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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노인들.
ⓒ 한성희
“그야 돈이지!”

경기도 파주시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10여명의 노인들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자 이구동성으로 돈이라고 대답했다.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중인 파주시도 노인문제는 대도시와 다를 바가 없다. 수입이 없는 노인들에게 가장 큰 소망은 돈이다. 자녀들에게 풍족히 타 쓸 수도 없고 달라고 하기도 민망하다.

“노인정 가봐야 다들 어버이날 잔치에 갔을 걸? 낼이 어버이날이잖아. 우린 가기 싫어서 안갔지만.”

어버이날의 '뻔한' 행사에 가서 밥 얻어먹기 싫다는 노인들은 아파트 경비실 앞에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만나서 뭐 하긴 뭐 해? 모여서 5천원두 내구 돈 많으면 만원도 내서 소주나 한 잔 먹는 거지.”
“아, 저긴 돈 많아도 만원 안 내.”
“내가 돈이 어딨어? 아껴야지.”

‘아침에 일어나면 어디를 가야 하나 걱정한다’는 오귀선(68· 파주시 금촌동)씨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것도 할 일 없는 노인들의 고민을 드러낸다. 사회속의 역할에서 밀려나 갈 곳과 할 일이 없다는 것이 노인문제의 근본적 원인이다.

이들이 한결같이 원하는 것은 일자리다. 아직 건강하고 움직일 수 있는데 일자리를 구할 길 없으니 수입이 있을 리 없다.

“우리가 많은 돈을 달라는 것도 아냐. 작은 돈이라도 좋으니까 우리에게 맞는 일자리를 구해줬으면 해.”
“그럼, 큰 돈 바라나? 전자제품 라인 같은 데서 가벼운 거 움직이는 일은 할 수 있다 이 말이야. 소일거리라도 있으면 손주들에게 용돈도 좀 주고 싶은 거지.”
“요즘 보라구. 다 여자가 나가서 돈 벌구 남자는 집에 있잖어.”
“거꾸로 됐어. 여자가 집에 있고 남자가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말야.”

노인들 중에서도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의 고민은 다르다. 할머니들은 용돈벌이 일거리라도 찾을 수 있지만 할아버지들은 할 일이 없다는 뜻이다. 손주 돌보기나 집안일을 거들며 적극적으로 일하는 할머니들과 달리 할아버지들은 모여서 푼돈을 털어 소주나 한 잔 하는 것이 고작이라는 푸념도 들린다.

“여자가 좀 낫지요. 집안일도 하니 할 일 없는 남자분들보단 지내기가 쉽지요.”

곱게 차려입고 외출하던 김옥태(70·조리읍 내산마을 아파트)할머니가 지나가다 한 마디 던진다.

기자가 국가에서 어떤 노인복지를 해줬으면 하냐는 질문을 던지자, 할 일 없이 노느니 휴경농지라도 가꾸면 좋겠다, 65세 이상에게 3개월마다 지급되는 3만6천원을 10만원 정도라도 올려줬음 좋겠다, 국가에서 노인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줬음 좋겠다, 정보에 어두우니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잘 홍보해줬음 한다는 등등의 말들이 쏟아졌다.

시에서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해도 알지못해서 참석하지 못한다는 노인들이 의외로 많았다.

▲ 농사를 짓고 생활하는 신산리 노인들.
ⓒ 한성희
"이 좋은 걸 왜 못배웠어?"

“어서와요. 이거 한 점 들어봐.”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신산5리 노인정 옆 동네 공동창고에서 개수육과 소주잔을 놓고 어버이날 관광준비를 하던 할아버지들은 기자를 보자 반기며 의자를 권했다. 농기계 보관창고 한 구석에 놓인 커다란 두 개의 양은솥에서 개고기를 삶는 된장국 냄새가 풍겼다.

“이거 못먹어?”
“예, 아직 먹는 법을 못배웠어요.”
“이 좋은 걸 왜 못배웠어?”
“배우면 동네 개들이 안남아 날 거 같아서요.”

신산5리는 48가구 인구 150여명의 작은 농촌마을이다. 이중 60세 이상이 60여명에 이른다. 이 동네의 노인들은 거의 손수 농사를 짓고 있다. 따라서 아파트 단지처럼 일거리나 소일거리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노인정 회원 중 운전면허를 가진 사람만 90% 이상이다.

“농사를 지으니 수입은 들어오겠네요.”
“이것저것 들어간 돈 다 빼면 고작해봐야 4백~5백만원 들어오기 힘들어. 그걸로 전기세 내고 세금 내고 살 수 있어?”

대부분의 이곳 노인들은 자녀와 같이 살지 않고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려나간다. 용돈 정도라도 벌었으면 하는 아파트의 노인들과 달리 생계를 위한 고충이 크다.

▲ 어버이날 관광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소주 한잔을 즐기고 있다.
ⓒ 한성희
그러나 이곳 노인들은 관광을 가도 부녀회나 동네에 손을 내밀지 않을 정도의 자급자족 능력이 있다.

“회비로 충당하구 준비두 우리가 다 해. 개도 잡아서 다 우리가 삶았어. 저거 봐. 낼 놀러갈 준비 다 해놨잖아.”

전병섭(74) 노인회장이 자랑스럽게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소주 4박스와 과일 음료수 등이 잔뜩 쌓여있다.

신산리 노인들은 시에서 지원해주는 200여만원의 돈만으로는 노인정을 꾸려가기가 빠듯해 휴경지에 공동으로 콩농사를 지어 보탠다.

이들은 오래전 개인이 지어준 낡은 노인정이 불만이다.

“핼스기계랑 찜질기계가 다 있지만 전기세 많이 나와서 쓰지도 못하고 노인정 지하가 물이 차서 들여놓지도 못해. 다 구닥다리고 말야.”

개고기를 못먹는다고 사양하자 기자에게 콜라를 따라주던 이재형(67)씨의 말이다.

“96년에 환경개선시범마을로 선정돼 지원받은 체육시설들이 있는데 노인정이 낡아서 이용을 못해요."

안타까운 듯 조심스럽게 말하는 심상태(48) 이장은 순박하고 선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농부다. 심 이장은 동네 어르신들의 관광준비를 돕기위해 들렀다고 한다. 그러면서 1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의료시설이 부족한 농촌의 어르신들을 위해 침을 놔주는 의료봉사대가 왔으면 한다고 말한다. 교통이 불편해서 병원에 가려면 이만저만 어려운 게 아니란다. 인터넷 같은 정보교육의 혜택은 꿈도 꾸지 못한다.

아파트에 살든, 농촌마을에 살든 노인들은 사회에 요구하고 싶은 게 많았다. 아파트 노인들에게 소외감, 소일거리 등이 가장 큰 관심사였다면 신산리 노인들에게는 교통문제 등 마을현안이 주된 관심사였다. 그들의 마음속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정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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