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폐막식을 마지막으로 올림픽이 끝났다. 남북 공동입장의 감격도 금메달 획득의 함성도 이젠 분주한 일상으로 묻혀질 것이다. 보름여 동안 눈물과 감격을 만들어냈던 남과 북의 선수들이 시드니올림픽을 마무리하는 행사를 각자 가졌다.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어울린 시드니 해변의 오후

10월 2일 월요일은 이곳에선 올림픽 홀리데이다. 다들 고생했으니 하루 쉬라고 특별히 임시 공휴일을 마련해 둔 모양이다. 중고생 정도 되어 보이는 친구들이 서핑보드를 들고 옆 집 가듯이 해변을 찾아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이국적이고 여유로워 보인다.

시드니에 있는 젊은이들이 즐겨찾는 해변은 오페라하우스에서 배를 타고 30여분 가면 도착하는 멘리해변. 9월의 마지막 토요일, 오늘은 이 여유로운 해변에 낯선 방문객이 같이 했다. 북한 올림픽 대표단. 올림픽 기간동안 선수촌과 경기장만을 쳇바퀴 돌듯이 다녔던 이들이 모든 경기를 끝내고 회포를 풀려고 모였다.

한국 기업체에서 남과 북선수들을 모아 파티를 열어주려고 애를 썼지만, 이들은 다 사양하고 그간 자신들을 도와준 분들과 조용히 점심을 먹으며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여름 한낮을 보냈다.

정성껏 준비해 온 식사를 맛있게 먹은 후,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둥그렇게 원을 그려 수건돌리기를 하는데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이들이 함께 아는 노래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밖에 없어 계속 같은 노래에만 맞춰 게임을 진행하는데, "이 노래가 이렇게 재밌는 노래였네..."싶게 너무도 잘 어울린다.

북한의 레슬링 동메달리스트 강용균 선수는 오늘 인기스타다. 남쪽의 여자 친구들이 그와 사진을 찍기 위해 길게 서 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눈을 둥그렇게 하고 "어허, 줄 서요, 줄 서"를 외치는데 그 모습이 과히 싫지 않은 모습이다.

올림픽에선 멋진 개인기를 보여주면서, 간단한 게임에 자꾸 틀리는 배길수 선수에게 사회자가 원숭이 흉내내는 벌칙을 준다. 멋적어하면서도 체조선수답게 잘도 따라한다.

서로 식사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게임을 한 몇 시간이 이들에겐 어쩌면 시드니에서의 유일한 남한친구들과의 만남의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서로 어색하고 서먹할 텐데도 금방 웃고 박수치는 이들을 보면서 어느 누구도 이들이 50년 이념의 벽 속에 등을 맞댔던 적들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적어도 남북의 젊은이들은 금세 서로 친구가 됐다.

두 아이의 엄마 김수녕의 멋진 재기

김수녕 선수는 TV에서 본 것보다 훨씬 예뻤다. 나와 같은 나이인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다가 은퇴, 다시 복귀하여 새로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화려한 삶을 살았다.
"그렇게 잘 하시는 분이 왜 은퇴하셨어요?"
"그땐 양궁이 너무 싫었어요. 근데, 아기 낳고 집에 있으려니 다시 그리워지더라구요."
"혹시 후배를 위해 내 자리를 물려줘야겠다 생각하신 건 아니구요?"
"뭐 그런 생각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하는 데까지 계속 해보고 싶었죠."
"동메달따고 눈물 흘리셨잖아요."
"그건... 너무 감격스러워서..."
"나중에 코치같은 거 하실 생각은 없으시구요?"
"아니요. 전 선수로 만족해요. 코치는 못할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 여자선수들을 챙기는 그녀의 모습은 충분히 훌륭한 코치의 자질이 있어 보인다. 유승준을 좋아한다는 양궁 금메달리스트 윤미진 선수와 마치 친언니같이 얘길 주고 받는 모습에서도 그랬다. 7살짜리 꼬마가 빨리 오라고 했다며, 폐막식 끝나고 얼른 집에 가 아기한테 메달을 걸어주고 싶다는 그녀는 강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가 있어서 한국 선수단, 참 든든하다 싶다.

"금메달을 땄으니 인기스포츠가 되겠죠?"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김영호 선수. "메달 따고 첫 인터뷰를 '펜싱을 사랑해 달라'였는데, 왜 그런 말을 했나요?"
"시드니로 출발하기 전부터 메달을 딸 것이란 자신감은 있었어요. 그래서 '메달 따면'하고 준비했던 말입니다. 우리나라 스포츠가 너무 인기종목 위주로 편중돼 있잖아요. 그래서 펜싱도 야구나 축구처럼 사랑해 달라는 뜻에서 했던 말입니다. 펜싱이요, 참 괜찮은 운동이에요."

비인기종목이라는 설움이 컸었는지 기자에게 상당히 열심히 펜싱의 장점에 대해 설명한다. 나도 나중에 꼭 해 보기로 약속했다. 그의 옆에 이상기 선수가 앉아 있다. 고장난 칼로 경기해서 득점을 못해 아깝게 동메달에 머물렀다고 언론에 나왔던 그 선수다.

"그건 주최측의 실순데, 재경기나 그런 절차가 없었어요?"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다.
"그거 잘못된 보도였어요. 언론에선 칼이 고장난 것을 모르고 경기해서, 다 이긴 게임을 놓쳤다고 했는데 저흰 경기하면서 계속 득점란을 확인하거든요. 초반 시작할 때 칼이 잘못된 것을 알고 바로 교체했어요. 승부와는 상관없는 얘기였는데... 이상하게 그렇게 보도가 나갔더라구요."

나도, 어?하는 소리가 나왔다. 왜 그런 오보가 나갔을까. 여하튼, 이상기 선수의 동메달은 운이 나빴거나 조직위측의 실수가 아니고 100% 자기 실력이었다.

그러나 워낙 유럽벽이 높아 프랑스, 이태리, 독일, 헝가리를 제외하고는 세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불가능한 펜싱이란 종목에서 획득한 금과 동메달은 분명 값진 것이었다. 더군다나 비인기종목이라는 설음을 겪으면서 말이다.

대전 도시개발공사에 소속된 김영호 선수는 연산중학교 시절부터 펜싱을 시작했단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펜싱을 하고 있는 친구는 하나도 없단다. 전망도 밝지 않고 후원해주는 곳도 없어서 다들 중도에 포기했다고 한다. 그렇게 고생 끝에 좋은 결과를 얻은 김선수는 동료들과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이제 펜싱도 금메달을 땄으니 인기 스포츠가 되겠죠?"

나도 그러길 바란다. 어제 강호 네덜란드와 막상막하의 경기를 한 남자하키도 그렇고 자비로 밥 사먹으며 연습했다던 여자하키 얘기, 체조며 육상에서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위해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참아가며 악착같이 연습했던 우리 선수들 모두, 올림픽을 통해 더 충전되고 더 행복했으면 한다.

나도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하키, 핸드볼, 체조, 수영, 육상이 얼마나 재밌고 멋진 경기인지 알았으니까. 인기 스포츠만 발전하는 게 아니라 여기 호주처럼 온 국민이 모든 스포츠를 다 즐기고 사랑하면 더 좋겠다.

KOREA란 이름으로 올림픽을 치뤄낸 젊고 강한 우리 남북의 젊은 선수들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0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욕 거주중.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