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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상에서 바라본 독도 전경
ⓒ 김범태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 저 끝 편에서 드디어 한 자락의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뭇 가슴이 요동쳤다. 짙푸른 파도를 가르며 쉼 없이 달린 바닷길. 어느덧 국토의 '막내' 독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순간만큼은 어느 누구도 말을 꺼내지도, 붙이지도 않았다. 터질 듯한 흥분이 가슴을 도리깨질 치기 시작했다.

지난 27일 '독도로 호적을 옮긴이들의 모임'인 독도향우회원들과 함께 독도를 찾았다. 이들은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현재 실효 지배적으로 보더라도 대한민국 영토가 분명하다"며 각 분야에서 독도수호를 위한 민간사업을 적극 전개하고 있는 독도 지킴이들.

최근 독도가 대한민국 땅이라는 것을 보장해주는 보험이 등장하고, 세계적 지도제작사인 내셔널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가 독도의 이름을 '독도'와 '다케시마' 두가지로 표기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번 방문으로 독도는 우리 땅임을 다시 다짐하게 되었다.

그간 "당연히 우리 영토인데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냐"는 식의 미온적 대응에 그쳐왔던 우리 정부의 안일한 대처가 국제적으로 어떠한 결과를 낳고 있는가를 반증하는 시점에 이뤄진 방문이라 그 의미를 더했다.

▲ 대한민국 최고 동쪽을 알리는 비석
ⓒ 김범태
오전 7시30분. 독도공사 김해일 대표와 독도유인도화 한민족운동본부 황백현 박사 등 함께 동행 할 6명의 일행이 속속 도착했다. 모두의 표정이 자못 상기되어 있었다.

김해일 대표는 이번 방문에서 스킨스쿠버장비를 이용, 독도 일대의 해저 오염실태를 점검할 계획이다. 과거 선착장 공사를 하면서 방치해 둔 각종 오염물질이 바다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그간 독도리 등재, 독도 고유 우편번호 신설, 독도 공시지가 책정 등 관련 활동을 펼쳐온 황백현 박사는 이번 방문을 계기로 '독도 유인도화운동'을 범국민적으로 계속 추진해가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일행이 500톤급 동해경비정 '태극3호'에 승선하자 곧 출항 30분전을 알리는 선내방송이 울렸다. 사뭇 긴장이 감돌았다. 함정의 엔진이 가동되고, 대원들의 손길도 바빠진다. 당초 예상보다 다소 늦은 출발이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흥분되기에 충분했다.

오전 10시30분. 얼마나 달렸을까. 입항 30분전을 알리는 방송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순간 맥박이 요동쳤다. 아니, '떨린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 했다.

다소 짙은 물안개가 걱정스럽긴 했지만 하늘은 맑았다. 그나마 이렇게 쾌청한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1년에 50일 안팎이라니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태극3호를 따라잡기 시작한 갈매기 몇 녀석이 일행을 영접한다.

사진이나 그림이 아닌 실물로 처음 만난 독도는 생각보다 크고 깨끗했다. 그 면적이 18만902㎡라니 그럴 만도 했다. 깎아지른 절벽은 어느 조각가도 감히 흉내 내지 못할 만큼 빼어난 절경이었다. 갈매기 배설물로 바위 곳곳이 새하얗게 '페인트칠' 되었지만 이마저도 아름다웠다.

▲ 자랑스런 우리 국토 독도
ⓒ 김범태
오전 11시. 울릉도 저동항을 출발한지 3시간여만에 독도 선착장에 접안했다. 드디어 독도에 도착한 것이다. 이곳이 이 땅의 동쪽 끝이라는 생각과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우리 경비원과 부착물의 철수를 주장하는 일본의 망언이 교차되면서 그 소중함이 피부 깊숙이 전해져 왔다.

삽살개 '곰'과 '몽실'이가 일행을 환영했다. 지난 98년 삽살개보존회로부터 기증받아 독도경비대가 사육하고 있는 녀석들은 독도를 찾는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명물. 하지만 생태계 파괴와 관련한 환경부와 경북경찰청의 공방으로 한때는 '퇴출'위기까지 직면했었다. 처음에는 네 마리였지만 지금은 녀석 '부부'만이 금실을 과시하며 살고있다.

독도에 발을 딛자마자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풀 한포기, 돌 하나…. 어느 것 하나 소중하고 의미 없는 것이 없었다. 짜릿한 흥분과 감동이 온몸을 전율케 했다. 명치 끝 저 어느 언저리에선가 '찡'하고 올라오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실로 월드컵 이후 최고의 감동이었다.

경비초소와 등대까지 약 100m 가량의 가파른 절벽을 오르내리도록 만든 계단을 오르며, 과거 이같은 수고를 감당해준 보이지 않는 어느 손길들에 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왔다. 계단은 직선거리로 300m는 족히 돼 보였다.

이내 휴대폰을 꺼내들어 사랑하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바다 건너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온다. 분명 우리 땅이다. 후배 녀석에겐 독도상륙 문자메시지를 날려줬다. 평소 같으면 하찮고 일상적인 행동이었지만, 독도에서의 한 순간 한 순간은 그 자체가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오후 12시30분. 1시간30분 정도의 그리 길지 않은 체류시간동안 곳곳을 살피고 누비며 우리 땅 대한민국 독도를 흠씬 품었다. 그리고 내 조국에 감사했다. 욕심만큼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지만, 언제일지 모를 다음을 기약하며 독도경비대원들의 배웅 속에 다시 배에 올랐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울릉도로 향하는 길. 독도로 향하며 설렘으로 가득했던 배안은 돌아오는 길에선 흥분으로 충만했다. 조금은 피곤한 뱃길에 지칠법도 한데 일행의 얼굴은 여전히 상기되어 있었다.

스쿠버 장비를 이용해 독도 주변의 오염실태를 파악하는 열정을 보였던 김해일 대표는 "독도 주변 바다밑은 깨끗하고 아름다웠다"며 공해로 찌들고 있다는 항간의 소문을 일축했다. 그는 현재 독도에 설치되어 있는 유류발전시스템을 앞으로 태양열과 풍열 에너지시스템으로 교체, 환경오염과 에너지 절약을 이끌어내겠다는 포부를 덧붙였다.

독도유인도화운동본부 황백현 박사는 "무인도인 암석이 배타적 경제수역의 기점이 될 수 없다는 논리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법상 무인도로 규정되어 있는 독도를 명실상부한 유인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규정 독도향우회 고문은 "일본은 지금까지 국제무대에서 꾸준히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공을 들여 로비를 해왔다"고 지적하며 "50년 전 독도의용수비대가 온 몸으로 독도를 수호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법적으로 지켜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구에서 온 주부 손영주씨는 "오늘에야 고향을 밟을 수 있었다"며 흐뭇해했다. 그녀는 지난 97년 독도를 지키기 위해 범국민적 독도 호적옮기기운동이 펼쳐지고 있다는 소식에 남편과 함께 즉시 호적을 옮긴 열혈주부. '북받치는 감격'이라는 말로 뿌듯한 가슴을 표현했다.

독도공사 사무처장 정세창씨도 "사진이나 그림으로 보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며 "독도에 반했다"고 감격해했다. 정씨는 "이토록 아름다운지 몰랐다"면서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기억이 될 것"이라고 웃어 보였다.

독도가 시야에서 사라질 무렵, 저토록 아름답고 소중한 우리 땅을 한일협정에 걸림돌이 된다며 '폭파해 버리자'고 주장했다던 한 정치인의 망발이 뇌리를 스쳤다. 그가 이 섬을 단 한 번이라도 밟았더라면 그런 끔찍한 역사인식은 갖지 않았으리라.

▲ 경계근무 중인 독도경비대원
ⓒ 김범태
하지만 아쉬움도 많으니, 여전히 독도는 자국민에게조차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섬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해외여행이 더 쉽고 편한 세상이다. 물론 지역적 특수성이 있다손 치더라도 현재의 까다롭고 복잡한 입도 절차를 보다 간편화하는 등 독도는 우리 국민들에게 지금보다는 더 쉽고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일본 관리가 독도 망언을 할 때마다 시민단체들은 경쟁이나 하듯 일본대사관이나 탑골공원에 모여 규탄시위를 하지만 2~3일 후면 그 열기는 냄비처럼 식어버리기 일쑤고, 정부의 반복적이고 미온적인 대처에 가슴 답답해한다.

과거 '안보교육'이라는 명목으로 DMZ, 통일전망대, 심지어는 이승복 기념관까지 마치 정례화된 코스처럼 찾아다녔던 우리였다. 이제는 시선을 조금만 돌려 국민들이 직접 독도를 보고 느끼고 밟아보고 체험하며, 왜 일본이 주기적으로 망언을 일삼는지, 국제분쟁지역의 오명에 처한 독도를 국제법상 확실한 대한민국 영토로 응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상투적이긴 하나, '독도의 날' 등을 제정해 보다 많은 국민들이 독도사랑을 몸소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더 나아가 독도수호를 위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정부와 시민단체간의 공동노력도 필요하다. 그것이 '홀로 섬' 독도를 홀로 두지 않는 첫 걸음이 될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독도는 국제법상 '무인도'... 경제생활 영위 인구 없어
EEZ 기점 공인 위해선 명실상부한 '유인도' 되어야

▲ 독도의 우편번호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그리고 현재 실효 지배적으로 보더라도 대한민국 영토가 분명하다. 그런데 왜 일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네 땅이라는 망언을 계속하는가? 우리 정부는 왜 독도를 국경선으로 하여 배타적 경제수역(EEZ. 영해 밖으로 해안기선으로부터 200해리 안에 설정된 수역)의 기점으로 삼지 못할까?

그 이유는 독도가 현재 국제법상 무인도이기 때문이다. 무인도는 배타적 경제수역의 기점이 될 수 없다. 독도에는 현재 우리 경찰이 주둔하고 있고 독도등대수가 상주하고 있어도, 섬 자체에서 경제활동이 일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법적 무인도'이다. 국제법상 '유인도'는 경제생활을 영위하는 자연인구가 2가구 이상 거주해야 한다.

이같은 근거는 지난 1994년 발효된 신 유엔해양법 제121조 섬 조항 제3항에 기인한다. 이 조항은 '인간이 거주할 수 없거나 그 자체의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암석은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을 가지지 않는다'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단체들은 이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독도의 '유인도화'를 제시한다. 무인도인 암석이 배타적 경제수역의 기점이 될 수 없다는 논리를 극복하기 위해 독도를 국제법상 명실상부한 유인도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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