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지난 4월 15일 "시민청으로부터 '퀴어문화축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문화의 힘' 토론회의 대관을 취소당했다"라고 밝혔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혐오를 배우는 공간으로서의 학교
학교는 일찍이 주변의 성소수자를 지우고, 혐오를 학습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청소년 트랜스젠더 8명을 인터뷰한 책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는 대한민국의 학교가 만드는 성별 이분법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그린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남녀학교, 남녀분반, 남녀교복을 맞닥뜨린다. 정상성의 범주에서 비껴난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은 필사적으로 자신을 숨기거나, 혹은 분투하다 지쳐 학교를 떠난다.
흑인 레즈비언 오드리 로드는 1979년, 미국에서 열린 제1회 유색인 레즈비언‧게이 전국대회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예를 들어, 우리 아이들이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계급 차별, 동성애 혐오, 자기혐오의 교훈을 배우는 곳은 어디입니까? 우리 학교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그나마도 아이들의 권리를 최소한도로 보장한 학생인권조례는 지금 전국의 시‧도 곳곳에서 존폐 위기에 처해있다.
행정 당국의 혐오 재생산과 '반대할 자유'?
이를 바로잡아야 할 행정 당국은 오히려 혐오를 재생산한다. 지난달 23일, 서울역사박물관이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측의 강연회 장소 대관을 불허하며 내세운 이유는 "사회적 갈등 유발이 우려되는 행사로 박물관 운영 및 관람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마치 게임 업체들이 '집게손'을 위시한 일부 유저들의 '페미 색출'에 동조하며 "불편을 끼쳐드린 데 사과한다"고 나선 것과 같은 이치다. 노동자의 정당한 노동권 대신, 일부 유저들의 '혐오할 권리'를 지켜준 것이나 다름 아니다.
서울시의 행보는 공적 기관의 조처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이는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주체를 '반동성애'를 표방하는 세력 대신 퀴어축제 조직위로 낙인 찍는 불합리를 낳는다. 이에 조직위는 답했다.
"설령 강연회를 방해하고자 혐오 세력이 소란을 피운다면, '박물관 운영 및 관람에 지장 초래'하는 것은 혐오세력이지, 조직위나 강연회 참여자가 아닙니다."
급기야는 퀴어를 '권력을 가진 다수'로 일컫고 '반 동성애 세력' 스스로를 소수자로 위치짓는 프레임마저 생겨났다. 보수 기독교계에서 자주 쓰는 표현 가운데 '성 독재'가 있다. 일련의 성소수자들로 말미암아 "자유민주주의의 기초인 양심과 신앙에 따라 반대할 자유를 박탈하는 성 독재"가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독재'의 사전적 정의는 '특정한 개인, 단체, 계급, 당파 따위가 어떤 분야에서 모든 권력을 차지하여 모든 일을 독단으로 처리함'이다. 성소수자들은 권력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존재'를 반대할 자유란 없다. 그러나 존재를 반대할 자유, 달리 말해 '혐오'라 불리는 일이 학교에서 광장까지 성소수자들의 전 생애에 걸쳐 자행되고 있다.
퀴어의 비가시화와 혐오 세력의 가시화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