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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만들기>를 소개하는 글을 퍽 길게 썼습니다. 제가 살아오며 겪은 이야기를 찬찬히 덧붙이다 보니 꽤 길게 되었어요. 그래서 글을 둘로 나누었습니다. 이 글은 앞글과 이어지는 것이니, 앞글을 먼저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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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제도권 교육


▲ 좋은 책이 세상에 나왔을 때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 목숨이 끊어져서 참되고 바른 뜻을 널리 나누지 못하게 되는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이 겉그림은 1994년에 처음 나온 책입니다.
ⓒ 푸른나무
대학교에서 배운 것은 '내 한 몸 잘 먹고 잘 살기'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느낍니다. 깊이 있는 학문을 파헤치고 살피는 일은 꼭 대학교를 나와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대학교를 옳게 다니고, 제대로 나오는 사람도 많고, 옳고 바르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수도 틀림없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 대학교 조직은 아이들을 아이답게 키우거나 길러내지 못합니다. 제 한 몸이 아닌, 이웃사람 몸을 헤아리도록 가르치지 못합니다.

.. 저는 조직이 가정을 대신할 수 있다는 기본 전제에 강력히 반대합니다…… 조직이란,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 해도 사회와 가정의 생명력을 뽑아 가는 성질이 있습니다. 조직은 인간의 문제에 대해 수량으로 파악되는 기계적인 해결책을 제공합니다 .. 〈71쪽〉

.. 조직은 더 좋아지지도 않고 더 나빠지지도 않습니다. 목적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 본질이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의미의 발전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 〈78쪽〉


제가 보기로는 대학교는 '조직'이지 '배움터'가 아닙니다. 배움터는 교사가 학생을 가르칠 뿐 아니라, 학생한테 교사가 배우는 곳이어야 합니다. 학생이 교사한테 배울 뿐 아니라, 학생이 교사를 가르치는 곳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대학교라는 곳에 몸담은 사람한테만 도움 되는 대학교가 아니라, 대학교를 다니지 않는 사람한테도 도움이 되는, 아니 대학교에 갈 수 없고, 대학교를 꿈도 꾸지 못하는 사람한테 제대로 도움이 되어야 비로소 대학교라고 봅니다.

존 테일러 개토님이 말하는 "의무교육 문제" 고갱이는 여기에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받는 초중고등학교 의무교육은 '대학교 바라기' 통제일 뿐입니다. 다른 곳으로는 가지 말고 오로지 대학교만 바라보게 하는 통제와 획일이 바로 우리네 의무교육입니다. 그래서 '일방통행으로 이 길 말고 다른 길로는 가지 마시오. 다른 길로 가면 당신은 사회에서 내동댕이쳐질 것입니다' 하고 으름장을 놓는 비틀린 교육 얼개와 사회 얼개를 뜯어고쳐야 합니다.

.. 메인 주 해양박물관은 배 만들기, 밧줄 만들기, 새우잡이, 돛 만들기, 물고기 잡기, 해양 건축을 가르치는 데 몇 달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학교교육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많습니다. 학기가 짧은 홍콩은 모든 과학이나 수학 경연에서 일본을 능가합니다. 학기가 긴 이스라엘이 전세계에서 가장 짧은 학기를 가진 벨지움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 〈129쪽〉

한 해에 80만이나 되는 수험생이 나온다고 하는데, 이 아이들이 모두 대학교에 가야 한다면, 이 아이들은 모두 대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해야만 하는 일 가운데는 모든 사람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많습니다. 숨 쉬기, 물 마시기, 밥 먹기는 누구나 해야 마땅하지만, 이런 일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 본능입니다. 본능이 아닌 가르침으로 "모든 사람이 배워야 한다, 배워야 더 좋다"고 하는 것이라면 저마다 자기 삶과 재주와 몸과 마음에 알맞게 배워야지, 통제와 획일로 치닫는 제도권 의무교육으로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대학교가 의무교육이 아닌 까닭도 여기에 있는 줄 압니다. 그런데 우리는 '의무교육 아닌 대학교'를 나오지 않고는 사회에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놓고 있지 않습니다. 의무교육 아닌 곳을 나오지 않으면 그대로 내동댕이치고 찬바람 휘몰아치는 텅 빈 거리에서 굶어죽거나 얼어죽게 내버립니다.

.. 자기에게 맞다고 생각되는 교육의 종류를 학생들이 선택하는 겁니다. 독학도 선택의 한 갈래가 될 수 있겠죠 .. 〈37쪽〉

대학교가 참말로 모든 사람한테 도움이 된다면 대학교 교육은 의무교육이어야 합니다. 아니면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대학교에서 가르칠 것을 미리 가르치면 됩니다. 왜 비싼 돈을 들여서 대학교까지 보내야 할까요? 대학교에 들어가는 좁은 바늘구멍을 지나려고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 동안 지식과 문제풀이를 달달달 외우게 하지 말고, 모든 사람이 대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학제를 확 바꾸고,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대학교와 붙여서 참다운 사람으로 자라나고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 우리가 학교교육에 쏟아붓고 있는 돈을 도로 가정교육으로 돌린다면 약 하나로 두 가지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을 회복시키면서 동시에 가정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진정한 개혁은 가능하며 거기에는 아무 비용도 들지 않습니다 .. 〈49쪽〉

대학교 입시 문제를 풀지 않고 중고등학교 문제를 풀 수 없고, 중고등학교 문제를 풀지 않고 초등학교 문제를 풀 수 없으며, 초등학교 문제를 풀지 않고 조기교육 문제도 풀 수 없습니다. 졸업장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큰 돈과 이름과 힘을 얻게 하는 이 팍팍하고 메마른 경쟁 으뜸주의 사회에서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살게 하는 일, 사람이 사람답게 살게 하는 일, 자연이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일은 가장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존 테일러 개토님이 말하듯, 의무교육을 없애고 집에서 오붓하게 배울 수 있게 해도 좋습니다.

'대학교 바라기'를 하면서 엄청나게 쏟아붓는 돈을 중고등학교 교육을 바로세우는 데에 쓰면 됩니다. 학원을 하나라도 더 보내고, 과외를 하나라도 더 시켜서 점수따기를 잘하는 기계로 만들기보다는, 이런 돈을 하나도 안 쓰면서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고 아름답게 가꾸어 나간다면(이것을 어느 한 사람만 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함께 한다면), 남과 북으로 갈라진 분단 문제도,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온갖 나쁜 법을 없애고 고치는 문제도, 차별과 불평등이 곳곳에 넘친 이 사회를 아름답고 고른 사회로 다독이는 문제도, 지식인들이 어려운 말글을 함부로 쓰면서 못 배운 보통 사람 위에 올라앉아 지식 공해를 일으키는 우리 말 문제도, 경제와 수출만이 살 길이라며 이 강산과 자연을 무너뜨리는 환경 문제도, 이라크 전쟁에는 반대하면서도 자가용은 끝없이 새로 사서 지나치게 타고 다니는 앞뒤가 어긋난 일도, 학생이 교사를 못 믿고 교사가 학생을 못 믿는 이 얼토당토않는 학교 문제도, 부모와 자식이 살가운 피붙이가 아니라 원수처럼 지내는 가정 문제도, 그 어떤 문제도 술술 풀리고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 교육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든 그것은 독창적인 인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어야 하지, 틀에 맞춘 인간형을 찍어 내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 〈95쪽〉

세상을 떠난 지 열다섯 해가 지난 성내운 선생님이 있습니다. 이분은 교육자인데 동시도 몇 편 남겼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가 〈달라질래요〉입니다. 이 시를 모르는 분들이 많으니 모두 옮겨 보겠습니다. 길이가 짧으니 이번 기회에 한번 함께 읽어 보아도 좋겠습니다.


〈달라질래요〉

우리 반 동무들은 모두 달라요.
얼굴도 다르고
키도 달라요.
모두가 똑같아지면 우스울 거야.

우리 반 동무들은 모두 달라요.
생각도 다르고
재주도 달라요.
모두가 똑같아지면 우스울 거야.

어머니는 아버지와 달라서 좋고
오빠는 언니와 달라서 좋아요.
서로가 똑같으면 우스울 거야.

나는 나는
동무들과 달라질래요.
오빠와 언니와도 달라질래요.
모두가 똑같으면 우스울 거야.

나는 나는
이 세상의 누구와도 달라질래요.
달라져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말 거야.



《바보 만들기》에서도 말하듯 "독창적인 인물을 만들어" 내는 교육이어야지 "틀에 맞춘 인간형을 찍어" 내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는 달라야 합니다. 시류나 유행에 맞추거나 따를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가 왜 연예인 머리 모양대로 자기 머리를 기르고 가꿔야 합니까? 우리가 왜 인기가수와 똑같은 바지나 치마를 입어야 합니까? 우리가 왜 영화배우와 똑같은 속옷을 입어야 하지요? 우리가 왜 운동선수와 똑같은 청량음료를 마시고, 익살꾼들이 먹는 햄버거나 콜라를 먹고 마셔야 할까요?

우리는 우리 삶을 꾸려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품는 꿈을 찾아야 하고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나한테 가장 알맞은 일과 놀이, 나한테 가장 즐거우면서 이웃과 오순도순 사랑과 믿음을 나누면서 살아갈 일과 놀이를 어우러야 좋습니다.

.. 스웨덴의 학교에 입학을 하면 학교당국은 아이에게 세 가지를 묻습니다. (1) 왜 학교에 다니려고 하는가? (2) 그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얻기를 원하는가? (3) 네게 흥미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고 나서는 이제 학부모들이 교사에게 질문합니다. 당신은 집이나 배를 지을 줄 아십니까? 당신은 채소를 키우고 옷을 만들고, 우물을 파고, 노래를 부르고(당신 자신의 노래), 당신 자신의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당신 주위 일상의 세계로부터 온전한 삶을 이루어 낼 수 있습니까? 아니라고요? 당신은 그렇게 할수 없다고 말하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제 아이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 〈130쪽〉

제가 집을 나와서 따로 살고, 집안에서 바라던 '대학교 졸업장'을 내팽개쳤지만, 지금도 소중하게 받들고 고맙게 여기는 일이 있습니다. 어릴 적에 저한테 여러 가지 일을 많이 시킨 어머니를 고맙게 여깁니다. 빨래와 밥하기와 설거지와 청소를 몸에 아주 익도록 잘 가르쳐 준 일을 참 고맙게 생각합니다. 비록 남새를 가꾸고 자기가 먹을 것은 자기가 짓는 일은 배우지 못했지만, 옷을 깁고 땅을 파고 내 앞가림은 나 스스로 하도록 이끌어 주었기에 참으로 소중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실을 말하자면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명령을 따르는 방법 외에 진짜로 가르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 〈40쪽〉

"교사들이 아무리 정성을 쏟고 열심히 일해도 제도 자체가 미치광이입니다. 양심이 없는 제도예요. 한참 시를 짓고 있던 젊은이도 종이 한 번 울리면 즉각 공책을 덮고 다른 교실로 달려가 인간과 원숭이가 같은 조상으로부터 유래한다는 사실을 외울 준비를 하게 하는 그런 제도니까요.〈41쪽>"라는 말처럼 제도권에 길들면 자기 자신, 자기 마음을 키울 수 없습니다. 남이 내리는 명령을 따르는 우리가 아니라 '자기가 할 일은 자기가 찾고 스스로 나서야' 하는 우리여야 합니다.

살아가는 가운데 배우고 가르칠 수 있도록,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면서 자기 자신을 가꿀 수 있어야 참다운 가르침이고 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교과서에 나왔다고 꼭 배워야 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나 불경에 나왔다고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대안교육 잡지에 실려 있는 글이라고 해서 모두 훌륭한 대안교육 이야기인 것도 아니고, 진보와 평화를 사랑한다는 잡지에 실려 있는 글이라고 해서 모두 훌륭한 진보와 평화 사랑 글이지도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야기, 우리 삶을 밝히고 자기 자신을 찾아나가는 '이 세상에 딱 하나만 '있는 자기를 가꾸는 자기 길'은 "가르친다는 일, 이것은 장소에 따라 다른 내용을 가지는 일입니다.〈16쪽〉"라는 말처럼 늘, 어디서나, 누구한테라도 배우고 찾아서 가져야 합니다.

<바보 만들기>를 가끔 다시 들춰봅니다. 이 책을 진작 알아서 읽었더라면, 책이 처음 나온 1994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머리를 아프게 한 가슴앓이와 헤매임도 덜했을 텐데, 좀더 일찍 대학교를 그만두고 사회로 나와 온몸으로 이것저것 부딪히고 부대끼면서 나를 찾고 느낄 수 있었을 텐데… 하면서 아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중에라도 이 책을 만났기 때문에 여러 해 동안 치고 박고 부딪치고 깨지고 울고 웃으면서 부대낀 여러 가지 일이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좋은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 밑거름을 바탕으로 삼아서 어릴 적에 소중하게 품던 제 꿈인 "어른다운 어른이 되는 일"을 해야겠지요.

이 책 <바보 만들기>는 얼마 팔리지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헌책방에서 어렵사리 한 권씩 찾아내어 둘레에 있는 분들에게 선사하곤 했는데, 드디어 이번에 다시 태어났습니다. 옛판에 있던 잘못된 번역을 바로잡고, 빠진 대목도 찾아서 넣어서 '왜 의무교육이 우리 아이들을 망치고 사회를 무너뜨리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가' 하는 이야기를 널리 나눌 수 있다고 해요. <바보 만들기>는 "도서관과 학교" 이야기로 마무리합니다. 마지막으로 도서관 이야기 두 대목만 더 들고 제 이야기도 마치겠습니다.

.. 도서관에서는 연령별로 격리된 아이들이 아니라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이 함께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선지 도서관은 독자들을 나이별 또는 독서 능력이라는 수상쩍은 기준으로 격리하지 않습니다 .. 〈148쪽〉

.. 도서관은 학교처럼 공공연히 창피를 주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좋은 독자와 나쁜 독자들을 등급을 매겨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써붙이지 않습니다 .. 〈149쪽〉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책과 헌책방과 우리 말을 사랑하는 모임인 '함께살기(http://hbooks.cyworld.com)' 게시판에 함께 올려놓고, 서울 은평지역 시민신문인 <은평시민신문(http://epnews.net)>에도 함께 보냅니다.


바보 만들기 -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개정판

존 테일러 개토 지음, 조응주 옮김, 민들레(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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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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