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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장애인야학 노들노래공장 노들장애인야학 노들노래공장 수강생들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노래 수업을 들으며 노래를 만들고 있다. ⓒ 이정민
 
노들장애인야학 노들노래공장 노들장애인야학 노들노래공장 수강생들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노래 수업을 들으며 노래를 만들고 있다. ⓒ 이정민
 
"자, 오늘은 무슨 노래를 만들어 볼까요."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동숭길에 있는 한 건물, 중증발달장애인 10명이 작곡-작사 수업을 위해 모였다. 벌써 2년째 이어진 수업이다. 황임실(47)씨가 제안을 한다. "바다요! 바닷소리요!" "바다 좋죠." 교사 만수(35)씨가 화이트보드에 "바다"라고 적는다. 김수진(55)씨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고장이요!"라고 한다. 물건이 고장나서 건전지를 사러 가야 한단다. 만수씨는 또 화이트보드에 "고장"이라고 쓴다. 여기에다 "이사" "친구의 마음" 같은 말들이 쏟아진다. 

무얼로 할지는 투표로 정하기로 했다. 다들 바쁘게 손을 들었다 내린다. '바다'가 4표, '고장'이 1표, '이사'가 2표, '친구의 마음'이 1표를 받아 '바다'로 결정됐다. 그런데 가수 임창정을 좋아해 평소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임실씨가 영 기분이 좋지 않다. 
     
"선생님, 기분이 안 좋아요."
"무슨 일로 기분이 안 좋아요?"
"모르겠어요." 

"선생님 소리 질러도 돼요?" 
"네, 소리 질러도 돼요." 
"아아아아악!" 


이 수업에서는 일상적인 일이기에 놀라는 사람은 없다. 임실씨가 시원하게 소리를 지르고 나니 만수씨가 질문을 던진다. "바다에 가서 소리를 지르면 기분이 어떨까요?" 제각각 대답이 쏟아진다. 

"기분이 좋아요." "저는 바다에 가기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바다에 가도 화가 나요. 화가 나서 바다 생각이 났는데." "작년엔 바다에 갔어요. 올해는 아직 못 갔어요."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이렇게 해서 노래 <아~ 아~>의 가사, "화가 날 땐 바다 생각 / 바다에 가도 화가 나지만 / 바다에 가서 소리 질러요"가 만들어졌다. 

"좋은 노래가 나올 것 같아요" 
 
노들장애인야학 노들노래공장 노들장애인야학 노들노래공장 수강생들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노래 수업을 들으며 노래를 만들고 있다. ⓒ 이정민
 
노들장애인야학 노들노래공장 노들장애인야학 노들노래공장 수강생들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노래 수업을 들으며 노래를 만들고 있다. ⓒ 이정민
  
"이 부분을 한번 불러보시겠어요?" 다들 2년째 수업을 들어서 그런가 멜로디 붙이는 데는 선수가 다 됐다. 가사를 입 안에서 굴리다가 리듬을 실어 말한다. 이윽고 "단언컨대 비장애인들 누구도 이런 노래를 만들 수 없고 부를 수 없다"(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된다. 

맨 앞에서 오늘은 '친구의 마음'을 제안했던 신현상(46)씨 또한 이 수업을 아낀다.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그는 "친구들이랑 같이 부르니까"라고 대답했다. 2시간이 지나고 만수씨는 만족스럽게 덧붙인다. "좋은 노래가 나올 것 같아요." 한 번의 수업에서 하나의 노래를 만든다. 무엇보다 중증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자신들도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든다.

이 노래들은 비장애인들이 상상하는 노래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음정의 최소 단위인 '반음'보다 더 작은 '미분음'으로 이뤄진 노래도 있다. 평소 이들이 하는 리듬감이 있는 말투를 그대로 살려서 노래하면 이를 교사가 악보 위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또 가사에는 그들이 일상 속에서 경험한 생각과 취향이 반영돼있다. 

이들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다같이 부른다. 한 번만 들으면 모두 따라부를 수 있다. 마이크를 쥔 신승연(48)씨는 눈을 감은 채로 노래를 부른다. 이 수업을 이들은 '노들노래공장', 줄여서 '노노공'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노래는 우리가 만든다"
 
노들장애인야학 노들노래공장 노들장애인야학 노들노래공장 수강생들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노래 수업을 들으며 노래를 만들고 있다. ⓒ 이정민
 
노들장애인야학 노들노래공장 노들장애인야학 노들노래공장 수강생들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노래 수업을 들으며 노래를 만들고 있다. ⓒ 이정민
 
이들 중증발달장애인들에게 이 작곡-작사 수업은 노동이다. 2022년 시작된 '노들노래공장'은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일환이었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통해 중증장애인은 거리에서 장애인 권리를 알리는 캠페인을 벌이거나, '노들노래공장'처럼 문화예술노동을 하면서 최소한의 돈을 받을 수 있었다. 장애인들은 1년 계약직으로 일주일에 15~20시간씩 최저임금을 받았다.

지난 2년 동안 이들은 '노들노래공장'에서 '이상한 세상', '봄비', '감자와 고구마', '공연하고 싶어요', '사는 게 재밌다' 등의 노래를 만들고 돈도 벌었다. 그런데 서울시가 2024년 관련 예산을 0원으로 삭감, 사실상 폐지하면서 이들 중증장애인 400여 명은 모두 일자리를 잃게 됐다. 최근 이들은 노들노래공장에서 만든 노래 가사와 악보, 글이 실린 노래집을 출판해 나온 수익 전액을 해고된 장애인 노동자들의 투쟁 기금을 모으기로 했다. 

교사 만수씨(음악가 이민휘)는 "있는 노래를 그저 따라부르는 것이 아닌 중증발달장애인들이 직접 노래를 만들어 그 노래를 부르기"를 바랐다. 그는 "노동자들은 트로트나 발라드 등 기성곡을 부르는 것에 익숙했고, 저도 중증발달장애인들과 노래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해보니 전혀 문제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만수씨는 "집회 현장에서 나오는 오래된 민중가요도 힘이나 역사가 있지만 중증발달장애인 당사자가 만드는 노래를 집회에서 함께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 운동에 당사자의 생활이나 관심사가 녹아있어도 좋지 않을까"라고 되물었다.

오해와 달리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중증발달장애인만의 일자리가 아니다. 그들과 조력하는 비장애인들은 이 일자리를 통해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만수씨 역시 지난 2023년 발행한 정규2집 '미래의 고향'에서 노래 '미래의 고향'은 노들노래공장 수업이 아니었으면 만들지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만수씨는 노들노래공장 홈페이지(nonogong.kr)를 만들어 누구나 쉽게 '노들노래공장'에서 만든 노래에 접근할 수 있도록 음원과 악보를 제공하고 있다. 

'노들노래공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우리가 함께 부르는 노래>(2024)의 장호경 감독은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의 언어와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고 논리적이게 보이지도 않지만, 비장애인이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만들어주면 어떻게 될까. 이 수업이 비장애인들이 발달장애인들과 지역 사회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준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노들장애인야학 노들노래공장 노들장애인야학 노들노래공장 수강생들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노래 수업을 들으며 노래를 만들고 있다. ⓒ 이정민
 
 
노들장애인야학 노들노래공장 노들장애인야학 노들노래공장 수강생들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노래 수업을 들으며 노래를 만들고 있다. ⓒ 이정민
    
태그:#노들노래공장, #중증발달장애인, #노래집, #권리중심공공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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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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