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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화교학교 학력 불인정은 차별'이라는 결정을 이끌어낸 담도경 서울교대 교수가 15일 전 직장인 서울 연희동 한성화교중고등학교 교정에서 밝게 웃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윤선

"화교가 정부 수립 이후 50년 넘게 한국에 낸 교육세를 모조리 돌려주든지 아니면 화교학교 학력을 인정하라."

지난 13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조영황)가 한국 내 화교학교 학력 불인정은 인권차별이므로 교육부는 학력 인정 방안을 마련하라는 내용의 권고 안을 발표했지만, 담도경(50) 서울교대 평생교육원 중국어 교수는 안심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인권위가 권고안을 발표한 지, 만 이틀째 되던 15일 오전 서울 연희동 한성중·고등학교(이하 한성화교학교) 교정에서 만난 담 교수는 "교육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헌법소원을 낼 것"이라고 앞서갔다. 교육부 태도를 지켜보면서 대응방안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121년 한국인과 함께 살았지만 아직도 우린 이방인"

"인천 화교초등학교가 105년 됐고, 서울 명동에서 연희동으로 이사 온 한성화교학교가 개교 55주년이에요. 1882년 임오군란 때 군역상인으로 한국에 들어온 40여명의 군역상인과 산둥반도와 동북지방에서 중국인들이 들어와 산 게 오늘날 화교의 역사입니다. 121년간 한국인과 함께 살았지만 우린 아직도 이방인이죠."

허탈하게 웃는 담 교수는 1945년 산둥반도에 살던 부모님이 한국으로 이주한 뒤 55년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서울 토박이'다. 33년간 한성화교학교에서 한국어 교사로 재직하다 올 1월 퇴직하면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화교인권 문제를 하나 둘, 정책적으로 풀어내기로 했다. 그 첫 번째 작품이 학력 불인정 문제다.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화교학교 학력을 인정하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학력인정이 안 됩니다. 교육부는 몇 가지 근거를 들어 불가하다는 입장이지만 저희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워요. 특히 대만과 중국정부는 한국정부가 인정한 한인학교의 학력을 인정하는데, 왜 한국정부는 대만정부가 인정하는 화교학교의 학력을 불인정하나요?"

교육부는 ▲외국인학교의 학력인정은 입시문제로 외국인학교에 재학중인 한국인의 학력 인정 문제 ▲'외국인학교설립운영규정' 제정 이후 해결해야 하는 점 ▲교육부가 운용중인 '각급 학교' 운용의 근저를 훼손할 우려 ▲학력인정은 자국 현실에 따라 달리 적용하는 제도적 문제 등을 이유로 화교학교의 학력인정에 부정적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담 교수는 "대만에서는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주당 2∼3시간만 수업하면 외국인학교로서의 학력을 인정하고 있다"며 "심지어 한국 화교학교는 한국어만 주당 3시간, 한국 대학진학반은 지리, 역사, 물리, 화학, 생물 등 한국인 학교와 맞먹는 정도의 한국관련 수업을 하고 있는데도 학력인정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인권차별"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화교학교의 학력 인정이 외국인학교 개방의 근거가 된다면서 무조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교육관련 단체들의 입장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혼 권하는 한국사회

▲ 담도경 교수는 "교육부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헌법소원을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담 교수의 뒤편에는 삼민주의를 제창한 중화민국의 정치가 쑨원의 동상이 서 있다.
ⓒ 오마이뉴스 장윤선
전국의 화교초등학교는 26개교, 중·고등학교는 4개교다. 26개 초등학교 중에는 미등록 학교도 있다. 학생수가 3∼4명 정도 수준이어서 대만정부와 협의해 분교 방식으로 처리할 지 고민 중이라고 한다.

문제는 한국정부가 인가한 학교든 인가하지 않은 학교든 모든 화교학교에 대한 학력인정이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학력 불인정 때문에 화교 학생들이 겪는 이중고는 심각한 상황이다.

"화교중·고교가 없는 지역에 사는 학생들은 검정고시를 봐야 한국학교로 전학 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충남 논산 화교초등학교 졸업생이 서울 등 도회지까지 나오지 않고 교육을 받으려면 한국학교에 가야 하는데, 검정고시를 치르지 않으면 전·입학이 안 되는 거예요. 학력 불인정 때문이죠. 화교학생들의 '교육이동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화교중·고교 졸업생도 대학시험을 치르려면 검정고시를 봐야해요. 대부분 외국인 특별전형을 치르기는 하지만, 이 문제 때문에 대만으로 '유학' 가는 학생들도 많아요."

담 교수에 따르면, 부모가 모두 외국인인 '순수 외국인'인 경우에만 외국인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갈 수 있다. 몇몇 대학이 예외규정을 두고 있기는 하나, 어머니가 한국인인 경우에는 특별전형 대상도 안 된다.

자녀의 대학입시를 위해 외국에 가서 영주권을 취득한 후 재외국인 또는 외국인 특별전형을 치르려는 한국인 때문에 이 같은 조항을 두고 있는 문제와 관련, 담 교수는 "한국인들의 대학입시 전쟁이 화교 가족들을 비인간적 상황으로 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학 입시를 목전에 둔 화교(아버지)-한국인(어머니) 가정은 대부분 합의 이혼합니다, 서류 상으로. '순수 외국인' 자녀만 특별전형을 치를 수 있기 때문에 이같은 편법이 만연한 거죠. 편법으로 대학에 가는 한국인을 막으려는 조치지만, 결국 외국인만 피해 보는 상황입니다."

정보사회의 '문맹' 되라고?

이밖에 담 교수가 지적한 화교 인권문제는 ▲무용지물 외국인등록번호 ▲외국인 투표권 ▲영주권자의 법적 권한 미비 등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모두 외국인등록번호를 받는다. 한국인의 주민등록번호 체계와 같지만 효용성을 비교하자면 극과 극이라는 것이다.

담 교수는 "3개월 이상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누구나 받는 외국인등록번호로 인터넷 상거래를 할 수 없다"며 "어디든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주민등록번호 오류라고 떠 사실상 무용지물 외국인등록번호"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국정부가 부여한 외국인등록번호로 인터넷에 접근이 안 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한국정부가 외국인에게는 정보접근권을 주지 않는 것이고, 우리는 정보사회의 문맹으로 뒤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인터넷상에서는 모든 상거래를 하지 말라는 뜻 아닙니까? 그나마 일부 홈페이지는 가입 절차에 내국인과 외국인을 구분하여 가입을 하도록 하였지만, 그러나 대다수의 홈페이지는 사용 중에 실명을 확인하는 곳에서 주민등록번호 입력단계에서는 항상 오류 창이 떠요. 이건 교실까지는 들어오게 했지만 수업시간에 의자에 앉지 못 하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정부의 직무유기죠. 우리에겐 사기입니다."

"세금만 걷고 권리 박약한 한국... 인권지위는 세계 난민 수준"

담 교수는 "지금은 비록 개선되고 있지만 한국에서 화교의 인권적 지위는 세계 난민이 받는 지위만도 못하다"며 "한국인은 재일 교포의 지위향상을 위해서는 노력하지만 정작 한국에 있는 화교 등 소수민족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질타했다.

대한민국 건국 역사와 함께 같이 살아온 화교들을 비롯한 외국인 영주권자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뒤늦은 감이 있다는 게 담 교수의 입장이다. 물론 일본이 아직도 재일 교포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한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열린 사회라고 보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5·31 지방선거에서 일생일대 처음으로 투표했어요. 그동안 온갖 세금을 내며 의무를 강요당했지만 아무런 권리는 없었죠. 그런데 첫 투표를 하고 나니 이제야 한국인들과 똑같은 권리, 의무, 책임이 있다는 동류의식이 생겼어요."

담 교수는 "아무리 심각한 인권문제일지라도 표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한국정치인들이 이제는 화교인권을 위해 움직이게 돼서 다행"이라는 속내를 전하기도 했다.

또 하나,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영주권자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아무런 규정이 없는 것도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어려움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전 F5 비자예요. 영주권자를 의미하죠. 문제는 출입국관리법에 영주권자에 대한 권리와 의무 조항이 없어요.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은 내국인에 준한다든지, 영주권자의 권리는 무엇이라든지…. 아무것도 없죠. 그만큼 관심이 없는 것이겠죠. 정부의 노력이 필요한 것 아닌가요?"

담 교수는 인터뷰를 끝낼 무렵, 한 가지 걱정을 꺼내 놓았다. 시원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긴 했는데 '뒤'가 걸리는 모양이었다.

"가끔 하급 관리들이 '살기 싫으면 제 나라로 떠나면 그만이지, 왜 이러쿵저러쿵 하느냐'고 말합니다. 화교인권 주장하면서 법률적 근거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점점 더 엄격한 법·제도가 나와요. 그래서 그냥 참죠. 우린 소수자니까…."

▲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위치한 한성화교중고등학교 교정.
ⓒ 오마이뉴스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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