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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최후의 날', 화석이 된 연인의 이야기

[리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 '타이타닉'과는 다른 불멸을 완성한다

14.02.26 11:45최종업데이트14.02.2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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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폼페이: 최후의 날> 영화 포스터 ⓒ D&C 엔터테인먼트,롯데엔터테인먼트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고대 로마의 화려했던 도시 폼페이는 단 18시간 만에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역사로 존재하던 폼페이는 1592년 한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굴되면서 다시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뜨거운 화산재를 피하려다 묻혀버린 폼페이 사람들이 고스란히 간직된 인간화석은 그날의 상황이 얼마나 처절했는지를 알려주는 증거였다.

화산 폭발이란 대재앙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문명,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 자들의 마지막 시간이 기록된 인간화석 등에서 후세 사람들은 자연의 힘에 대하여 경외감을 가지게 된다. 또한,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게 해준다.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폼페이는 그림, 도서 등 다양한 문화에서 계속 다루어졌고, 영화 역시 수 차례 만들어진 바 있다. 1908년에 만들어진 <폼페이 최후의 날>은 재난 영화의 서막을 열었던 작품이다. 이후 폼페이를 다룬 영화는 1913년, 1926년, 1935년, 1950년, 1960년에 만들어져서 사랑과 음모로 얽힌 남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등 각기 다른 소재로 대중과 만났다. 그리고 각 시대에 가능한 기술을 동원하여 사상 최대의 화산 폭발을 스크린에 재현했다.

화산 폭발하던 '그 날'보다 거기 있었던 '사람들'에 방점

▲ <폼페이: 최후의 날> 영화의 한 장면 ⓒ D&C 엔터테인먼트,롯데엔터테인먼트


폴 W.S. 앤더슨이 연출을 맡은 <폼페이: 최후의 날>(이하 <폼페이>)은 폼페이에서 발굴한 인간화석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인간화석을 통해 과거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방식은 침몰한 타이타닉호에서 보물을 찾기 위해 탐사하던 사람들이 생존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드는 <타이타닉>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폼페이>는 도입부부터 '그 날'의 스펙터클을 재현하기보단 그 날에 거기 있었던 '사람들'에 방점을 찍겠다고 표명한다.

<폼페이>는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태생에 걸맞게 화려했던 폼페이의 문명을 충실히 건설하고, 재난 영화의 필수 요소인 스펙터클한 장면을 구성한다. 여기에 <글래디에이터>를 연상케 하는 검투사들의 대결을 넣어주면서 액션의 쾌감을 영화에 가미한다.

하지만 재난 영화가 쉽사리 빠지는 스펙터클의 유혹을 물리치면서도 운명의 드라마를 겹겹이 쌓아간다. <로미오와 줄리엣><타이타닉>이 그랬듯 <폼페이>의 두 주인공인 노예 검투사 마일로(키트 해링턴 분)와 폼페이 영주의 딸 카시아(에밀리 브라우닝 분)도 신분을 뛰어넘어 사랑에 빠진다.

마일로와 카시아의 관계에서 '말'은 중요한 장치로 등장한다. 두 사람이 처음 알게 계기는 마차를 끌던 말이 쓰러졌을 때다. 카시아의 말인 비레스가 난동을 부릴 때에도 마일로가 나서서 진정시킨다. 교감의 매개체로 작용한 말에 함께 올라타는 순간 두 사람의 운명은 하나로 거듭난다.

마일로는 화산이 폭발하는 상황에서도 카시아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 그는 "카시아는 날 위해 목숨을 걸었던 여자다. 내 자유는 그녀다"라고 말한다. 마일로에게 자유는 카시아이며 카시아에게 자유는 곧 마일로다.

두 사람은 죽음의 순간 앞에서 그들이 탔던 말을 떠나보낸다. 이것은 자신들을 가로막았던 과거를 떠나보내는 의미처럼 다가온다. 화산재가 엄습하는 순간 그들은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 그렇게 화산이 만든 피할 수 없는 운명과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그들의 운명은 동일한 의미로 합쳐진다.

죽음의 순간을 함께한 연인이 껴안고 있는 인간화석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처음 장면과 연결된다. 그들의 사랑은 <타이타닉>이 보여주었던, 살아가면서 영원히 기억되는 사랑의 형상과는 다르다. 마일로와 카시아의 사랑은 화산처럼 폭발하는 사랑이다. <폼페이>는 그들의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을 그리면서 <타이타닉>과는 다른 불멸을 완성한다.

▲ <폼페이: 최후의 날> 영화의 한 장면 ⓒ D&C 엔터테인먼트,롯데엔터테인먼트


폴 W.S. 앤더슨 감독이 우리에게 이름을 알린 작품은 게임을 영화로 옮긴 <모탈 컴뱃>이지만, 이전에 <쇼핑>으로 선댄스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던 전력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엑스맨>의 브라이언 싱어, <씬 시티>의 로버트 로드리게즈, <아이덴티티>의 제임스 맨골드와 더불어 현재 할리우드 상업 영화 시스템에서 주요한 위치를 점하는 이가 폴 W.S. 앤더슨이다.

<쇼핑>과 <모탈 컴뱃> 이후 <이벤트 호라이즌><솔저><데스레이스><에이리언 VS 프레데터><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등을 되짚어보면 그의 다재다능함이 선명히 보인다. 서브컬쳐인 게임을 영화로 옮기는데 능하며, 최근엔 3D라는 기술에 일가견이 있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의 영화에선 재미가 펄떡거린다.

<삼총사>와 <폼페이>로 역사의 틀 안에서 자신의 역량을 시험했던 폴 W.S. 앤더슨은 자신의 대표작인 <레지던트 이블>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레지던트 이블 6>를 2015년에 내놓을 예정이다. 21세기에 창궐하는 '좀비 바이러스'를 유포시킨 장본인인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가 어떻게 대단원의 막을 장식할지 사뭇 궁금해진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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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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