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올림픽을 정확히 일주일 앞둔 9월 7일. 난 오연호 대표기자에게 면담을 요청, 미리 작성한 기사 두 편을 들고 오마이뉴스 사무실을 찾았다. 두 편의 기사가 일단 합격점을 맞자, 준비하고 있던 '시드니 올림픽 ohmynews 취재 계획서'를 내밀었습니다.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생각보다 쉽게 계획서가 오케이되자, 갑자기 바빠졌습니다. 비행기표 확인하랴, 숙소며 일정 등을 연구하랴 하루가 12시간이 돼버린 느낌이었죠.

어쨌든 시드니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제일 싼 비행기표여서 20시간 비행은 감수해야했죠. 세 번째 비행기에서 새벽을 맞는데, 벌써 눈앞이 노랗더군요.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하구 있지' 싶기도 하구... 눈물이 핑돌았지만 앞으로의 일정이 산적한지라 꾹 참았습니다.

허겁지겁 준비된 올림픽 취재. 시드니 공항에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올림픽기간이라고 한국에서는 숙소를 예약할 수 없어서 PC통신 사이트를 뒤져 뒤져 간신히 민박집 전화번호를 하나 알아가지고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었는데, 이런, 일정이 변경됐다고 하는 겁니다.

택시를 잡아타고 전화로 들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지명을 찾아가려니 택시운전사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길 찾는다고 오히려 나한테 화를 내고, 나도 처음 만나는 호주 아저씨의 짜증에 화가 나, "아저씨, 난 외국인이고 처음 이곳에 온 사람이에요. 근데 아저씨 너무 불친절하신거 아니예요. 우리 경찰서가서 확인해 보죠. 경찰서 어디예요?"

올림픽기간에 그런 일로 경찰서 출입하면 별로 안좋은지 한참을 헤매다 내렸습니다. 배낭을 앞뒤로 메고 카메라를 들고 지도를 확인해가며... 그렇게 처음부터 우당탕당 요란하게 하루를 다 보내고 얻은 민박집. 처음 민박을 말씀하신 분이 교회의 권사님집이었습니다.

요즘은 방이 없다며 그 집 딸과 한방을 써야했는데 다행히 식구들이 너무 좋으신 분들이라 불편하면 어쩌지하는 처음의 걱정은 덜었습니다. 그대신 전 권사님의 인도로 매주 일요일 교회에 나가 새신자 등록까지하고 청년부 가입권유까지 받았답니다. 네, 물론 목사님의 축도도 받았지요.

나는 오마이뉴스에서 '저 시드니 갈께요오'하면 '그래? 그럼 여기 아이디카드있구 숙소는 알아서 해줄테니 걱정말구, 취재만 열심히하게.' 할 줄 알았습니다. 근데, 취재용 노트북하나 달랑 주더구먼유.

"어디서 오셨어요?"

취재를 하려고 다가가면 제일 먼저 묻는 말. 유명한 언론사라면 '어디요!'하면서 바로 취재할 수 있는 것을 저는 "인터넷 신문이라고요...한국에서 꽤 유명한데요. 아니, 아직도 모르셨어요?" 이렇게 한 십여분을 ohmynews에 대해 설명한 후 취재를 시작해야 한답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올림픽을 계기로 호주도 ohmynews에 대한 인식이 꽤 높아졌을 겝니다. 아, 목 아퍼.

"근데, 왜 그 흔한 아이디카드 하나 없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의 설명을 하면 고개 끄덕이는데, 그중 의심의 눈초리로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아이디카드 없어서 서러움 당한 거 생각하면 날밤 새고 울고 싶지만 - 경기장 출입 안돼죠, 포토라인에 출입금지죠, 인터넷시설 잘 되어 있는 프레스센타 사용 못하죠, 매번 2-3시간씩 줄서서 표사야 되죠, 것도 없으면 경기장밖에서 암표상 기다려야 하죠 등등 - 이렇게 묻는 분들한텐 이렇게 얘길 했죠.
"아이디카드가 2년전에 등록마감을 받았다고하대요. 근데, 저희 oh...는 그땐 아직 태어날려구 생각도 않고 있었던지라.."

"몇 분이나 오셨어요?"

아니,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다구... "흠흠..저도 확실한 숫자는 잘모르는데요, 저 포함해서 한 댓분." 제가 얼굴 본 분은 김나령 기자밖에 없지만서두요.

하지만, 불편하고 부족한 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곧 인터뷰 기사 올릴 시드니에서 제일 바쁜 한승수 목사님 같은 경우는, 너무 바쁘시고 고단하신대도 oh..는 특별하게 대접해 주십니다.

그분은 제가 드린 뉴스게릴라 명함을 받고 아주 감탄하셨습니다. 기자가 아니라 게릴라라는 단어가 참 맘에 드신다구, 또 뒤에 적혀 있는 기자윤리강령 '모든 시민은 기자다는 정신으로 당당하면서도 겸손하게 취재에 임한다. 기자임을 이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지 않는다.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을 위해서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다'를 크게 읽어보시기까지 하시더라구요. 주변 분들에게 '기자보다 더 무서운 게릴라'라고 소개하시면서요.

17일이란 기간이 짧지만은 않은 기간입니다. 서울에 있을 땐 몰랐는데, 여기 시드니에서는 정신없고 더 짧게만 느껴집니다. 아무도 지시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하고 알려야 하는 일들을 찾아다니는 일. 그게 뉴스게릴라의 임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 ohmynews에 기자회원신청을 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 뽀얗게 먼지가 묻은 비디오를 동생이 책꽂이에서 찾아왔는데, 그게 옛날에 보았던 'The Missing'이었습니다. 거기 콜롬비아에서 실종된 아들을 찾아 미국에서 건너온 아버지에게 아들의 여자친구가 한 말이 있습니다. "뉴스위크나 타임지에서의 보도가 전부가 아니라 생각하기에 우리들은 여기 온 거예요. 그래서 그 진실을 찾다가 당신의 아들이 실종된겁니다. 진실을 가리려는 자들에게요."

전 이 낯선 외국땅에서 매일 제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무모한 용기나 어설픈 분노로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에 비해 별 능력없는 제가 써서 전송하는 기사는 현실에 비해 무척이나 미미하고 약하다는 생각들.

그래도 기존 언론사들과 비용이나 취재조건 등에서 뭐 하나 나은 게 없는 팍팍한 조건이지만 그래도 그들이 주목하지 않고 취급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내 시각으로 선택하고 공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자본의 축제 속에서도 꿈틀거리는 희망을 찾아낸다는 기쁨 등이 이곳에서 취재하는 오마이뉴스 게릴라의 매력이라고 하겠습니다.

나의 시드니에서의 보름이 쓸데없는 바위치기는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나와 다른 공간이지만 우리와 같은 믿음으로 이 땅을 살아내는 이곳 젊은이들을 보면서, 나의 여전히 식지 않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면서 여기 시드니에서의 보름이 누군가에겐 분명 디딤돌이 될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0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욕 거주중.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