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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대추리에 관한 9개의 진술

5. 유연성, 경직된 자들이 떠벌리는 그 언어들

레이건 시절부터 소련을 겨냥해 스타워즈 계획을 추진해 왔던 미국은 냉전체제 와해 이후 잠시 주춤하는 듯 했지만, 클린턴 정부 때 국가미사일방어법을 제정하면서 본격적인 군사재편에 들어갔다.

장거리미사일로부터 자국영토를 방어하고, 해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미사일방어전략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동시에 해외주둔미군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킬 방안도 검토되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 지난 3월 13일, 2차 강제집행을 강행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농민과 시민들이 부상을 입었다. 한 여성이 경찰의 방패에 떠밀려 불섶으로 넘어졌지만, 경찰은 나몰라라했다. 들녘을 파헤치는 포크레인을 보호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 노순택

그러던 것이 2001년 9·11 테러를 겪으면서, 결정적인 호재를 만났다. 테러리스트들에게 정의의 심판을 내려야 한다는 지상명령 아래, 국내 민주주의는 급속도로 위축돼 내부비판기능을 상실했고, 네오콘을 위시한 정부내 매파들은 날개를 단 듯 나라전체를 전쟁시스템으로 몰아갔다.

미군은 '방어와 복수'의 개념에서 더 나아가 '예방전쟁'의 개념을 도입했다. 테러와 대량살상무기의 낌새만 있어도, 미국은 언제 어디에서나 '예방적 차원의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쟁론자들의 주장이었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닌, 필요할 때 필요한 장소에 가장 유연하고 민첩하게 치명적인 힘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발언은 그들이 추진하고 있는 '전략적 유연성'의 의미를 잘 말해준다. 그 핵심 대상이 바로 동아시아에 배치된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다.

위로는 '불량국가'로 지목된 북한을 마주하고 있는데다, 군사시스템 마저 온통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급변하는 미국의 군사전략에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지경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2002년 미국과 한국은 한미연례안보협력회의에서(SCM)에서 한미동맹 재편을 추진하기 위한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를 발족하기로 합의했고,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가진 한미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을 통해 한미동맹의 현대화를 천명했다.

'한미동맹의 현대화'란, 불평등했던 한미관계를 새롭게 재정립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주종관계는 그대로 두되, 그 적용범위를 넓혀 탄력적으로 운용하자는 것이 이들이 말하는 현대화의 골자다.

이는 지역방위군 체제로 묶여 있던 주한미군을 세계 어느 곳에나 신속하게 분쟁에 개입할 수 있는 기동군으로 재편하겠다는 뜻이며, '방어형 동맹'이 '공격형 동맹'으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한국군은 2003년 이라크 전쟁에 파병함으로써 미국의 '공격형 동맹' 요구에 화답해 왔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한강이북에 배치된 미2사단의 체질개선을 통해 가능할 것이라 계산하고 있다.

붙박이형 부대를, 어디든 보낼 수 있는 기동타격 부대로 전환하기 위해 선택된 장소가 바로 평택이다. 평택은 인근의 오산비행장과 평택항을 통해 병력이동과 물자수송이 원활할 뿐만 아니라, 급부상하고 있는 라이벌인 중국을 마주하고 있어 전략적 요충지로 꼽혀왔다. 미국에게 평택미군기지이전확상 사업은 '용산기지이전사업'이 아니라, '2사단이전사업'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고 관계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최근 미국은 중국의 영향력이 더 커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벨트형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재편 및 재배치를 서두르고 있다. 서해안에 인접한 수원-평택-군산-광주에 최신형 패트리어트(PAC-3)를 집중 배치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그들이 '한반도 방어의 한국 책임론'을 자주 들먹이는 이유 역시 대북억제 및 방어를 한국군에게 맞기고, 자신들은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해 동아시아의 경찰로 활동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긴장수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실 가능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중국과 대만이 군사적으로 충돌하고, 주한미군이 대만의 편에서 분쟁에 개입하는 사태다. 이럴 경우 중국은 언제든 한반도를 공격의 대상에 포함시킬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 4월 7일 3차 강제집행에서 국방부는 논으로 향하는 수로를 파괴하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부었다. 농민들은 논바닥에 자빠뜨려 넘어지고, 서럽게 울었다.
ⓒ 노순택

안보전문가들은 "이러한 대결국면이 한반도 평화문제의 큰 축인 중국의 협력을 끌어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위기에 대응하기보다는 위기를 초래함으로써 주한미군의 존재이유 자체를 의문스럽게 한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한미동맹의 근간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범위를 조약의 재개정 없이 임의로 확대함으로써 조약법마저 위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평택미군기지이전사업 = 용산미군기지이전사업'이라는 등식을 만들어 놓고, "이 사업이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시치미를 떼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강제수용되는 대추리 일대 285만평 가운데, 용산기지 대체부지가 38만평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나머지 땅의 거의 대부분은 전략적 유연성을 실현할 당사자인 미2사단이 들어설 자리라는 사실을 정부는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산은 깃털이고, 2사단이 몸통'이라는 주장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이전 확장된 미군기지는 자칫 '유령 과잉시설'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미국의 계획 대로라면 주한미군은 최첨단 군사무기를 통해 군사력을 대폭 증강하지만, 병사의 수는 상당수 감축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정황을 반영하지 않은 채 미국의 요구에 끌려 다니며 대규모로 기지를 건설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낭비와 오류를 초래할 것"이라는 평화활동가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평택미군기지이전확장이 "순수한 우리의 요청에 의한 것이며, 전략적 유연성이나 GPR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다"는 국방부의 주장은 주무장관의 입에 의해서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최근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은 "윤광웅 국방장관이 당정협의회에서 '맞다, GPR과 상관이 있다. GPR로 이전하는 것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 드린다'고 인정하며, 협조를 구했다"고 밝힌바 있다.

2006년 7월 참여연대가 입수해 공개한 '국방부 문서'도 이같은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국방부 정책실에서 2004년 7월에 작성한 이 문서에는 "용산기지를 오산·평택지역의 핵심통합기지로 이전하는 것은 미국 정부가 추진 중인 해외주둔미군재배치(GPR) 계획의 일환"이라고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다.

평택미군기지확장이전은 우리의 요구보다는, 미군의 전략적 필요성에 의해 추진되어 왔다는 분석은 곳곳에서 드러나는 증거를 통해 사실임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6.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늘 돈이다. 세계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무기수입국인 우리나라는 이 가운데 70% 이상을 미국에서 사들여왔다. 미국의 군사 동맹임과 동시에, 가장 충실하면서도 불평없는 소비자 노릇을 톡톡히 해 온 것이다.

평택미군기지이전확장 사업에는 대체 얼마의 돈이 들어가는 것일까. 안타깝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1990년 협정당시 1조2천억원이 들거라던 국방부의 계산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김영삼정부가 이 사업을 백지화 할 당시, 계산했던 비용은 9조원에 달했다. 2003년 국정감사에서 국방장관은 용산기지 이전 관련 비용이 3조~5조원 수준이라고 답변한 바 있으나, 2005년 이종석 통일부장관은 "이전비용이 10조원 가량에 달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몇 십 억도 아니고, 몇 천억도 아닌, 수조원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기를 반복해 온 것이다.

대체 왜 그런 것일까. 이는 미국이 아직 종합시설계획(MP. Master Plan)을 한국측에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정부는, 이 마스터플랜이 '부르면 부르는 대로' 지갑을 열어야 할 의무만을 지고 있다.

▲ 사람을 먹여 살려왔던 너른 들은 만신창이가 됐다. 대추리와 도두리를 잇는 길은 끊어졌고, 들녘은 온통 철조망과 깊은 절망의 강이다. 철조망은 강 위로도 흐르고, 강 아래로도 흐른다. 이것이 이른바, 군사시설물이다.
ⓒ 노순택

최근 MBC 보도에 등장한 한 워싱턴 소식통은 "절반만 이전하는 경우에도 200억 달러의 비용이 들 것"이라고 추산해 충격을 주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국은 기지이전 사업에 40조원 가량의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 부어야 한다.

이는 한 해 국방예산의 2배에 달하는 비용이자, 우리 국민 한 사람이 100만원씩을 모아야 하는 금액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비준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이전비용은 쏙 빼놓았다. 이른바 백지수표를 발행한 것이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시설물 기준을 대폭 강화한 바 있으며, 이같은 기준을 평택미군기지에도 적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정부는 1990년 합의서에는 있지도 않았던 C4I(지휘·통제·통신·컴퓨터·정보체계) 비용까지 떠안았다.

최근 주한미군이 "팽성지역의 지대가 낮아 홍수 우려가 있다"며 "지대가 낮은 68만평을 2.6미터 이상 성토해 달라"고 추가 요청했다는 사실은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전문가들은 "주한미군의 요구를 수용하려면, 3900만톤의 흙을 쏟아부어야 하며 이는 50미터 높이의 야산 180개를 깎아야 마련할 수 있는 양"이라고 분석했다. 이 비용만 6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은 지난 해 말로 예정되었던 시설종합계획(MP)을 수차례 연기하고 있어, 대체 어느 정도 규모의 기지를 건설할 것인지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윤광웅 국방장관은 5월 3일 긴급기자회견에서 "대추리 도두리에 대한 강제집행이 늦어져 1년을 허비할 경우 국민의 혈세 1천억원이 낭비될 우려가 있다"며 엄살을 떨었다.

그들이 진정 국민의 혈세를 걱정했다면, 애초에 이런 쓰레기만도 못한 졸속 협상을 말아야 했다. 적어도 미국의 마스터플랜이 연기되는 것에 발맞추어, 팽성읍 농민들의 처지를 헤아리고 조금 더 기다리는 성의를 보여야 했다.

덧붙이는 글 | 가옥 강제철거가 임박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대추리 도두리에는 애타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습니다. 온 생애를 들녘에 바쳐 온 늙은 농부들의 삶이 이대로 파괴된다면, 우리사회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할 것입니다.

아직 '양심의 명령'을 지킬 시간은 소멸되지 않았습니다. 오는 9월 24일에는 '사람을 먹여 살려온 들녘을, 사람 죽이는 전쟁기지로 만들지 않기 위한' 4차 평화대행진이 서울에서 열립니다. 황새울의 평화를 위해 힘과 뜻을 모아주십시오.

여러분을 9.24 평화대행진 ‘10만 준비위원’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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