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초 커뮤니티에선 생리공결이라는 제도 자체에 관한 오래된 의구심과 함께 생리통을 둘러싼 조롱과 무시도 함께 쏟아져 나온다. ⓒ pixabay
"없애는 것도 아니고 증명하라는데 왜 발작해?"
서울예대가 생리 공결 증빙서류로 '소변검사 실시 후 발급되는 진단서 및 진료확인서'를 요구해 여성들의 분노가 터져나온 데 대한 남초 커뮤니티의 반응이다. 예비군도 공결 인정 받으려면 교육훈련 필증으로 증빙을 하는데 '왜 난리냐'는 의견이다.
거기에 '주말 붙여 쉬겠다'며 생리공결을 금요일에 쓸지 월요일에 쓸지 고민하는 여성 학우도 봤다는 경험담까지 이어진다. 생리공결이라는 제도 자체에 관한 오래된 의구심과 함께 생리통을 둘러싼 조롱과 무시도 함께 쏟아져 나온다.
여학생들의 반발 끝에 결국 서울예대는 지난 21일 의학적 근거 부족을 이유로 소변 검사 의무화 철회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생리공결제가 오남용되고 있다는 기존 인식은 여전하다. 학교 측은 이날 교무처장 명의의 공지를 통해 "증빙서류 간소화 이후 5학기 동안 생리공결 사용이 급격히(약 5배) 증가했다"며 "일부 학생의 경우 생리통과 무관하게 생리공결을 통해 수업결손에 대한 보장을 받으려는 의심사례가 다수 발견되었고 학교는 이를 인지하면서도 묵인하는 것은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의 책무를 외면하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증빙 어려운 '고통'이라는 영역
생리공결은 생리통으로 일상에까지 지장을 겪는 여학생이 수업에 결석해도 출석을 인정해주는 제도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교육부에 권고하면서 2006년 3월부터 전국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도입됐다.
당시 인권위는 "여학생이 생리로 인해 결석하거나 수업을 받지 못할 경우 출결상황에 관하여 병결이나 병조퇴로 처리하는 것은 여학생에 대한 인권침해"라며 "여성의 건강권 및 모성보호 측면에서 적절한 사회적 배려를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제도 등을 보완할 것"을 권고했다. 대학의 경우 자율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생리공결을 도입한 학교도, 아닌 곳도 있다.
이렇듯 기반이 취약한 생리공결제의 입지와 달리, 예비군 공결은 법으로 보장된 사안이다. 예비군법 제10조의 2에 따르면 고등학교 이상의 학교의 장은 예비군대원으로 동원되거나 훈련을 받는 학생에 대하여 그 기간을 결석으로 처리하거나 그 동원이나 훈련을 이유로 불리하게 처우하지 못한다. 예비군 공결을 인정하지 않는 교수나 대학이 있다면 그 자체로 법 위반이기 때문에, 생리공결제와의 비교는 '밸붕'(밸런스 붕괴)이다.
생리공결은 서울예대 건에서 보듯 증빙 과정에서 지난한 다툼을 겪어야 한다. 여성의 통증을 무시하거나 사소하게 다뤄온 역사가 선행하기 때문이다. 생리공결과 달리 생리휴가는 근로기준법으로 보장되는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노동자 5명 중 1명만이 '쉽게 사용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2018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관리자 패널조사').
당장 나만 해도 만 9년 직장 생활을 하며 한 번도 생리 휴가를 써본 적이 없다. 회사에서 생리 휴가를 쓰는 사람을 못 봤거니와, 엄살이라고 볼까 저어한 탓이다. 딱 한 번, 여성 상사가 있을 때만 생리통을 이유로 2시간 이른 퇴근을 한 게 전부다.
올해부터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받은 입덧약도 비슷한 사례다. 임신한 여성 10명 중 7~8명은 입덧이라는 구역과 구토를 경험함에도, 여성들은 최대 한 달에 18만 원이라는 비싼 돈을 주고 입덧약을 먹어야 했다.
그러다 올 6월부터 건보 적용을 받아 5분의 1 가격에 약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합계출산율 0.7명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인정 받은 고통에 가깝다. 저출생 시대에 '모성보호'라는 이름으로도 입덧과 생리통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무화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생리통이란 생리를 하는 여성의 60%가 경험할 정도로 흔한 증상인 한편, 각자가 체감하는 고통의 정도는 증빙이 어렵다. 생리휴가도 무급이며, 생리공결 또한 결석으로 인한 수업 불참이라는 손해는 오롯이 당사자의 몫이다.
서울예대도 의학적 근거 부족을 자인했듯, 소변검사로는 생리 여부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게 애초 의료 전문가들의 견해였다. 대신에 학교 측은 '취지와 다르게 의심되는 주요 사례'를 열거하며 오는 2학기를 생리공결제 계도 기간으로 운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례로는 거주 지역과 다른 곳의 병원에서 증빙 서류를 발급받거나 연휴 기간 전후 사용량 급증, 친구와 함께 사용 등이 언급됐다. '휴가처럼 사용하는 행태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대학 당국의 결의가 느껴진다.
그러나 "생리공결을 쓰면 태도점수를 깎겠다"는 교수(지난해 조선대의 한 교수)가 존재하는 것이 한국 대학의 현 주소다. 이렇듯 공결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작동할 부정적 시선, 수업을 듣지 못해 발생하는 학습권에의 손해도 감안해야 하는 여학생들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빡빡한 잣대다. 이는 소변검사를 철회하는 대신 이중삼중의 감시망을 가동하겠다는 확실한 의사의 표명이다. 여자들로선 평생을 휘감아 온 "엄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 올가미가 더욱 강화되는 셈이다.
'공정감각'이 중요한 대학이라는 공간
▲ 서울예대가 지난 12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생리 공결 증빙서류 강화 안내. ⓒ 서울예술대학교홈페이지
▲ 논란이 일자 서울예대는 21일 '생리공결 서류제출 강화' 공지와 관련해 철회 입장을 밝혔다. ⓒ 서울예술대학교홈페이지
직장에서의 생리휴가보다, 대학에서의 생리공결 이슈가 훨씬 뜨거운 것은 눈여겨 볼 만한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젠더 이슈로 가장 뜨거운 전장이기 때문이다. 생리공결 이야기는 소셜 미디어와 여초, 남초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온라인 대학교 커뮤니티 플랫폼인 '에브리타임'에서 가장 핫한 주제다. 이른바 '이대남', '이대녀'가 같은 생활 공간 내에서 조우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조사 문항만 200여 개에 이르는 여론조사를 통해 '이대남 현상'을 분석한 책 <20대 남자>에서 20대 남자는 '젊은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으로 명명된다. 20대 남성은 기성 세대 남성처럼 여성에 대한 '역차별'이 아니라, 날 때부터 소수자였던 이가 느끼는 '차별'의 정서를 느낀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남녀가 면 대 면으로 마주쳤을 때 여성으로부터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갈등하는 상황에서 권력이 여자 편을 든다'는 분노다. 이것은 '불리'가 아니라 '불의'하다는 감각 때문이라고 책은 진단한다.
이것을 생리공결의 영역으로 가져오면, 반대하는 남성들 입장에서는 느슨한 증빙으로 악용될 여지가 많기 때문에 제도의 존재 자체가 여성의 편을 드는 것이다. 그들의 '공정 감각'에 위배되는 제도인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공정한가에 대해 잘 헤아려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예비군 공결과 생리공결을 비교해봐도 마찬가지다. <20대 남자>에서는 최정규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가 경제학의 시조인 애덤 스미스의 말을 빌려 '공정성'에 관해 이같이 설명한다.
"공정성을 판단하는 건 앞뒤 맥락을 섬세하게 고려해야 하는 작업이다. 역지사지도 해보고, 상대 입장에 서보고,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상상해야 한다. 이게 원래 뇌에 부담이 큰 작업이다."(116쪽)
이러한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일관되게 가혹한' 판단을 하면 되는 것이고, 그것이 '맥락이 제거된 공정'에의 집착으로 나타난다고 책은 설파한다. 이를 생리공결을 둘러싼 백래시에 적용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생리를 겪는 여성이 학교에 나와 수업을 들을 수 있을 만큼의 육체적·심리적 상태인가를 가늠하는 데, 생리를 겪지 않는 몸의 입장으로 '맥락이 제거된 일관되게 가혹한' 공정의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하는 것이다.
여성의 통증에 가장 먼저 귀 기울이던 '당국'의 퇴행
페미니즘 철학자인 케이트 만 코넬대 철학과 부교수가 쓴 책 <남성 특권>에는 '통증을 둘러싼 불신'이라는 장이 있다. 그는 연구자들의 분석을 인용, "여성의 통증 보고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심인성 질환으로 취급되거나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무시되었다"고 적었다.
그 사례로 갓 태어난 아이를 며칠 만에 잃었던 사회학자 트레시 맥밀런 코텀이 언급된다. 임신 4개월 차에 하혈을 겪은 코텀은 남편에게 직장으로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하며 이같이 말했다.
"당신이 흑인 여성이고, 직장 내 정치적 역학에 이미 연루된 몸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봐. 그런 몸이 하혈까지 하고 있고, 부어 있다면 그 상황이 얼마나 끔찍한지 상상해보라고."(119쪽)
코텀의 언설처럼 여성의 몸은 상습적으로 '정치적 역학'에 연루된다. 경찰이 살인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는 '36주 낙태 브이로그'를 찍은 여성의 몸이 그러하고, 출산 장려 대책으로 케겔운동과 댄스를 결합한 '국민댄조'를 요구받는 몸, 학교와 직장에서 생리공결과 휴가를 고민하는 몸이 그렇다.
여성의 사적인 고통을 묻고, 여성의 몸이 적극적으로 정치적 역학에 연루되는 데에 '당국'이라는 이름의 공권력이 앞장서고 있는 현실이 우려스럽다. 이러한 시선이 일부 악플과 남초 커뮤니티를 넘어 일종의 사회적 규준으로 작동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20여 년 전, 생리공결제 도입을 권고하며 여성들의 고통에 가장 먼저 귀 기울이는 '당국'이었던 인권위는 "성폭력이 신체 노출로 인한 충동으로 발생한다"는 그릇된 통념을 가진 인물을 수장 자리에 앉히려 하고 있다. 여성 인권을 비롯해 소수자 인권 신장에 그나마도 가장 너른 품을 가졌던, 가장 믿을 만한 '당국'의 퇴행 우려에 재차 눈길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