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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에는 제가 좋아하는 만화영화 시디가 하나 있습니다. <뮬란>이라는 영화지요. 제가 봐도 좀 황당하고 사실과는 다른 면이 많지만, 뮬란이 결국 남성 우월적인 중국 사회 전체의 조아림을 받는 대목은 언제 봐도 감동적입니다. 그 영화 속에서 뮬란은 여성으로 천대 받고 차별받는 좌절과 그 극복을 멋지게 보여주지요.

이 영화를 보면서 단순히 '그래, 여자라고 무시하더니 저것 봐'라는 이런 감상만 남는 건 아닙니다. 뮬란이 여성의 사회적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 즉 남성에게 주어진 국가와 가족을 위한 위대한 병역의 의무, 그걸 짊어지고 그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나간 과정을 주목하게 됩니다.

여자도 군대가라. 그런 말 많이 나오죠. 요즘.

저는 그 여자도 군대가야 한다는 문제에 대해 오랜 시간 많이 생각해 봤습니다. 특히 <로마인이야기>나 로마 역사를 들여다보면서입니다. 왕과 귀족의 대립, 귀족과 평민의 대립, 그 피비린내 나는 싸움 속에서 특히 평민층이 발언권과 중요한 권리를 갖는 시민권을 확립하게 된 것은 전쟁에서 병역에 참가하면서부터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가를 지킨다는 대의 명분과 그 용맹 앞에 전 국민을 휘두르던 귀족들이, 국가의 위기 앞에 평민들을 군인으로 전장에 참가시키면서 그 권리를 인정해주기로 한 것, 즉 국가에 대한 주요 의무가 평민들의 계급 투쟁에서 국가에 대한 주요 권리를 요구하는 바탕이 되었던 거죠.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문제도 어느 정도는 계급 혹은 계급에 유사한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병역 문제는 누구나 인정하는 첨예한 사안입니다. 어느 대통령 후보를 두 번이나 낙방시킨 주요 원인이었고, 남녀 갈등의 최정점에 있으며, 심지어는 별 상관없을 것 같은 연예인 문제에까지 불거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남녀 양쪽에서 모두 돌맞을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의무 없는 권리는 없습니다. 누구나 공평한 법과 정의, 의무에 대한 적용을 받아야 모두가 불만없이 참여할 마음이 생깁니다. 의무를 수행한 다음에 주장한 권리는 결국 누구도 거부할 수 없게 됩니다.

저는 모든 남성 및 여성이 병역 의무나 그에 준하는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전투는 옛날처럼 남성의 힘이나 체력에서 좌우되던 것과는 많이 다른 것으로 압니다. 여군도 많이 늘었고, 여경도 많습니다. 여성도 훈련을 받으면 일정 수준 이상은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요즘 현역의 필요성이 많이 줄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공익근무 인원이 많다죠? 저는 모든 남자들이, 모든 여성들이 군인이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무를 이행하는 내용에 있어서는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조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차별이 아니지요. 하지만, '시간' 문제에서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군 면제를 받은 사람들도, 예를 들어 일상 생활이나 다른 활동에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군역이 아니고, 공익이 아니더라도 다른 대체 근무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는 면제 받고 누구는 돈 없고 빽 없어서 풀타임으로 병역 이행했다는 말 안 나오게 어떤 식으로든 군에 가 있는 젊은 그들만큼 '시간'을 사회에 헌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나름대로 이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해보고 싶다며, 병영 체험을 하는 장애우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총이 아니라 다른 걸 들고서라도 이 사회에 헌신할 방법은 많고, 그 도움이 필요한 곳은 많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 봤는데, 병역의 의무 대신 전 국민의 '사회공동체 복지의무' 뭐 그런 건 어떨까요?

노령화 사회가 되고, 불우한 주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도와줘야 할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잘 모르긴 해도 자원 봉사를 받아야 할 곳은 무진장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병역이 아니면 그런 것이라도 하자는 것이지요. 요즘 군대가 2년이라고 하던데, 그러면 군대 안 가는 사람들은 다른 걸 해서라도 그 2년을 똑같이 사회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뭐 여기에 여러 현실적인 반론이 많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그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까지는 일일이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입니다. 누구나 예외없이 공동의 의무를 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똑같은 시간을 같이 나누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사회적 의무를 이행한 다음에야 권리도 주장할 수 있을 거란 얘기입니다.

여기서 여성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겠습니다. 비공식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온갖 불이익들을 알고 있느냐? 여자는 애도 낳는다. 맞습니다. 저 자신 여성이고, 애 낳은 엄마입니다. 왜 그걸 모르겠습니까? 애를 임신하고 낳는 고통, 그리고 평생 그 아이에게 매달리게 될 육아의 문제가 군대 2년 못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저도 2년 '집중적'으로 고생하고, 나머지 세월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감정적 대처는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여성에게 집중되는 사회적 차별, 의식의 문제, 법제의 문제, 그 모든 것은 비공식적인 모양새로 암묵적으로 수면 아래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모든 걸 당당히 표면 아래로 끌어내야 됩니다. 호주제 폐지 등 봉건적 악법을 폐지하고, 의식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좋을 때는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라고 하면서, 임신과 출산, 양육의 문제에서는 왜 개인의 차원으로 끌어내려 모든 것을 개인 중에서도 특히 여성에게 짊어지게 합니까? 그러면서 그에 따른 사회적 대접은커녕 차별과 고통만 주곤 하지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제도화가 필요합니다.

유교 가부장제의 많은 전통들이 조선초 경국대전에서 시작되어 사회전반에 일반화된 건 조선 중기에서 말기 사이였다고 하더군요. 이렇듯 제도화와 그 제도가 진정으로 사회화되는 과정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특히 제도화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여성의 권리를 제도화시키고, 표면에 끌어내기 위해서는 다른 중요한 사회적 의무를 수행할 능력을 사회에 입증하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로마 시대 귀족과 평민의 계급 투쟁 과정은 그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더 이상 여자들이 유리한 것에만 소리를 높인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고 여성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려면 그에 따른 의무도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같이 바쁘고 기계적인 사회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사회 봉사 등을 하게 된다면 사회복지 수준도 많이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혹자는 군대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면서 의무제가 폐지되어야 한다고도 하시더군요. 그것까지는 앎이 적어 판단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건 누구도 예외없이 똑같은 의무를 지고, 같이 실천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럼 아줌마도 나라에서 시키면 할 거냐구요? 해야죠. 나만 아니라 세상 사람 모두가 다 한다는데, 그러면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더 이상 젊은이들 사이에, 혹은 여성과 남성 사이에 공평성의 문제로 인한 골이 더 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병역은 어느 집 할 것 없이 해당되는 공통의 문제이고, 사회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제 이런 생각을 같이 일하던 어느 분께 말했더니, 글로 쓰는 건 제발 참으라고 하시더군요. 난리날 거라고. 돌맞을지도 모른다고. 제 말을 들은 분들은 그런 말이 먹힐까하고 부정적으로 말씀하시더군요. 하지만, 제 생각에 이제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것도 여성의 입에서요.

제 생각이 비현실적인 뜬 구름과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사회 전체의 통합을 위해 이런 문제에서부터 국민들 사이의 분열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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