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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관묵 기자의 '피할 수 없는 콤플렉스라면 즐겨라'를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그런데 콤플렉스를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겠지만 피할 수 있는데도 즐기는 건 좀 문제가 있다. 그게 바로 나다. 나의 콤플렉스 극복기는 총 3단계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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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콤플렉스라면 즐겨라

처음은 자포자기 심정의 과정이었다. 남들은 다 중년 시절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배가 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나오기 시작하더니 군대시절 잠시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도통 빠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독한 냄새가 나는 화장실에 있어도 오래 있다보면 그 냄새에 무감각해지는 것처럼 뱃살에 관한 나의 생각도 그랬다. 툭 튀어나온 뱃살에 대해 자포자기의 심정이 최고조에 이른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그리고 나의 이 콤플렉스 뱃살을 즐긴 것은 내가 아닌 같은 반 친구 녀석들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오는 순서대로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았는데 내 옆자리에 앉는 짝궁 녀석들마다 심심하면 내 배를 잡고서 주물럭 주물럭 대는 것이었다. 심심하면 와서 만지기 시작하니까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내 뱃살을 자주 만지고 장난치면서 "뱃살 좀 빼"하고 늘 구박하는 친한 친구가 하나 있었다. 비록 그러려니 하고 뱃살에 대해 무감각해졌지만 이 말을 자꾸 들으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이 녀석에게 복수하기로 결심을 했다.

결점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이 친구도 들으면 싫어하는 말이 있다. 그건 바로 원숭이라는 말이었다. 그 친구 귀엽게 생기기는 했지만 다소 원숭이를 닮았다. 그래서 그 날도 한없이 내 불쌍한 뱃살을 괴롭히며 놀고 있는 그 녀석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필통을 그 녀석 입에 들이대며 말했다.

"원숭아, 바나나 먹어."

순간적인 나의 공격에 친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게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무렵 그 녀석은 잠시 얼어 있다가 웃으면서 바로 이렇게 내게 말했다.

"어, 돼지가 말을 하네."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쉽게 잘 극복한 것 같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니까 이 뱃살이 심각한 문제로 다가왔다. 고등학교는 그래도 남자들만 있었기에 뱃살 좀 나왔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와서가 문제였다. 감추고 감춘다고 해도 같이 술도 자주 마시고 모꼬지도 가고 농활도 가다보면 빈틈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아무리 감추고 감추려 해도 내 툭 튀어나온 배를 남들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여자 친구도 사귀고 싶은 새내기 시절이었건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절 난 나의 콤플렉스를 아주 신나게 즐겼다. 멋진 척 해 보아야 이미 다 아는지라 난 나의 약점을 무기로 삼았다. 때로 이 얘기 저 얘기도 해보지만 갑자기 썰렁해질 때가 있는 술자리. 그 술자리에서 난 이 한마디로 좌중을 사로잡아버렸다.

"너희들 배에다 500원짜리 숨길 수 있어?"

아이들은 그게 가능하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고 20살 넘어서도 철없던 난 아이들 앞에서 좋아라하며 툭 튀어나온 뱃살사이로 500원을 숨겨보였다.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분위기가 뜰 무렵 그걸 본 한 친구가 나를 흉내내며 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 친구의 얘기와 흉내내기는 이렇다. 음식 욕심이 많은 내가 팝콘을 먹을 때 늘 한 웅큼씩 집어서 입에다 털어 넣는데 그 대부분을 흘린다고 한다. 그런데도 많이 먹는 게 신기해 날 가만히 관찰해 보았더니 흐른 팝콘들이 튀어나온 내 뱃살 위에 자동으로 안착해 그걸 무의식적으로 집어먹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대학 새내기 시절은 뱃살 콤플렉스를 즐기면서 보냈다. 콤플렉스로 인해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 같았지만 정작 콤플렉스에 대한 충격은 사회가 아닌 집에서 받았다.

어느 여름 아버지가 마루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는 나를 보고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 옷 좀 사줘라. 러닝셔츠가 작잖아."
"어머, 그게 제일 큰 거예요."
"근데 왜 러닝셔츠가 배 위로 올라와 있어?"
"그거, 중모 뱃살이 많아서 위로 말려 올라간 거예요."

그 말에 나도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았는데 그 충격은 아버지가 더 크셨나 보다. 그 날 이후 아버지는 내게 배드민턴 채를 주셨고 한동안 우리 부자는 배드민턴에 빠져 살았다. 그리고 내게 뱃살은 더 이상 즐겨야 할 콤플렉스가 아닌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코트도 한정되어 있고, 시간도 맞추기 힘든 까닭에 배드민턴 치기는 어느새 일상에서 사라져갔다. 이어서 헬스도 하고, 등산도 하고 했지만 그 어느 것도 일상에 확실히 자리잡아 뱃살을 빼는데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다시 자포자기 심정으로 돌아갈 무렵 반드시 극복해야겠다는 결의를 다지게 하는 계기가 생겼다. 비만이 모든 병의 근원이라는 끊임없는 주변의 말도 한 계기였지만 무엇보다 허리가 아픈 것이었다. 병원에 갔더니 살이 쪄서 허리에 무리가 와서 아픈 것이란다.

피할 수 없는 콤플렉스라면 즐겨야 하는 것이겠지만 건강을 위협하는 그리고 피할 수 있는 콤플렉스라면 이기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금은 집에서 언제나 할 수 있는 지압 훌라후프를 하고 있다. 아직 뚜렷한 효과는 없지만 콤플렉스 극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만으로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 아니겠는가.

즐겨야 할 콤플렉스와 극복해야 할 콤플렉스를 구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콤플렉스를 극복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콤플렉스 극복기> 응모글입니다. 

이 지면을 빌어 비록 장난이었지만 제 뱃살에 난 흉터가 칼로 그은 것이라고 말해서 그걸 믿었던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갑자기 살찌면서 살들이 터진 것이랍니다. 뱃살 꼭 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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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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