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 포스터.
시네마달
"저희는 나라를 이끄는 모든 어른들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책임자를 엄벌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왜 희생되어야만 했고, 왜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더 많은 희생자가 생겨야만 했는지에 대한 확실한 조사를 해 주시고, 보다 안전한 나라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부탁드리겠습니다…"학교 정문에서 편지를 읽던 학생은 치솟는 감정을 견디지 못합니다. 생존학생 학부모 대표가 대신 읽어냅니다. 이윽고 아이들을 손꼽아 기다리던 세월호 참사 희생학생 부모들이 퉁퉁 부은 눈으로 아이들의 어깨를 어루만지고 부둥켜안습니다. 이날은 세월호 참사 76일째인 2014년 6월 25일. 안산 단원고등학교 생존학생들이 첫 등교를 하는 날입니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영상단 다큐팀이 참사 이후 1년 4개월 동안 유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정성스레 필름에 담은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의 오프닝 장면입니다.
영화는 세월호는 침몰했으나 진실을 침몰시키지 않으려는 필사의 안간힘을 오롯이 담았습니다. 영화는 평범한 엄마 아빠가 왜 국가에 맞서 싸웠으며, 국가의 민낯을 대면하고서도 다시 국가에 맞서온 시간들을 복기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우리에게 국가(엄밀히 말해 박근혜 정부)란 무엇인가?'라고.
이어 카메라는 배우 문소리의 내레이션을 따라 2학년 교실(현재 3학년 명예교실)로 가선 텅 빈 교실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한 남학생을 오래도록 비춥니다. 이 학생이 앉은 교실은 영화의 포스터가 됩니다. 포스터에는 영화의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단원고 교실을 정면에서 촬영한 <나쁜 나라>의 포스터 속에는 역설적이게도 '국민'과 '국가'의 관계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희생학생의 책상에 국화꽃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교실. 칠판은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을 향한 그리움과 우정으로 덮여 있습니다. 선생님 교탁도 시간표도, 게시판도 이전과 똑같이 그 자리에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가 한 공간에 공존하고 있지만 교실은 비어 있습니다. 교실의 주인인 아이들만 없을 뿐입니다.
그런데, 도드라지게 눈에 띄는 곳이 있습니다. 교실 정 중앙 꼭대기에 있는 태극기입니다. 생전의 아이들이 한 번은 크레파스로 꿈과 희망을 담아 그렸을 태극기입니다. 하지만 지금 태극기는, 이 기막힌 풍경을 만든 국가를 상징합니다. 영화 속 '보현 엄마'가 삭발한 채 "전 태극기가 진짜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싫습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국가 권력을 가리킵니다.
'텅 빈 교실에 가만히 앉아, 당신을 기다립니다'라는 카피는 밤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에게 국민들이 띄우는 편지입니다. 망각에 대항하는 기억의 약속입니다. 기억의 책임인 행동이 실천하는 만큼 역사는 기록되고, 기억한 만큼만 역사는 움직이고,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다짐입니다. 그리고 진상규명이 되는 날, 다시 만나 해원상생의 춤사위를 덩실덩실 추기 위한 기원문입니다.
'국민 말고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이라는 타이틀은 발가벗겨진 대한민국을 가리킵니다. 단식 농성하는 유가족 옆에서 국악 공연하는 국회, "살려주세요!"라고 절규하는 유가족을 거들떠보지 않는 대통령, 그들만의 반쪽짜리 특별법 타결, 언제든지 찾아오라던 대통령의 말만 믿다 '경찰산성'에 갇힌 유가족의 모습 등은 괴물이 되어가는 국가의 모습입니다. 영화는 야만과 폭력으로 괴물이 된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비켜가지 않습니다.
'국민의 힘'으로 가능했던 세월호 진상규명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