사는 일 못지 않게 `책방에 발길을 옮긴다' `책을 보러 책방에 발걸음을 뗀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소중한 경험으로 남깁니다. 비록 책 한 권을 못 건지고 나오더라도 헌책방이란 시간여행지에 와서 "내가 어떤 책을 바라고 있었구나" "이런 책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하기도 하구나" "내가 이런 공부를 더 해야겠구나" "세상엔 이렇게 많은 갖가지 책이 있구나" "내가 너무 속좁게 살아오지 않았느냐"는 생각을 이끌면 그것으로도 넉넉합니다.

헌책방을 찾아가는 마음. 헌책방과 같은 삶은 우리가 살아가는 자기 삶을 알차게 살아가며 시나브로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이 넉넉하고 알차지 않은 이들은 헌책방에 가지 않죠. 삶이 넉넉하고 알차다 함은 돈이 많고 배불리 먹고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음이 넉넉하고 생각이 알차며 늘 가슴 뭉클함을 느끼며 사람들을 마주한다는 뜻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 안에서 http://freechal.com/tobagi 에 가시면 글쓴이가 펼치는 헌책방과 우리 말 이야기를 만날 수 있고 http://freechal.com/booklover (헌책방 찾아가는 젊은 사람 모임) 에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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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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