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대표팀 선수들이 런닝 훈련으로 몸을 푸는 가운데 히딩크 감독이 선수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 스포츠서울

동네는 조용했다.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이 동네에서 정적을 깨고 고함소리를 질러대는 것은 우리 둘 뿐이었다.

16강 진출하던날, 광화문 지하의 풍경 - 강수연/곽기환 기자


가뜩이나 흥분하는 성격의 내력을 가진 외사촌 동생과 나는 주위 분위기와 상관없이 한국-포르투갈전의 내용에 따라 흥분하고, 감탄하며 두시간 가량을 보냈다. 남자의 우락부락한 소리를 질러대는 사촌동생과 가끔씩 동조의 감탄과 탄식 소리를 나는 내고 있었다. 박지성 선수의 환상적인 슈팅 장면에서는 거의 정신이 혼란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막상 승리가 확정되고 우리는 잠잠해졌다. 너무 벅찬 감동에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동생이 입을 열었다.

"학교에 가면 다들 죽었다. 이제"

사촌동생은 이곳에서 사립대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현지인 친구들이 전부 다 한국이 절대 못 이긴다고 말했다고 했다. 엄청난 금액의 내기까지 하자고 하면서 동생의 약을 올렸던 모양이다. 엘지가 인도네시아 기업이라 했다면서 자주 한국에 대한 몰 이해와 일본에 대한 지나친 찬사에 대해 불만을 동생은 표시하곤 했었다.

현지인 과 친구들은 한국이 포르투갈을 어떻게 이기냐며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동생에게 장담했었다고 한다.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절대 지면 안된다고, 지면 학교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이겼으니, 이제 학교가서 친구들에게 어깨 당당히 펴고 한국이 이기지 않았냐고 자랑할 모양인가 보다.

현지 월드컵 독점 제공 방송인 RCTI는 개최국 한국과 세계 최강팀 중 하나인 포르투갈의 경기를 중계했다. 경기 시작전 중계 화면이 설치된 챔피언 까페에서 이벤트 행사를 벌였다. "포르투갈 응원단 손들어 보세요"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와"하고 소리를 질렀다. "한국 응원단 손들어 보세요" 했을 때는 뒷자리에 몇 사람들이 포르투갈 응원단의 절반도 안되는 듯한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행사 진행자는 그 자리에 응원 나온 한국 여성들에게 한국어로 응원 구호를 즉석에서 부탁하기도 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고, 전반전에 포르투갈 선수가 퇴장당한 채 밍밍한 상태로 끝나자 오늘은 휴식시간 중 별다른 멘트가 없었다. 하지만 심판이 포르투갈 선수에게 레드 카드를 준 것은 대단히 정확한 판단이었다고 칭찬했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영어로 제공되는 멘트는 박지성 선수가 골을 넣자 환호성을 보내며 한국의 "빅데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대통령의 얼굴과 응원단의 모습이 화면으로 나오자 감동적이었다.

결국 한국의 승리로 경기는 끝나고, 인니 축구 전문가는 한국 선수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포르투갈이 결코 실력이 없는 팀은 아니며, 마지막에 보여준 공격력은 그들의 저력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포르투갈의 패인은 그런 적극적인 공격을 경기 전반전부터 보이지 않고, 경기를 질질 끌었기 때문이라고 따끔하게 꼬집었다.

인니에서는 그 누구도 한국이 포르투갈을 이길 것이라고 예상을 하지 못한 것 같다. 미국전에서의 무승부는 그런 확신을 더 공고히 해 주었던 것 같다. 막상 경기를 이기고 나서 다시 챔피온 까페로 옮겨진 방송은 이번 경기와 관련해 이벤트 퀴즈 문제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나온 질문은 모두 포르투갈 선수들에 관한 것이었다. 애시당초 프로그램을 준비할 때 한국이 이길 것을 전혀 예상 못하고, 포르투갈에 관련된 질문만 준비했던 것으로 보였다. 포르투갈이 진 게임에서 포르투갈 선수들에 대한 질문만 나오니 김빠진 듯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들도 답을 맞추는 사람도 머쓱한 듯 조용한(?) 분위기에서 프로가 진행되었다.

이후 스튜디오로 옮겨진 퀴즈 프로그램도 한국에 대한 특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역력했다. 포르투갈 선수들에 관한 질문 일색이었다. 하기사 경기 내내 진행되던 이동 통신사의 선수 맞추기 퀴즈도 포르투갈 선수들에 대한 것 뿐이었다.

유럽 리그에 익숙해 있는 그들에게 미국에 비긴 한국이 피구가 되살아나 폴란드를 4대 0으로 격파한 포르투갈을 이길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통쾌한 승리가 아닐 수 없었다.

한국이 첫 승을 한 이후로 다소의 부진에, 일본이 약진하자 결국 일본이 아시아의 염원을 싣고 16강에 진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역력했었다. 게다가 한국이 맞닥뜨려야 할 팀은 세계 수위에 있으며 우승 후보로까지 꼽혔던 포르투갈이 아닌가? 전력을 다시 가다듬은 포르투갈을 한국이 이긴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려는 것과 같은 바람이라고 이곳 사람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이제 인니 전역에 "대한민국 짝짜짜 짝짝"은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구호가 되었다. 동시에 한국이란 나라의 이미지도 지울 수 없이 깊이 새겨졌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대진운이 좋은 편에 속했던 일본의 16강 진출과는 다른 한국의 저력을 보여준 경기였다.

"인도네시아에서 보는 월드컵" 이란 기사를 올리면서 다른 나라 월드컵 관람기를 열심히 찾아 읽었다. 내가 느끼는 것과 같은 자부심을 세계 여러 국가에서 읽을 수 있었고, 이번 월드컵이 한국인의 자긍심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 지 알 수 있었다. 나 자신도 미심쩍어 마지 않아 꿈처럼 여기던 16강이 실현되고 나니 기분이 얼떨떨하다.

대한민국 선수들, 거스 히딩크 감독,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에 계신 한국응원단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한국의 16강 진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또한 저도 제 자신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넵니다.
2002-06-15 00:00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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