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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아이들은 그렇지 않지만 내가 어릴 시절만 해도 장래 희망을 물으면 '대통령'이라고 답하는 아이들이 꼭 있었다. 대통령에 대한 존경이라기보다는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기에 신분의 수직 상승을 꿈꾸는 부모에 의해 세뇌된 꿈이 아닐까 생각된다.

세월이 흘러 군부가 아닌 문민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통령이라는 존재와 그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의식도 많이 바뀌었다. 물론 여전히 멀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예전에 비해 대통령과 국민들간의 거리가 많이 좁혀진 게 사실이다. 그러한 상징 중 하나가 바로 청와대의 개방이 아닐까 한다. 청와대는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1998년 5월부터 일반 국민들에게 본격적으로 개방되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이 청와대 관람을 계획한 날은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로부터 탄핵 기각 판정을 받고 2개월여의 '정치적 감금' 상태에서 자유로워진 바로 다음 날인 15일이었다. 아침부터 궂은 비가 내렸지만 오후에는 다행히 비가 멈췄다.

청와대 관람은 생각보다 까다롭거나 어렵지 않다. 경복궁 동편 광장에 알듯 말듯 마련된 관람권 배부처에서 신분을 확인하고 관람권을 받은 후 동편 주차장에서 관람 버스에 오르면 된다. 이렇게 해서 제일 먼저 도착하는 곳은 바로 춘추관이다.

▲ 경복궁 동편 주차장의 관람 버스 승차장
ⓒ 양허용
대통령의 기자 회견 장소와 출입 기자들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춘추관. 고려와 조선 시대 역사 기록을 맡아 보던 관아인 춘추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오늘날의 자유 언론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춘추관을 지나면 청와대 내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답다는 녹지원에 이르게 된다. 어린이날 등 각종 행사가 열리기도 하는 이곳은 원래 경복궁의 후원이었으나 일제 시대에 훼손된 것을 개조한 곳이라고 한다.

때마침 비가 내려서일까, 짙은 녹음 냄새가 코를 찌른다. 1000여 평의 푸른 잔디밭 한가운데는 수령이 150년이 넘었다는 반송이 서 있어 운치를 더해 준다. 잔디밭을 둘러싸고 있는 황토 트랙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조깅을 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안내자의 말에 따르면 녹지원은 2003년 3월부터 개방했으며 그 이전에는 대통령 전용 공간으로만 비밀스럽게 이용되었다고 한다.

▲ 상큼한 푸르름을 자랑하는 녹지원
ⓒ 양허용
전(前) 대통령들이 걸었던 황톳길을 한바퀴 따라 돌고 난 다음 물 흐르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하는 언덕을 따라 오르면 청와대 구 본관터에 이르게 된다. 일제 시대, 조선총독부는 이곳에 대(大)자 모양의 건물을 지어 총독 관저로 사용했다. 그래서 그 총독 관저와 지금은 허물어진 조선총독부 건물, 그리고 시청 건물을 연결하면 대일본(大日本)이란 글씨가 완성되도록 했다.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 시절에는 '경무대'란 이름으로 사용됐으며 줄곧 청와대 본관으로 이용되다가 1993년에 조선총독부 건물과 함께 헐리게 됐다. 이곳에 경복궁을 지키던 병사들의 처소가 있었다 하여 '수궁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면 낯설지 않은 건물인 청와대 본관이 나타난다. 전통 궁궐 건축 양식을 참고하여 1991년에 건축하였다고 하는 2층짜리 건물로 좌우에 충무실과 인왕실이라는 별채를 거느리고 있다. 이 본관 건물은 우리 나라 건축 양식 중 가장 격조가 높다는 팔작 지붕을 올리고 청기와를 얹었다. 기와의 개수만 15만 개에 이른다고 하는데 기와 하나 하나를 도자기처럼 구워 내어 100년 이상 견디도록 만들었다.

▲ 인왕산을 배경으로 한 청와대 본관
ⓒ 양허용
내부에는 영부인과 대통령의 집무실, 접견실, 회의실 등이 있다. 건물 앞의 넓은 잔디 마당은 국빈 환영 행사와 국군의장대, 전통의장대의 사열 등이 행해진다. 두 곳의 별채는 만찬과 칵테일 파티 등의 장소로 활용된다. 아쉽게도 본관 건물은 들어갈 수 없었다.

청와대 관람의 마지막 순서는 영빈관이다. 말 그대로 손님을 맞이하는 곳으로 외국 국빈들을 위해 만찬이나 공연 등을 벌이는 장소이다. 이곳 역시 꽤 눈에 익은 장소로 공식 행사가 없을 경우에는 실내를 둘러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영빈관 앞에는 8도의 화합을 상징하는 대리석 광장이 있다.

▲ 영빈관 전경
ⓒ 양허용
▲ 영빈관 한쪽에 심어진 남북정상회담 기념 식수 표석
ⓒ 양허용
영빈관 관람을 마지막으로 청와대 경내 관람은 모두 끝났다. 하지만 청와대를 벗어나도 아직 구경거리가 남아 있다. 조선 시대 왕을 낳은 후궁들의 위패를 모셔 놓은 칠궁, 군사 정권 시절 독재와 억압의 상징이었던 안가를 허물고 조성한 무궁화 동산, 그리고 역대 대통령들이 받은 기념품을 모아 놓은 효자동 사랑방 등이 구경 거리를 더해 준다.

▲ 역대 대통령이 받은 선물을 전시해 놓은 효자동 사랑방
ⓒ 양허용
청와대 관람에는 총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정권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서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고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사실을 되새겨 주는 차원에서 한번쯤 관람을 계획해 보는 것은 어떨까. 마침 경복궁과 국립박물관, 국립 민속박물관 등이 가까운 곳에 있으니 이와 연계한다면 교육적으로 훌륭한 하루 나들이 코스가 될 듯 싶다. 관람은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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