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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주식의 편법증여 의혹을 받고 있는 두산 박용성회장이 쓴 <중앙일보> 11일치 6면 '중앙시평'
ⓒ 김종철

두산그룹 오너 일가의 편법적 주식증여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11일 중앙 일간지의 기고를 통해 "기업인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사라지지 않는데는 시민단체나 소비자단체도 한 몫 하고 있다"고 비난해 파문이 일고 있다.

박 회장은 11일치 <중앙일보> 6면 '대표이사는 구속용인가'라는 제목의 '중앙시평'을 통해 "지키기 힘든 수많은 처벌조항과 규제로 인해 조금만 실수를 저질러도 파렴치범이나 범죄자로 전락하기 일쑤다"면서 "원숭이는 나무에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기업인은 한번 실패하면 사람도 아니다"면서 최근 두산과 관련된 논란에 불쾌한 감정을 나타냈다.

기업에 대한 규제와 관련해 박 회장은 한발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경우 지켜야할 법령이나 규칙이 셀 수없이 많아 이를 제대로 준수해 나가면서 경영을 하기란 쉽지 않다"면서 "법이 이러니 노조, 시민단체가 걸핏하면 고소, 고발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박 회장은 또 "기업인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사라지지 않는데는 시민단체나 소비자단체도 한 몫 하고 있다"면서 "부실기업보다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기업'을 주요 감시 대상으로 삼고 그들 기업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며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이어서 "기업이 법을 제대로 지키기 어려운 현실에선 기업인을 범법자로 만들고, 기업인의 사회적 기여를 폄하하는 풍토에선 기업 의욕이 생겨나기 어렵고 존경과 찬사를 받는 경영자가 나올 수도 없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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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뒷거래· 주식 편법 증여·거래까지 천민자본 근성 드러낸 재벌들의 추태


▲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
ⓒ 대한상공회의소
"재계 총수의 인식 치고 매우 실망스러운 것"

이에 대해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와 소비자단체에서는 "우리나라 재계를 대표한다는 대한상의 회장이 이 정도라면 문제가 심각하고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라며 "시민, 소비자단체는 기업의 발목을 잡은 것이 아니라, 보다 투명하고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그동안 큰 기여를 해왔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두산의 편법적 주식증여 의혹을 제기한 참여연대쪽은 "각종 불법 의혹을 받는 당사자 스스로가 국민에게 제대로 된 해명은 거부한 채 대한상의 회장이라는 자리를 이용해, 문제를 덮거나 희석시키려 하고 있다"며 "공인으로서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센터소장은 "리픽싱(Refixing)옵션이 붙은 두산의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으로 수많은 투자자들이 커다란 손실을 봤는데, 박 회장 말 대로라면 잘 나가는 기업들이 이래도 되는가"라며 반문했다.

김 소장은 이어서 "두산에게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박 회장이 떳떳하게 국민 앞에 나서 진상을 밝히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소비자문제를연구하는시민의모임 이혜숙 정책기획실장은 "한 기업의 대표 입장이 아니라 재계를 대표하는 대한상의 회장이 시민과 소비자단체에 대해 이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그동안 기업이 발전하는데는 소비자와 단체의 역할이 중요했으며 이는 세계적 추세인데 박 회장은 전혀 시대의 흐름을 못 따라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김주영 변호사도 "시민사회에서 주장하는 기업의 투명성과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은 기업과 국민에게 매우 중요하고 올바른 일"이라며 "박 회장이 최근 두산에 대해 제기되고 있는 각종 의혹들에 대해 명확한 해명 없이 회피하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전형적인 불법적 부의 대물림인가, 적법한 주식거래인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면 우리나라 재계를 대표하는 중요한 자리다. 그럼에도 박용성 회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만 하고 있다.”(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적법하게 발행됐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두산그룹 홍보실 김진 상무)


이에 앞서 참여연대가 최근 제기한 99년 7월 두산그룹 총수 일가의 특혜성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의혹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참여연대는 각종 공시자료를 근거로 두산의 불법적 주식 증여에 대해 네가지 의혹을 다시 제기했고, 금융감독원 등에 공식적인 조사를 의뢰했다. 두산쪽은 '해명 자체를 거부'하고 나섰다.

▲ 서울 동대문의 두산본사 사옥.
ⓒ 공희정
지난달 28일 이후 시작된 ‘참여연대와 두산 사이의 총성 없는 전쟁’이 2라운드에 접어든 순간이다.

참여연대가 지난 6일 서울 증권거래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제기한 의혹은 크게 네가지.

우선, (주)두산이 지난 99년 7월에 BW를 발행한 자체에 대한 것이다. 자본 유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배주주 일가가 신주인수권만을 얻기 위해 사전에 미리 예정해두고서 발행된 것이 아닌가하는 점이다. 한마디로 ‘짜고 친 고스톱’이라는 것이다.

당시 BW는 발행되자마자 신주인수권과 사채가 분리됐고, 박용곤과 박용성 등 지배주주 일가 32명이 전체물량의 68.7%에 달하는 신주인수권만을 발행 직후인 7월 19일에 취득한 것이 참여연대의 공시자료 확인으로 밝혀졌다.

참여연대는 이어서 “박용성 회장이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BW를 붙여주면 회사채를 인수하겠다고 해서 발행했다’는 해명은 전혀 사실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들 지배주주 일가는 실질적인 자금조달에는 기여하지 않고 신주인수권만을 인수해, 지배권 확장과 상속만을 노린 것이 아닌가 의심케 한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는 두산 3세들은 왜 이 신주인수권을 대량으로 사들였을까. 참여연대는 이들이 4세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한 편법적인 수단으로 신주인수권을 이용했다고 보고 있다.

참여연대가 공시자료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두산 지배주주 3세들은 신주인수권을 취득한 지 한달 반 만에 4세들에게 신주인수권 849,387주를 넘겼다. 특히 3세에서 4세로 넘어간 신주인수권의 거래내역이 들어있는 주식보유 변동보고서에는 신주인수권 거래 가격이 적혀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4세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해 신주인수권을 취득한 것 이외에 달리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참여연대쪽 반응이다.

미공개 정보 가지고 있던 두산, 소액주주들 몰래 주식 팔아치워?

세 번째는 (주)두산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 거래 의혹이다. (주)두산은 BW 발행 당시 신주인수권에 부여된 행사가격 조정 조항(Refixing Clause)을 공시하지 않았다. 신주인수권의 행사 가격은 주가가 떨어지면 아래로 내려가기만 돼 있고, 일단 낮아진 행사가는 주가가 올라도 변하지 않는 특혜성 조건이다. 공시가 안됐으니 소액주주들은 알 리가 없었다.

이같이 주가에 미칠 영향이 큰 중요한 내부 정보는 알리지도 않은 채 (주)두산은 대신 BW를 발행해 해외자금을 조달한다는 ‘굿 뉴스’만을 알렸다. 특혜조건이 붙은 ‘나쁜 뉴스’는 알려지지 않았고, 이 사이에 (주) 두산은 자사주 909,630주를 집중적으로 장내에 팔아치웠다. 이 같은 내용을 모르는 소액주주들은 시장에 나온 주식을 사들였고, 이후 주식가격은 계속 떨어졌다. 소액주주들의 막대한 피해가 이어졌다.

▲ 참여연대가 제기한 두산의 편법주식증여 거래도.

네 번째로 (주)두산의 불성실 공시 의혹이다. BW에 들어있는 행사가격 조정 조항이라는 옵션 규정은 BW 발행에 있어서 중요한 공시대상이라는 것이 참여연대쪽 입장이다. 하지만 두산 쪽은 이 같은 내용을 의도적으로 일반 투자자들이 알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밖에 이번 두산의 BW 발행과정에서 지배주주들이 가져간 신주인수권 이외에 분리된 사채권을 누가 가지고 갔느냐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더구나 특혜성 조건이 붙은 신주인수권이 없는 사채권을 99년 당시 불안한 경제상황을 감안하면, 이를 그냥 인수할 만한 사람이나 단체가 누가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두산그룹 계열사나 관계사가 이 사채권을 인수하는데 나섰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참여연대,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은 “두산의 이같은 BW발행과 자사주 매각과정은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에 해당한다고 본다”면서 “금융감독원의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고, (참여연대도) 법적 대응책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에 앞서 지난달 31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두산과의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각종 공시자료를 통해서 박 회장의 해명은 이미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고, 각종 불법적인 의혹에 대해 감독기관의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두산 쪽은 참여연대의 이 같은 주장에 당혹해 하고 있다. 그러면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발행됐다’는 입장만을 반복하고 있다. 그동안 조사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던 금융감독원도 참여연대의 등에 떠밀려 사실관계 확인에 나서는 등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지난달 그쪽(참여연대)에서 문제를 제기한 이후 내부적으로 자료를 수집 중에 있었다”면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조사를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두산그룹의 김진 상무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BW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발행됐다”면서 더 이상의 언급 자체를 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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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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