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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우리>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한 헌책방 <대양서점> 아저씨는 <작은우리> 아저씨가 `결단력'이 조금 모자라다고... "지금 자리를 내놓고 새 곳으로 옮겨가려면 새로 갈 자리에 먼저 책방을 옮기고나서 가게를 빼야 나갈 텐데, 지금 장사를 하면서 가게가 빠질 때까지 기다리니 힘들지..." 하고 말씀하십니다.

<작은우리>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 녹번-불광역쪽으로 내려가는 길 쪽으로 조금 내려간 자리, 그러니까 고갯길이 있는 세거리에서 건널목 바로 앞으로 옮겨가려 하는데 지금 가게가 빠지지 않아서 아직 그대로입니다.

저는 제가 사는 집 앞에서 이곳까지 가는 버스(155번)가 있어서 찾아가기는 괜찮아요. <작은우리>로 찾아갈 수 있는 버스는 이밖에도 154번과 806번이 있죠. 대중교통으로 지하철역 연신내역에서 내려서 `연신초등학교-진성아파트-은평경찰서-기자촌'쪽으로 길을 물어서 걸어가면 됩니다. 땅그림을 보며 거리를 재 보니 800미터 즈음 걸어가는 길입니다.

대중교통편으로 찾아가는 일은 일산이나 서울에서도 서대문, 종로, 은평, 중구쪽에서는 가까운 편이지요.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좀 힘들 수도 있겠어요. 그래도 <작은우리>로 오는 길에 멀리 뵈는 인왕산과 북한산을 보며 나들이하는 기분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도 좋지요. 헌책방 나들이를 하노라면 찾아가면서 `자신이 살아가는 삶터와는 다른 삶터'와 부대끼는 즐거움도 있으니까요(자가용을 끌고가도 가게 앞에 대 놓을 수 있습니다).

헌책방을 찾아와서 책을 사가는 이들 눈도 높겠지만 정작 책을 보는 눈이 가장 높다고 할 사람은 중간상인입니다. 버려진 책에게 새로운 값어치를 매기고 헌책방 나들이를 하는 이들에게 반가운 책을 대 주는 이들이니까요. 그러나 중간상인들이 책을 보는 눈을 기를 수 있던 데에는 어떤 책들이 버려지지 않고 제 몫을 받아야 하는지 차근차근 일러 준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작은우리>는 헌책방이지만 자그마한 `고서점'으로서 옛 책도 다룹니다. 얼마 앞서 어느 분 집에서 갈무리해온 책을 담은 상자를 펼치며 볼 만한 책이 있는지 한 번 보시라고 말씀하시네요. 뒤적뒤적 낡은 책들을 살피니 중고등학교에서 학교문집이나 교지로 펴낸 것들이 수두룩합니다. 제가 찾는 밭은 아니고 누군가 이쪽 책을 찾으신다면 퍽 도움이 되겠더군요.

그 가운데 <조태일-국토, 창작과비평사(1975)> 첫판과 <김규동-죽음 속의 英雄, 근역서원(1977)> 지은이 서명본이 있길래 `제가 잘은 모르겠지만 이 두 권은 퍽 괜찮을 것 같네요' 하면서 빼서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살 생각이 아니었는데 저에게 그냥 싸게 주신다고 하셔서...

그래서 책겉장만 스캐너로 긁고 다른 분-시집을 모으시는 분-에게 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함께 집었습니다. 다른 분이 사가기로 한 식민지 때 나온 시모음 둘을 보여 주셨는데 `권 환'이라는 사람 시모음이란 걸 보았습니다. 저도 이름은 처음 들어 보았지요. 활자본으로 찍고 갱지로 펴내서 활자로 찍은 흔적이 지금도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한적처럼 넓은 종이를 반으로 접어서 속은 희게 남기고 밖만 찍는 투로 제본을 했네요.

아저씨는 소설을 써 보고자 벽에 큰 종이를 붙여 놓고 `족보'도 그려 보고 했으나 당신은 글재주가 모자라 뵌다면서 끝내 쓰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분을 뵈면 참 우러러 뵌다고... 하지만 아저씨는 다른 헌책방 임자분들마냥 책과 책방에 얽힌 이야기는 감칠맛나게 잘 하세요. 시골에서 동서와 오토바이를 타고 길을 가다가 어떤 할아버지가 손수레에 고물을 잔뜩 싣고 가는데 아무래도 `책장사 느낌'에 뭔가 있겠다 싶어 `동서, 잠깐 세워 봐' 하고 멈춘 뒤 아저씨가 끄는 손수레를 살피니 아닌 게 아니라 바닥쪽에 책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주욱 살펴보니 한 하운씨 시모음을 비롯해 괜찮은 게 많았더라구... 그래서 어쩌겠습니까.

`아저씨, 이 고물 내다팔면 얼마 받아요?' `응? 5만 원...' 이렇게 하여 아저씨는 오만 원을 주고 손수레째 사겠다고 하면서 돈을 드렸고, 고물을 한 짐 한 짐 옆에 내려둔 뒤 책을 빼서 오토바이에 싣고, 다시 고물을 손수레에 실은 뒤 `아저씨, 이거 아저씨가 다시 가지세요' 하고 책만 가져가셨답니다. 그때로선 고물값도 얼마 못 받는 거였기에 고물 할아버지도... 길을 가다가 고물 더미 속 책을 산 아저씨도 모두 즐거운 날이었지 싶네요.

학생 적부터 책을 만져서 어느새 나이 마흔여섯까지 서른 해가 되었고 <작은우리>를 꾸린 지는 여섯 해가 되었습니다. 책이 좋아서 책 장사를 하지만 아주머니와 함께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해서 땀흘려 돈도 벌고 헌책방으로선 비수기라고 할 여름철에는 좁다란 방에서 에어콘 틀어 놓고 그 동안 보고파서 따로 빼놓은 책들을 읽으신답니다.

날이 따뜻해졌기에 이제는 천으로 감싸고 끈으로 똘똘 묶어 두었지만 <작은우리>는 책방 문을 연 날부터 이때껏 책방 앞에서 `붕어빵'을 팔았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그 맛을 보진 못했지만, 오랜동안 한 장사기도 해서 지역분들은 참 좋아한다고... 사실 `책 장사보다 붕어빵 장사가 더 잘 되어서' 씁쓸하기도 하지만 현실이니 그건 어쩔 수 없다고... 하시면서,

"처음 칼라텔레비전 나왔을 때 극장들 다 죽는다고 했잖아요. 사실 극장에 사람도 없었고... 그런데 영화도 잘 만들면 100만 명도 모이고 그러잖아요. 컴퓨터가 나오고 그래도 컴퓨터 화면 들여다보고 있으면 눈이 아파요. 오래 못 본단 말이죠. 하지만 책은 한참 봐도 괜찮잖아요. 책은 책대로 다른 맛이 있기 때문에 책도 잘 만들면 같이 잘 될 수 있다고 봐요"

하는 말씀을 해 주십니다. 텔레비전은 텔레비전대로, 극장은 극장대로 제 구실이 있듯 셈틀도 제 구실이 있고 책도 제 구실이 있다는 이야기죠. 저마다 자기 구실이 있고 그 구실 가운데 어느 하나도 높거나 낮은 구실이 아니라 소중한 자리에 있음을 아저씨는 헌책방을 꾸리며 느껴 온 셈입니다. 저는 헌책방을 다니며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책을 보면서 느끼고요.

<작은우리>에 오면 가끔 70년대 국민학생이 쓴 공책을 보고 한 권 즈음 사듭니다. 제가 어릴 적 쓰던 공책은 중학교 올라가며 다 버려졌기에 그 흔적을 다시 찾고 아이들 삶을 다루는 방식도 찾아봐야 하기에 자료로도 쓰지요. 아저씨는 이런 것들도 창고가 받쳐 주는 만큼 모아두시기도 하기에 헌책방 나들이를 하는 이들이 주머니 짐스러움을 느끼지 않는 테두리에서 한두 권씩 사서 자료로도 쓰고 두고두고 볼 수도 있지요.

1973년-1978년 사이에 나온 <샘터> 잡지도 스무 권 남짓 들어와 있네요. 이 가운데 100호 기념호 하나만 집었습니다. 100호 기념특집에 글을 쓴 사람 가운데 볼 만한 사람들도 많지만 `브라보 샘터!' `지령 100호를 축하합니다'란 말과 함께 담은 만화 넷이 볼 만하거든요. 김성환, 고우영, 박수동, 신동우 이렇게 70년대를 주름잡은 만화가 네 사람 그림을 담았거든요. `지령 100호를 축하합니다'는 글은 박 수동씨가 꾸불꾸불 흐느적거리는 글씨로 써 주었고요. 그런데 여기서 재밌게 볼 수 있는 대목이 고우영 씨와 박수동 씨는 당신 이름을 한글로만 썼는데 김성환 씨와 신동우 씨는 한자로 쓴 뒤 한글은 잔 글씨로 살짝 달았다는 대목.

책을 뒤지다 우연찮게 <윤 용-백기는 휘날리는데, 청사(1987)>도 하나 봅니다. 이미 한 권 사서 봤지만, 드문 책이기도 하고 `윤봉길 의사 친조카'인 윤 용 씨는 신문방송학과 교수로서 독재정권과 맞서는 싸움도 가멸차게 했던 분이라서 남다른 책이랍니다.

<작은우리>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보기에도 훨씬 좋은 자리로-넓이도 서른 평이라 지금 자리 갑절입니다- 가면 이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셈입니다. 가게세도 지금 자리 갑절은 되고 당신 자식들도 대학생이 되어 등록금 짐도 이만저만 아니니까요. 그러면 한 달 동안 벌어야 하는 돈도 꽤나 크기에 당신이 꾸리는 책방을 찾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값싸게 좋은 책을 대려는 자기 다짐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제 값보다 싸게' 팔던 지금까지 삶이었지만, `제 값만' 받는 데까지 밀릴 수밖에 없겠다고...(하지만 제가 보기에도 아저씨가 받는 제 값도 인사동 고서점과 견주면 턱도 없이 싼 값입니다)

지금 <작은우리>는 처음 책방을 꾸릴 때 가운데 있는 책장을 잘 꾸미지 못해서 그 위엔 책이 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속엔 아무것도 없이 비었을 뿐 아니라, 천장이 높은데 그냥 벽지만 대져 있는 상태였다 하더군요. 언젠가 봉으로 구멍을 뚫고 올려 보니 꽤나 높이 올라갔다고... 그래서 이런저런 걸 처음부터 알고 꾸몄으면 찾아오는 손님들도 책 보기 훨씬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어서 가게를 옮겨서 제대로 헌책방 장사를 하시는 꿈을 갖고 계십니다.

얼마 앞서 아저씨가 책을 치운다며-집안이 망하거나 집을 옮기거나 하면서 책을 갈무리하는 일을 두고 `책 치운다'고 합니다- 찾아간 어느 집을 보니 사업이 망하고 다시 망해서 대학생인 딸 셋은 고시원에 들어가고 당신들은 자그마한 달셋방으로 찢겨져 나가야 했답니다. 책장수로서는 책을 치우면 팔 수 있는 책도 늘기에 좋긴 하지만, 이런저런 집마다 다 다른 `책 치우는 사정'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마련이지요. 그리고 이런 데서 삶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과 부대끼는 몸가짐과 마음가짐도 배우고요.

새책방과 달리 헌책방에서 사는 책은 먼저 사서 본 사람의 손때도 묻어 있지만 다 다른 역사와 삶이 담겨 있습니다. 망한 집에서 들고 온... <학원 세계대백과사전(1993)> 31권은 백과사전을 안 보는 요즘 흐름에서는 짐덩이지만, 그래도 그냥 사 왔다면서... 고작 오만 원 받고 팔 생각을 하시네요.

지난 겨울에 참 추웠지요. 아주머니는 그때 밖에서 붕어빵을 구워 팔았는데 언젠가 아주머니가 30분만 봐달라고 해서 붕어빵 틀 앞에 섰는데 10분도 안 되어서 덜덜 떨리더라고... 아주머니가 겨울에 고생을 참 많이 함을 느낀다고... 고생이 되어도 함께 일하면서 자식도 가르치고 가게도 넓게 옮겨 가려 애쓰고... 이렇게 두 분이서 부지런히 일하는 <작은우리>에도 고민이 있지요. 다른 책방도 마찬가지지만 참고서 장사가 올해는 더욱 더 안 된다는 것. 새학기 때 참고서를 많이 팔아 놓아야 그 돈으로 일반 책들을 더 폭넓게 사서 갖다둘 수 있는데 그게 안 되니 올해는 더 힘들지 않겠냐고요.

헌책방을 찾아가시는 분들이 `참고서와 교과서'가 많은 헌책방을 안 좋게 보는 분위기가 있기도 하지만 그 책들도 그 나름대로 쓸모가 있을 뿐 아니라 스무 해, 서른 해가 지나면 되려 `고서 대접'을 받음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지금 보기에는 `순례자 눈으로 보기에 뭐 이런 게 이렇게 많냐' 싶어도 당신들 살림과 참고서를 찾는 많은 학생들도 생각하고요.

아저씨는 참고서와 문제모음을 만드는 출판사들이 `고침판'이라고 내놓은 걸 보면 `백 문제가 있다면 순서만 바꾸고 문제는 그대로'거나 앞에 놓은 문제들을 고치면서 뒤로 밀어 넣는 식... 그래서 학교나 학원에서 진도 나가면서 보면 순서가 안 맞아서 버려지게 되는 것들... 참고서도 마찬가지고... 너무도 좋은 종이로 값비싸게 만들면서 다섯 해도 못 가는 목숨만 갖고 태어나는 책들이 너무 아깝다는 말씀을 덧붙입니다. 초등학생 전과값과 중학생 참고서값은 갑절입니다. 여기서 중학생과 고등학생 참고서값도 다시 갑절. 참고서와 교과서가 많은 헌책방이라고 업수이 여길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고개숙여 배웁니다. 이런 대목들도 책방을 찾아가면서 생각해 볼 일이라고 봐요.

덧붙이는 글 | [작은우리] 02) 383-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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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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