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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앞

서울역 앞에 있던 헌책방이 한 곳만 남기고 문을 닫자 아주 썰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서울역 언저리 학원이 문을 하나둘 닫으면서 헌책방도 하나둘 문을 닫았죠. 학원생만을 대상으로 책방 문을 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학원생들은 서울역 언저리 헌책방에게는 반갑고 적잖은 손님이었습니다.

<서울북마트>와 <동성서점>이 남았던 서울역 언저리에서 <동성서점>마저 문을 닫았을 땐 남은 한 곳마저 문을 닫지 않을까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서울북마트> 젊은 형이 내내 밖으로 책을 사러 다니고 젊은 누나가 가게를 보면서 책방도 적잖이 달라져 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오롯이 책방을 지키는 가운데 지난 2월 9일, 서울역 4호선 12번 나들목 바로 옆 2층(205호)에 대전 `대훈서적'에서 서울지사를 내면서 `북한책 전문서점'을 열었습니다.

대전에서 꽤 큰 새책방을 꾸리는 대훈서적에서 그 동안 북한책을 쏠쏠히 모아오고 전시회도 가지면서 이 책들을 정식 인가를 받아서 팔 길을 찾다가 드디어 서울 안에서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을 만한 곳으로 점찍은 서울역 앞에 둥지를 튼 거죠.

북녘책을 볼 수 있기까지 쉰여섯 해

3100원에 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1998)>부터 한 권에 18만 원 하는 <조선대백과사전>까지 있지요. <조선대백과사전>은 지금까지 열두 권이 나왔으니까 열두 권을 다 산다면? 꽤나 큰 돈이 들어가겠죠. <재미있는 전래놀이>를 보니 우리 나라 학자나 현장교사가 낸 책보다 훨씬 쉽고 재미나면서도 놀이를 잘 헤아리면서 즐길 수 있도록 엮어 놓았습니다. 글과 그림이 참 잘 어울리더군요. 북녘에서 요리말이나 옷말을 어떻게 쓰는지도 전시하고 파는 책을 보면서 살뜰히 알기 좋더군요.

이제야 빗장이 풀리고 조금이나마 문화 교류를 할 수 있을 만큼 북녘책을 만날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인가를 기다리는 책이 훨씬 더 많기에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듯 싶더군요.

북녘책을 보고나서 <서울북마트>에 갔습니다. 안쪽 창고로 이어지는 길에 가득 쌓였던 책은 모두 깨끗하게 갈무리하셨네요.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앞에 쌓인 책에서 예 용해 스승이 지은 <탐험 이야기>를 보고 70년대 교과서도 자료로 쓰려고 네 권 집었습니다.

인사동에서 재미삼아서 70년대 교과서를 한 권에 오천 원이나 만 원에도 파는데 `재미삼아서' 파는 것도 좋지만 정작 이런 지난 교과서를 보며 연구하고 공부하며 자료로 삼을 사람이 보기엔 씁쓸하지요. 인사동 장사꾼이 쓸 만하다 싶은 것들도 한목에 다 쓸어가니 그다지 비싸게 치지 않는 70년대-70년대 첫판 내고 80년대까지 찍은- 교과서마저도 양이 줄어 헌책방에서도 높은 금을 매기니까요.

헌책방에 와서 고개숙이기

요즘 언론사 세무조사를 두고 뒤가 구린 곳에서 말이 참 많지요. 그렇게 말 많은 이들이 보고 되새기면 좋은 말들을 <고한어문법상식(1978)>에서 봅니다.

- 자기네 패의 사람의 말을 편신하고 정사처리에 표준이 없으면 정사처리가 바르지 못하게 된다
- 절름발이말과 헌 수레로는 먼곳에 이를 수 없다
- 도를 어기고 함부로 행동한다면 하늘도 사람들을 좋은 결과를 보게 할수 없다
- 옛날 천자의 자리를 쉬이 사양할수는 있으되 오늘 현령의 자리를 포기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리익의 대소의 부동한 실제정황이 있기 때문이다
- 게는 발이 여덟이나 되고 집게같은 엄지발이 두개 있으나 물뱀이나 두렁허리의 굴이 아니면 의지할 곳이 없는데 그것은 마음이 들뜨고 성급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이 많고 마치 오래전 그 날부터 좋은 일만 해온 곳이라 스스로 뽐내는 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헌책방에 한 번 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보거나 느끼지 못한 많은 책들을 찬찬히 살피기도 하고 헌책방에서 대접을 잘 받는 책이 어떠한 책인지도 이야기듣고요.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온갖 생명체들이 얼마나 애를 쓰고 저마다 옹기종기 모여서 힘껏 살아가는지 살필 수 있습니다.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은 더 많이 배울 수 있고 자신이 배운 앎을 슬기로 곰삭일 수도 있지요.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고개를 숙이도록 할 수 있지요.

<대훈서적> 북한책 전문매장 목록 (2/17 현재)
- 아침 열 시에 열고 저녁 여섯 시에 닫음
- 토요일과 일요일은 쉼(나중에는 열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함)

<4개 국어 생물학 용어사전(1994)>
<고구려시조 동명왕(1992)>
<고대 일본 가나이 지방의 조선계통 문벌들에 관한 연구(1993)>
<고려의학 참고자료(1993)>
<고려치료경험(내과편)(1996)>
<고전문학선집 51-리규보 작품집(2)(1990)>
<고전문학선집 61-림제,권필 작품집(1990)>
<고전문학선집 66-박지원 작품집(1)(1991)>
<고전문학선집 71-김려 작품집(1990>
<금강산 일화집(1992)>
<김해진전(고전소설)(1994)>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려치료(1994)>
<라진-선봉 자유경제 무역지대 투자환경(1995)>
<리조시기 회화(1995)>
<본문언어학(1995)>
<사회주의 생활문화백과 (2)-옷과 옷차림(1991)>
<새로운 옷형태와 가공 (9)(1993)>
<세계 문학선집 (3)-중국 고전시선(1991)>
<세계 문학선집 (22)-근대 영국시선(1991)>
<세계 문학선집 (29)-제인 에어(1993)>
<영조 의학용어 조성사전(1991)>
<루이제 린저-옥중일기(1993)>
<우리나라 민속놀이(1995)>
<우리나라 지리와 풍속(1991)>
<인구학 개론(1996)>
<작물병리 사전(1992)>
<장세납 교측본(1991)>
<재미있는 민속놀이(1994)>
<조선과학기술발전사(해방후편-1)(1994)>
<조선기술발전사 (1)-원시고대편(1996)>
<조선기술발전사 (5)-리조후기편(1996)>
<조선도자사연구 (삼국~고려)(1995)>
<조선동의어,반의어,동음어사전(1993)>
<조선료리전집 (1)~(4) (1994,1995,1996)>
<조선말 대사전 (1)(2) (1992)>
<조선문화가 초기 일본문화 발전에 미친 영향(1991)>
<조선민요의 유래 (1)(1992)>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문화유물 보호법(1995)>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1998)>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화학공업사 (1)(1994)>
<조선부문사-조선공예사 (2)-현대편(1991)>
<조선부문사-조선과수업사 (2)(1991)>
<조선부문사-조선교통운수사(자동차운수편) (3)(1991)>
<조선부문사-조선수산사 (2)-현대편1 (1991)>
<조선부문사-조선수산사 (3) (1991)>
<조선부문사-조선조각사 (2)-현대편(1991)>
<조선부문사-조선풍속사 (3) (1992)>
<조선속담집(1992)>
<조선식물지 (1)~(3) (1996,1997)>
<조선약용식물(원색) (1993)>
<조선어 빈도수사전(1993)>
<조선어 어름론 연구 (1995)>
<조선어 정보처리 (1994)>
<조선유적유물도감 (15)-리조편 (3)(1993)>
<조선유적유물도감 (16)-리조편 (4)(1994)>
<조선의 민속전통 (1)-식생활(1994)>
<조선의 민속전통 (2)-옷차림(1994)>
<조선의 민속전통 (3)-주택과 가족생활(1994)>
<조선의 민속전통 (4)-로동생활(1994)>
<조선의 민속전통 (5)-민속명절(1994)>
<조선의 민속전통 (6)-민속음악과 무용(1995)>
<조선의 민속전통 (7)-구전문학과 민속공예(1995)>
<조선중세건축유전연구(삼국편)(1995)>
<조선출판문화사 (고대~중세)(1995)>
<조선화 그리기 (소나무)(1994)>
<조선화 그리기 (참대)(1994)>
<중세조선말사전 (1)(1993)>
<침구 처방학(1994)>
<침뜸치료의 묘리(1995)>
<침치료 경험방(1994)>
<학생 식물사전(1991)>
<현대 일조 외래어사전(1991)>
<현대 조선문학 선집 (14)-1920년대 시선(2)(1992)>
<혼자서 배울 수 있는 조선말(1994)>

<고전문학선집-옥루몽(1)(1958)>
<고전문학선집 (34)-김만중 작품집(1991)>
<고전문학선집 (40)-보심록(1991)>
<고전문학선집 (41)-춘향전(1991)>
<고전문학선집 (44)-토끼전(1992)>
<고전문학선집 (67)-박지원 작품집(2)(1995)>
<고전소설 해제 (2)(1991)>
<리조실록> 전질
<맛좋은 국수(1990)>
<민족가극 `춘향전' 종합총보(1991)>
<백두산 천지(1995)>
<백두산 총서 (동물)(1993)>
<백두산 총서 (지질)(1993)>
<어린이 피아노 교측본 (2)(1994)>
<언어학 론문집 (10)(1991)>
<조선고고학전서 원시편(석기시대)(1990)>
<조선대백과사전 (1)~(12) (1995~1999)>
<조선부문사-조선 수군사(1991)>
<토끼와 자라(조선민화집(1989)>
<팔만대장경해제 (1)~(15)>

지금은 이렇게 있습니다. 아직 인가를 받지 못해 기다리고 있는 책도 퍽 많다 합니다. 이 책들까지 풀리면 남쪽 학자들이 손수 북쪽으로 찾아가서 북쪽 책을 찾아서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으나 그나마 `책'은 만날 수 있어 좋지요. 그래서 갈라진 지 쉰여섯 해가 되는 동안 남북 학문과 문화와 사회가 달라서 골이 깊어져 가는 틈도 알차게 채워나갈 길도 찾을 수 있을 테고요.

북녘책도 남녘책과 마찬가지로 책이름만 주욱 들어서는 잘 모릅니다. 손수 찾아가서 보고 책장을 넘겨보고 읽어 보아야 둘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배울 구석은 배우고 모자란 구석은 비판도 해 가고요.

이제 서울역 앞에 있는 헌책방 <서울북마트>는 홀로 외롭지 않습니다. 북한책 전문서점이 자리하면서 두 곳을 함께 찾아가면 더 없이 알뜰한 책방 나들이가 될 수 있기도 하니까요.

덧붙이는 글 | [서울역 서울북마트] 02) 701-8327 / 071-365-3432
 [대훈서적 서울지사] 02) 3273-2900

여기에 올린 목록은 <대훈서적> 서울지사에서 받아서 올렸습니다. 책이름과 펴낸날만 적었고 책값은 따로 적지 않았습니다. 목록을 보시고 찾을모가 있는 책은 이곳에 전화로 주문을 하고 은행으로 돈을 부쳐도 우편으로 보내 줄 수도 있다 하더군요.

<대훈서적>은 서울역 12번 나들목(4호선 나들목)으로 나와 바로 오른편에 있는 금주빌딩 205호입니다. 1호선을 타고 내리신 분은 용산쪽으로 걸어오시면 되고 버스를 타고 오시는 분은 버스정류장 바로 오른편에 있는 건물로 찾아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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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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