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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6시집 <달리지 馬>를 출간한 오봉옥 시인.
 최근 제6시집 <달리지 馬>를 출간한 오봉옥 시인.
ⓒ 오봉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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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해방공간'으로 불렸던 1946년. 전남 화순의 탄광에서 미군정의 탄압에 맞서 탄부(炭夫)들이 궐기한다. 36명이 죽었고, 500여 명이 크게 다쳤다. 한국 근대사의 비극 중 하나로 기록된 이 사건이 1989년 스물여덟 살 청년시인에 의해 문학적으로 형상화된다. 장편 서사시 <붉은 산 검은 피>다. 

당시 한국은 군사정권이 통치하던 시절. <붉은 산 검은 피>를 펴낸 출판사와 시집을 쓴 작가 모두가 고통과 수난을 겪는다. 책에는 판매 금지의 붉은 딱지가 붙었고, 시인 오봉옥은 구속된다. 

이는 20세기말 한국 문단의 비극적 풍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로도 기록됐다. 그랬다, 1989년은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은 시를 썼다는 이유로 작가를 감옥에 보낼 수도 있는 시대였다. 

세월은 흘렀다. 비분강개와 결기로 눈동자를 새파랗게 빛내던 젊은 시인 오봉옥은 이제 회갑을 넘긴 예순셋 중년의 교수가 됐다. 그리고 그가 최근 눈에 띄는 시집 한 권을 출간했다. 제목은 <달리지 馬>. 앞서 언급한 오봉옥의 시집이다. 
 
오봉옥이란 이름을 세상에 알린 시집 <붉은 산 검은 피>.
 오봉옥이란 이름을 세상에 알린 시집 <붉은 산 검은 피>.
ⓒ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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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독특하다. 얼핏 봐선 만화책처럼 보인다. '웹툰시집'이란다. "이건 뭐지?"라는 혼잣말을 하며 오봉옥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론,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이건 '변화·발전'이라는 칼 마르크스의 낡은 레토릭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인지하는 사실. 그 변화라는 순리에선 시인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붉은 산 검은 피>라는 무겁고 심각한 시집에서, 비교적 가벼운 위트와 흥미로움으로 치장된 <달리지 馬>로의 변화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됐고, 그걸 작가 자신과 독자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은 오 시인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요약한 것이다. 한국 문학, 특히 시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독자들이 '시인 오봉옥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시와 만화가 서로 좋은 영향을 주기를 바랐다

- '웹툰시집'이라는 단어부터가 생경하다. 필자로서 이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또, 만화와 시를 결합해 시집을 낸 이유는 무엇인지.

"웹툰시집이 장르 혼합의 개념이니 생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시의 독자층이 줄어들고 있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해 왔다. 그건 활자매체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반면 영상매체의 영향력이 날로 커져가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있고, 또 한편으로는 시를 어느 사이 마니아들만 읽는 장르로 만들어버린 시(詩)문단 내부의 흐름과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고상하다고 할 수 있는 시를 웹툰과 결합한다면 시의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웹툰시'라는 개념보다는 시라는 말을 앞세운 '포엠툰'이라는 개념을 쓰고 싶었는데 주위에서 그건 너무 생경하게 느껴진다는 말들을 많이 해 그냥 '웹툰시'로 쓴 것이다."

- 기존의 시와 웹툰시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 쓴 사람으로서 웹툰시의 매력이나 장점은.

"기존의 시들은 시의 여백까지를 독자가 느끼게 하는 측면에서 좋은 것 같고, 웹툰시는 어렵게 느껴지는 시를 보다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시적 상상력이 만화에 영향을 주어 재미의 차원을 넘어서게 하고, 만화적 상상력이 시에 또 다른 영감을 줘 시의 세계가 더욱 더 넓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자면 그 둘의 창조적 결합이 중요하다. 웹툰시를 쓴다고 생각하니까 확실히 쉬우면서도 감동적인 작품을 쓰려는 의식이 앞서는 것 같았다."

- 출간 이후 동료 시인들과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의외인 것은 시인들의 반응이었다. 일부 생경하게 느껴진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다는 시인들이 많았고, 구체적으로 자기도 웹툰시집을 낼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느냐는 말들을 많이 했다. 독자들의 반응은 예상하는 바와 같았다. 쉽게 잘 읽힌다, 시가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 아이들도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더라 등등 긍정적이었다. 얼마 전 북 토크를 한 적 있는데 거기에서 자기 이름이 아닌 자식들이나 조카 이름을 써달라는 경우가 많아 흐뭇했다."

- 시집 <달리지馬>에선 마(馬)자가 생물학적 동물부터, 명령형 어미 등 여러 의미로 변용돼 사용된다. 이를 의도했을 것 같은데.

"웹툰시집을 낸다고 생각하니 말놀이가 곁들여지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놀이는 시를 끌고 가는 시적 화자와 달리 밖에 있는 시인이 시 속으로 들어와서 펼치는 천진난만한 행위다. 다시 말해 아이들이 펼치는 동화적 상상력과 같이 시인과 시적 화자가 넘나들고, 시의 안과 밖이 자유롭게 넘나들어야 한다. 이번 시집에선 말놀이를 세 가지의 형태로 드러내 보았다.

우선 <달리지馬>처럼 언어로서의 말놀이, 시 안의 등장인물들이 구어체로 드러낸 삶의 표현으로서의 말놀이, 말을 거꾸로 세우는 등의 형태로서의 말놀이가 그것이다. 이번 웹툰시집이 실험적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독자들 역시 그 부분을 긍정적으로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시대를 열심히 살았으니 만족... 늘 청년처럼 살고 싶다"
 
오봉옥 신작 시집 <달리지 馬>.
 오봉옥 신작 시집 <달리지 馬>.
ⓒ 솔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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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일이겠지만, 이번 시집 수록작 중 딱 한 편만 읽어야 한다면 어떤 작품을 독자들에게 권하겠는가.

"맞다. 한 편을 선택하는 게 늘 어렵다.(웃음)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자식 생각'이다.
 
'휠체어 탄 울엄니 등산 간다는 나에게 말하시네.
산에 가서 구절초를 보거든 그 냄새 쪼깨만 개비에 넣어 온나.
오는 길에 바다에도 들를 거라는 말엔 또,
갯바닥에 가믄 파도소리도 쬠만 귓구녕에 담아오고 잉.
그럼 구절초 한 다발 꺾고
파도소리도 녹음해 올게요 했더니
니가 날 걱정할까봐
괜시리 한번 혀보는 소리라며 손사래를 치신다.
걱정 말라니 원.
그걸 말씀이라고 하고 계신다.'

이 시는 말놀이를 하는 어머니와 자식인 시적 화자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휠체어를 탄 어머니는 혼자 등산을 가면서 미안해하는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며 '구어'로써 말놀이를 하고, 자식은 그런 어머니를 향한 연민의 정서를 보여주는데…. 그 마음을 잘 헤아려보면 좋겠다."

- 1985년 등단이니 40년에 이르렀다. 시는 무엇이고,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

"특별한 성과도 없이 벌써 40년이 흘러버렸다. 글쎄, 시는 뭘까? 그림은 손이 불러내는 시, 노래는 목이 토해내는 시, 춤은 몸이 쓰는 시라고 할 수 있는데 시는 정작 시가 아니어서 시가 된다고 생각한다. 시는 그저 마음밭에서 절로 풀어지는 길이자 그 길 위에서 어느 한 사람의 순정한 영혼이 불러일으키는 한 줄기 바람일 뿐이다. 시를 쓴다고 생각하는 순간 좋은 시는 탄생하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 같은 것, 눈물 같은 것, 하소연 같은 것이 시가 아닐까.

그러니 어느 촌부의 말 한 대목이 시이기도 하고, 어느 노동자의 일기 한 대목이 시이기도 하다. 시라는 예술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무위이화(無爲而化)'라고 생각한다. 억지로 꾸미지 않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 내 안에서 나도 모르게 절로 터져 나오는 것, 그것이 시가 아닐까 싶다."

- 앞으로의 계획은. 100년 뒤 어떤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욕망을 죽은 뒤에까지 가져가고 싶진 않다. 그냥 한 시대를 열심히 살았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늘 피해가지 않고 부딪쳐서 돌파하려고 했다. 첫 시집 <지리산 갈대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빨치산 가족사를 전면에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고, 두 번째 시집인 장편서사시 <붉은 산 검은 피>로 군사정권 하에서 필화를 겪고 투옥까지 되었지만 우리 역사에 묻혀있던 한 사건인 화순항쟁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언론계나 학계의 연구로까지 이어지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번에 낸 여섯 번째 시집 <달리지馬> 또한 국내외 최초의 웹툰시집이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차원에서 시적 역량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최소한 '도전의 아이콘' 정도로는 기억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죽을 때까지 아이처럼, 청년처럼 살고 싶다. 아이처럼 살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닦고 또 닦아야 한다. 청년처럼 살기 위해선 긴장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달리지 마

오봉옥 (지은이), 솔출판사(2024)


태그:#오봉옥, #달리지馬, #붉은산검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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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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