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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동류를 파는 노점. 아주 오래된 골동품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은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처리를 한 가짜들이다.
ⓒ 염미희

판지아위엔(潘家圓)은 베이징 시내에서 동남쪽으로 10Km 정도 떨어져 있다. 중심가는 아니지만 판지아위엔 교(橋)를 중심으로 상점과 시장과 주택가, 공원이 밀집된 번화가이다.

판지아위엔은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특히 활기를 띤다. 주말에만 열리는 골동품 시장 때문이다. 주말이 되면 이른 아침부터 상인들과 손님들, 구경꾼, 여행객들로 판지아위엔 골동품 시장(潘家圓久貨市場)은 북새통을 이룬다.

이 시장의 주요 고객은 시내에서 소매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관광지에서 비싼 값에 팔려나가는 각종 골동품과 기념품들은 이곳에서 싼값에 거래되고 있다. 매장에서 디스플레이용으로 쓰는 여러 가지 인형이나 도자기, 사진 촬영의 인기 소품인 낡은 액자와 구식 카메라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골동품 시장이니 만큼 가장 다양하게 취급되는 것이 도자기류. 중국 도자기 특유의 화려한 무늬가 그려진 크고 작은 도자기들이 구경꾼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중국 도자기는 동이나 철로 세밀한 문양을 새겨 넣고 그 안을 화려한 색으로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어떤 사람은 손바닥 절반 크기의 깨진 도자기 조각만을 좌판에 늘어놓고 팔고 있다. 주인은 명·청 시대를 거들먹이며 진품임을 자부하지만, 글쎄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진짜'를 만나기란 길거리에서 십 년만의 친구를 만나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도자기 외에 많이 취급되는 물건은 청동제품, 옥(玉)제품, 상아제품 등이다. 병마용 병기에서부터 자자손손 물려받은 듯 생긴 낡은 거울, 할머니 손가락에서 본 듯한 반질반질한 옥반지 등이 눈길을 끈다. 진품일 리 없지만, 진시황의 무덤에서 갓 꺼낸 듯 진흙을 뒤집어쓰고 좌판에 서 있는 병마와 군인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리얼하게 진흙을 묻혀주는 직업이 따로 있다고도 하고, 도자기나 청동으로 제작한 물건을 일부러 땅에 묻어두고 몇 년쯤 지나 파낸다고도 한다. 오직 중국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 도자기류를 파는 노점. 마오쩌둥과 공산당원들의 모형도 도자기로 구운 것이다.
ⓒ 염미희

시장 상인들이 가지고 나온 물건 중에는 문화혁명의 향수를 자아내는 기념품들이 많다. 문화혁명 시대에 제작된, 혹은 그때 제작된 것처럼 새로 만든 각종 선전물과 마오(쩌둥)의 초상화, 공산당 수첩과 모자, 배지들이다.

1950년대만 해도 집집마다 벽에 걸리고 마을의 골목골목을 장식했을 포스터들이, 지금은 소수의 마오 매니아들과 호기심 어린 외국인 관광객들의 기념품이 되어 팔려나가고 있다.

▲ 각종 문화혁명 기념 포스터들. 문화혁명 기념품은 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요 상품 종목 중 하나이다.
ⓒ 염미희

각종 인형과 탈 등 공연 용품도 눈길을 끈다. 실과 막대로 움직이는 인형이나 손을 넣어 움직이는 장갑 인형은 실제로 인형극에 쓰이는 것들이다. 귀엽고 예쁘장한 인형보다는 다양한 표정의 사실적인 인형들이 많다.

이러한 공연용 인형은 원래 인형극 극단에서 직접 만들어 쓴다고 한다. 전통 인형극의 수요와 극단의 수가 점차 줄어들면서, 인형을 찾는 사람도 실제 인형극에 쓰려는 사람보다는 중국 여행을 기념하려는 여행객들로 변화하고 있다.

▲ 전통 인형극에 쓰이는 인형들.
ⓒ 염미희

내 눈을 가장 잡아끈 것은 그림자극에 쓰이는 인형들이었다. 중국에서는 '피잉(皮影)'이라고 부르는 그림자극은 가죽이나 종이를 오려 만든 형상을 스크린(흰색 천과 알전구로 충분)에 대고 조종하면서 악단의 음악과 연기자의 노래와 대사로 공연하는 것이다.

그림자극이라고 하면 검은색의 단순한 형상을 상상하기 쉽지만, 중국의 피잉은 화려한 색깔과 세밀한 묘사가 특징이다. 피잉에 쓰이는 인형은 그래서 그 세밀함만으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극의 내용이 대부분 역사물인 만큼 황제와 황후, 이름난 장군 등이 인형의 주인공들이다. 색색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이 인형들은 화려한 머리 장식과 옷에 그려진 갖가지 세밀한 무늬까지 놓치지 않았다.

우칭(無情), 장진시아(張金霞) 부부는 가죽 인형을 함께 만들고, 주말에는 시장에 나와 서로 자리를 지켜가며 인형을 판다. 우칭씨는 세밀한 격자무늬 드레스를 입은 양귀비 인형은 며칠에 걸쳐 만든 것이라며 120위안(약 1만8000원) 이하로는 절대로 깎아줄 수 없다고 말했다.

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그림자극의 수요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지금은 정기적인 공연은 하고 있지 않으나, 관람객이 20명 이상만 되면, 언제 어디든 달려가 공연을 해 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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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그림자극의 환상에 빠지다


▲ 정교한 피잉(그림자극) 인형들.
ⓒ 염미희

▲ 피잉 재료상 장진시아씨. 남편과 함께 만든 인형을 직접 팔고 있다.
ⓒ 염미희

정오의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는 가죽 인형들을 뒤로하고 시장 밖으로 나왔다. 시장을 둘러싼 벽 밖에는 또 하나의 시장이 서 있었다. 시장 안에 자리를 잡지 못한 상인들이 줄줄이 좌판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 규모나 상품의 종류는 시장 안과 다를 게 없었다.

입구 반대편에는 헌책방 시장이, 입구 오른편에는 고가구 시장이 큰 규모로 자리잡고 있으며, 좌판 시장을 둘러싼 2층짜리 건물은 모두 그림과 서적을 취급하는 상점들이다.

시장 안팎으로는 먹거리을 파는 노점에서부터 아이스박스를 매고 다니며 마실 것을 파는 사람, 커다란 쇼핑백을 산더미처럼 매고 다니며 파는 노인들,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르는 리어카와 사이클 릭샤 운전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에서 으레 볼 수 있는 활기찬 모습이다.

넓은 시장을 구석구석 헤집고 다니느라 허기진 배는 2위안짜리 '조선냉면'으로 때웠다. 면발은 퉁퉁 불었지만, 국물 만큼은 중국에서도 인기가 좋은 평양 물냉면 맛 그대로였다.

▲ 정오가 되자 상인들이 간단한 도시락과 맥주로 점심을 먹고 있다.
ⓒ 염미희

▲ 엄마를 따라 장사를 나온 아이가 점심을 먹고 있다.
ⓒ 염미희

판지아위엔 시장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동대문 풍물시장을 여러 번 떠올렸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여행지로 자리잡은 인사동 거리가 베이징의 홍치아오 시장과 비슷하다면, 떠들썩한 장터 분위기와 값싸고 다양한 상품을 만날 수 있는 동대문 풍물시장은 판지아위엔 시장에 견줄 만하다.

전자가 외국인(또는 타지방에서 온 여행자)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이라면, 후자는 현지인들의 실거래가 이루어지는 '진짜' 시장이다.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딘 동대문 풍물시장도 서울의 명물로 자리잡아가길 바란다.

▲ 한꺼번에 많은 물건을 사는 소매상들을 상대로 커다란 쇼핑백을 파는 노인.
ⓒ 염미희

▲ 노곤한 낮잠을 청하는 상인.
ⓒ 염미희

여행정보

판지아위엔은 3환도로(천안문을 중심으로 한 커다란 순환도로 중 세 번째 도로) 동남쪽 모서리에서 약간 북쪽에 위치해 있다. 판지아위엔 골동품 시장에 가려면 28, 300, 368, 800, 802번 버스를 타고 판지아위엔 역에 내린다. 이 버스들은 대부분 3환도로를 순환하는 버스들이다.

시장은 또다른 버스 정류장인 판지아위엔치아오(潘家圓橋)역 바로 맞은편에 있는데, 713번 버스가 이곳에 선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구어마오(國貿) 역으로, 택시를 타면 10∼15원 정도의 요금이 나온다.

토요일 일요일 이틀 동안 새벽 6시부터 열리는데, 서둘러서 일찍 갈수록 볼거리가 많다. 파장 시간은 오후 3시 전후이지만, 여행객이 늘어나면서 늦게까지 좌판을 여는 상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여행가이드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은 이 시장을 꼭 가봐야 할 필수 코스로 꼽고 있다. 덕분에 서양인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한국인이나 일본인 여행객은 드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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