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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만난 건 대학 2학년 말이었다. 고향 후배 녀석이 자기가 제일 친한 친구 하나 소개해준다며 '소개팅' 을 잡았는데, 전날 종강 기념으로 마신 술 냄새를 푹푹 풍기면서 만난 사람이 지금의 아내다.

그런데 지금도 둘 다 일치하는 진술은 서로 '자기의 이상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결혼이라는 것이 꼭 첫 눈에 '뿅' 가는 사람들끼리만 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소개팅 이후 나는 그 때 만난 아내를 먼 기억 속에 넣어둔 채 입대를 했다. 그리고 복학을 하고 나서 우연히 도서관에서 아내를 다시 만났다. 집이 멀었던 아내는 도서관에 항상 늦게 도착했고, 자리가 없이 이리저리 남의 자리를 뛰어다니는 '메뚜기' 생활을 하고 있었다.

고생하는 게 보기 안쓰러워 내가 자리를 잡아주기 시작했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사귀자 말자 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내와 나는 학교에서도 유명한 커플이었다. 아내의 과에서는 교수님들을 비롯해 후배들까지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덕분에 모르는 아내 후배들 인사 무지 많이 받으면서 학교를 다녔다. 특히 아내의 지도 교수님까지 나를 알아보고 아는 체를 하셨으니 졸업할 때까지 나쁜 짓(?) 한 번 하기가 힘들었다. 아내도 그런 나의 존재 때문에 손해를 많이 봤다고 지금까지 주장한다. 다른 남자들이 나 때문에 안 들러붙었대나.

아내는 나보다 1년 일찍 졸업해 사회에 진출했고, 그 후 1년간 토요일마다 학교를 찾아와 내게 삼겹살을 사먹였다. 나는 그 덕분에 열심히 공부해 성공적으로 사회에 진출했다. 그리고 2년 후 결혼에 골인했으니 아내를 만난 지 7년만의 쾌거였다.

이야기가 이렇게 끝나면 너무 싱겁다. 사실 별 탈 없이 모범적으로 결혼까지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아내와 나에게도 누구 못지않은 심각한 위기가 있었다.

첫 위기는 본격적으로 사귄 지 3개월 만에 왔다. 원래 유머감각이라고는 별로 없었던 나는 연애하면서도 아내를 즐겁게 해 주는 데는 도무지 재주라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거기다 너무 신사적이어서 손도 제대로 못 잡는 숙맥이었다. 활동적인 아내에게 나는 정말 재미없고 답답한 사람이었나 보다. 참다못한 아내는 커플링을 빼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그만 만나자. 그냥 좋은 선후배로 지내. 애인이라는 감정이 안 생겨."

▲ 아내와 아들녀석입니다. 행복한 우리집 구성원 입니다.
ⓒ 이경운
날벼락이었다. 물론 보통의 연인들 사이에서 헤어지기 위한 아주 흔한 이유지만 당하는 쪽에서는 얼마나 큰 한 방인가. 아내와 헤어져 자취방으로 가는 길이 어찌나 처참하던지. 길가의 레코드 가게에서 나오는 노래는 모두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 했다. 비는 또 왜 그렇게 내렸는지…. 완전 영화 한 편 찍었다.

나는 아내의 일격에 크나 큰 내상을 입고 시골집에 두 달간 은거했다. 다른 남자들 같으면 아쉬움에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전화라도 한 번 해 다시 가능성을 타진해 볼 만도 했건만 나는 아내는 물론 서울의 친구들과도 연락을 딱 끊고 지냈다.

그리고 은거생활 동안 마음을 수습하고 방학이 끝날 무렵 다시 서울에 올라왔다. 올라 온 날 맨 먼저 한 일은 아내가 방학 내내 공부하고 있다는 모 학교 도서관에 쳐들어 간 것. 그 학교 도서관을 모두 찾아 헤매다 발견한 아내. 나와 얼굴을 마주친 아내는 참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렇게 독한 사람인 줄 몰랐단다. 매정하게 연락 한 번 없을 줄 몰랐다고 한다. 그 후 지금까지 나를 아주 독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때 아내를 도서관에서 불러내 내가 한 말.

"내가 변할 테니 다시 시작하자."

그 후 나는 정말 많이 변했다. 아내가 원하는 대로 말도 많이 하고 적극적인 스킨십도 시도하고 말이다. 첫 번째 위기는 이렇게 넘어갔다.

두 번째 위기는 정말 극복하기 힘든 것이었다. 대부분의 연인들이 포기한다는 종교 문제였다. 한창 열이 올라 있던 시절 지금의 장인 장모가 식사를 하자며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면서 하시는 말씀.

"이군의 생활을 들어보니 세상에 이군 같은 젊은이는 다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 하지만 우리 딸은 신앙이 같은 사람과 맺어졌으면 하네. 우리가 경험해 보니 신앙이 같아야 어려움에 처해서도 서로 의지하며 극복해 나갈 수 있겠더군. 그러니 잘 판단하리라 믿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저런 말씀을 하시다니,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분간이 안 되었다. 저녁에 소화제를 여러 알 먹어야 했다.

장인 장모는 얼굴도 안 보고 결혼하신 분들이었다. 첫날 밤에 성경책에 손 올리고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대한 맹세를 하셨다니 대단한 분들임이 틀림 없다.

처가와는 달리 우리 집은 독실한 불교 집안이었다. 물론 형수들이 기독교이긴 했지만 어머니께서 그것 때문에 맘이 편하시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나도 종교 문제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우리의 사귐은 계속 됐고, 다행히 처가 식구들이 나의 성실성과 인간성(?)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어서 결혼 이야기가 나오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종교가 다른 나를 인간성 하나 믿고 허락해 주신 장인 장모께는 아직도 감사하는 마음 뿐이다.

이제 문제는 시골에 계신 부모님에게 아내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생신을 앞두고 나는 아내를 가족들에게 소개할 요량으로 처가의 허락을 얻고 아내를 시골로 데리고 내려갔다. 부디 어머니께서 종교적인 서운함을 나타내시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모두 아내를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형수들에게는 미리 동생이 온 듯이 잘 해달라는 로비를 해 놓은 터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런데 우려했던 결정적인 순간이 왔다. 형들이 돌아간 후 어머니와 나, 아내가 방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기다리셨다는 듯.

"어째 우리 며느리들은 나랑 생각이 다 달라. 참 이상하다. 어떻게 이렇게 믿음이 다른 며느리들이 들어올까."

어머니는 마음이 편치 않으셨던 게 분명했다. 사랑하는 막내 아들이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사람을 대놓고 반대는 못하셨지만 말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마음도 편하게 하고 나도, 아내도 종교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그리고 내가 던진 한마디.

"엄마, 엄마는 부처님 열심히 믿으시죠? 엄마, 엄마 품 안에 믿음이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이 엄마가 그렇게 믿고 의지하는 부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시면 안될까요?"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막내야, 네 말이 정말 옳다."

어머니는 이 한 마디를 하시고 환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 후 어머니는 형수나 아내의 종교문제에 대해 꺼림직한 마음을 갖지 않으신다. 나는 그때 어머니의 음성에서 느낀 사랑과 감동을 잊을 수 없다. 태산 같은 사랑 그 자체였다.

▲ 아들 두 돌 때 사진입니다. 귀엽죠?
ⓒ 이경운
최대 난관이었던 종교문제까지 이렇게 해결하고, 아내와 나의 결혼 작전은 만난 지 7년 만에 결실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집 마련 분투기>에서도 썼듯이 가난한 시골 청년을 만난 아내는 결혼 후 한동안 엄청 고생을 했다. 그리고 둘은 여전히 서로 이상형이 아니었다며 티격태격 하며 산다. 요즘은 4살 짜리 아들녀석까지 이 전투에 가세했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꾸린 가정의 넘치는 행복은 감추기 힘들다.

아내와 나는 종교문제를 무사히 넘겼지만, 대부분 남녀들이 결혼을 앞두고 양쪽 집안의 종교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요즘 나는 상대 집안과 종교가 달라서 고민하는 친구나 후배들에게 생각을 좀 달리하라고 적극 권유한다.

살아보니 종교가 뭐든 진정한 신앙인 집안에서 자란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적극 홍보하고 다닌다. 그리고 아내와 내가 첫 위기를 맞았던 것처럼 서로의 것만 고집해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서로 조금씩 변할 것도 반드시 권유하고 다닌다.

결혼은 함께 하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변화의 노력이 없다면 행복한 결혼이 있을 수 없다. 결혼 전이든 후든 서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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