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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달' 4월은, 그 느낌만큼이나 진한 생명력을 남기고 계절의 여왕 5월이 되어 돌아왔다.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와는 달리 주말 날씨는 화창했다. 저 눈부신 햇살을 두고 집에만 앉아 있는다는 건 행복한 삶에 대한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만 같아 서둘러 길을 나섰다.

고창을 염두에 두었던 목적지는 여행 몇 시간을 앞두고 함평으로 바뀌었다. 이왕 멀리 가는 길, 몇 십 분만 더 내려가면 또 다른 세상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여행이 인생과 닮아 있는 건 이렇듯 예기치 못하게 목적지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 산 한쪽 면에 꽃을 이용해 나비를 형상화한 행사장 모습
ⓒ 양허용
함평에서는 여섯 번째 나비 축제가 열리고 있다. 다행히 비교적 이른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축제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행사장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은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함평 나비축제는 함평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조그만 지방 도시에서 개최하는 축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짧은 기간에 전국적인 명성을 얻으며 성공적인 축제로 자리잡았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문화관광부의 우수 축제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나비축제 행사장은 함평천과 친환경 농업지구를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다. 꽃과 나비를 중심으로 한 주 전시관과 각종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체험 학습장, 먹거리 장터와 각종 전시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행사장 진입로와 전시관 주변에는 노란 유채꽃과 보라빛 자운영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관람객들의 감흥을 북돋웠다.

▲ 큰으아리
ⓒ 양허용
나비축제의 주 전시장인 종합생태체험 한마당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허브원예치료관을 만나게 된다. 다양한 허브와 아름다운 꽃을 통해 기 치료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가지각색의 아름다운 꽃과 아기자기하게 조성된 정원은 바라만 보아도 엔돌핀이 솟아날 것만 같다. 굳이 기 치료가 아니어도 몸이 좋아질 듯싶다.

허브원예치료관과 이어진 나비생태관에 들어서면 비로소 나비축제의 주인공인 각종 나비들과 만날 수 있다. 동화처럼 꾸며진 수십, 수백만 송이의 꽃 길을 따라 흰나비, 노랑나비, 호랑나비, 제비나비 등이 너울거리며 날아다닌다. 이 장면은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인지 모르겠다고 한 장자를 떠올리게 한다.

▲ 금낭화
ⓒ 양허용
아름다운 꽃을 구경하는 것도 충분한데 그 사이를 너울거리며 날아다니는 나비의 모습을 즐기는 것은 비단 위에 꽃을 더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게다가 먼 길을 찾아와준 손님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인지 나비들은 가끔씩 관람객들의 옷 위로 사뿐히 내려 앉았다.

나비생태관에는 꽃과 나비 외에도 나비의 우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그리고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그리고 각종 수생 곤충들을 관찰할 수 있는 코너도 있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들에게 좋은 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 호랑나비의 애벌레.
ⓒ 양허용
나비생태관 외부에는 표본 전시관이 있어 각종 나비와 잠자리의 표본 등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네 시간이나 걸려 그 먼 길을 달려와 나비축제에 참석한 이유 중 하나는 살아 있는 아름다운 나비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때문에 표본이 되어 날지 못하는 나비의 모습은 다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 호랑나비의 화려한 아름다움
ⓒ 양허용
주 전시장을 벗어나면 더 많은 볼거리와 즐길 거리들을 만날 수 있다. 월령에 따른 누에의 성장 과정과 비단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볼 수 있는 누에 체험장, 염색 체험, 미꾸라지 잡기, 보리·콩 그을리기, 지푸라기 공예, 가축 몰기 등은 보고 지나치는 '피동적 관광'에서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참여형 축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한다.

▲ 꽃 잎에 앉은 제비나비
ⓒ 양허용
행사장 한쪽에는 무릎 만큼 자란 청보리와 어른의 키를 훌쩍 넘긴 밀줄기가 끝없는 푸르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푸르름은 먼 길을 달려온 피로를 싹 풀어주는 듯했다. 또한 사방에 지천으로 펼쳐진 꽃밭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함평천변으로 늘어선 행사장에는 토종생물관찰 학습장, 반달곰 전시장, 투계장 등이 운영되어 다양하고 특색 있는 즐거움을 제공했다.

▲ 청보리
ⓒ 양허용
함평 나비축제는 꽃과 나비라는 친환경적인 소재를 이용하여 풍성한 볼거리와 관람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마당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을 축제 속으로 끌어들여 하나가 되게 했다.

하지만 나비축제에서도 몇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우선 거의 대부분의 체험 행사가 무료가 아닌 유료라는 점에서 이중 삼중으로 비용을 지불한다는 인상을 받았으며, 축제가 더해감에 따라 나타나는 상업화의 물결을 너무 빨리 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는 턱없이 부족한 휴식 공간이다. 행사장을 둘러보는 데만도 몇 시간이 걸릴 정도로 행사장은 그 공간이 넓었다. 하지만 그 넓은 행사장 어디에도 앉아서 지친 다리를 쉴 만한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비를 피할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건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 노약자들이 편히 앉아 쉴 만한 공간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또한 단체(1800원)와 개인 요금(5000원)의 지나친 차이는 매표소 앞에서 편법적인 단체 구성을 낳기도 했다. 운영 측면에서의 조금만 개선하면 좀 더 나은 축제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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