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람들이 사회적 참사라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언젠가 사고를 주로 취재하는 기자가 내게 이런 푸념을 털어놓았다. 그는 자신이 속한 진보성향매체의 독자 중에도 '이태원 참사는 길 가다가 죽은 사고인데 왜 국가가 책임져야 하냐'고 하는 이들이 있다며 '사람들이 자연재해와 사회적 참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고민을 말했다.

나는 물었다.

"사회라는 것 자체가 점차 흐릿해지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요?"

계급, 지역, 젠더, 정치적 견해의 차이 등으로 갈가리 찢겨 각기 저마다의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을 하나로 묶는 '사회'가 오늘날에도 정말로 존재하는가, 사회 자체가 없어지고 있다면 어떤 사고를 사회적 참사로 인식하는 감각 또한 약해질 수밖에 없지 않냐는 질문이었다.

저널리스트 김인정의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읽으면서 나는 몇 달 전에 나눈 그 대화를 떠올렸다. 누군가의 고난과 불행을 대면하는 직업을 가진 이로서, 그는 '우리'라는 공동체가 흐릿해지는 시대에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 책은 그런 고민과 치열한 성찰의 기록이다.

'논란'의 소셜미디어 영상... 방송뉴스는 얼마나 다른가
  
<고통 구경하는 사회> 표지.
 <고통 구경하는 사회> 표지.
ⓒ 웨일북

관련사진보기

 
이야기는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당시 소셜미디어에 유포된 영상들에서 시작한다. 사람들이 구조를 기다리며 손을 뻗는 모습, 심폐소생술을 받는 모습, 희생자의 얼굴을 천으로 덮어둔 모습 등 당시 상황을 적나라하게 담은 영상들이 널리 퍼졌다.

영상에 찍히지는 않았지만, 영상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 이들도 있었다. 누군가 바로 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이들, 이 참사를 흥밋거리로 여기며 '구경'한 이들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구경꾼들을 쉽게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의 영상이, 평소 언론사가 방송으로 내보내는 영상과 얼마나 비슷하고 얼마나 다른지를 묻는다. 사람들이 평소 방송 뉴스에서 봤던 영상을 '학습'한 것은 아닌지 반문한다. 이런 영상을 쓰지 않겠다는 언론사들의 결정에 동의하면서도 "일견 공범자가 손을 터는 듯한 위화감을 느꼈다"(28쪽)고 고백한다.

이태원 참사가 아니라도 '고통의 윤리적 재현'이 문제가 되는 현장은 무수히 많다. '볼 만한 그림'을 뽑아내기 쉽다는 이유로 날씨는 쉽게 뉴스가 되지만, 기후 위기는 기획 기사나 큰 현안이 아니면 뉴스가 되기 어렵다. 똑같은 산업재해 피해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병을 앓는 이들보다는 사고를 당해 '보이는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이 카메라를 자주 받는다.

그중에서도 마음에 무겁게 남은 사례는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당시 자주 보이던 '5.18 민주화운동과 비슷하다' '홍콩 시위대가 우리가 30여 년 전에 이미 쟁취한 민주주의를 부러워하고 있다' '<1987>과 <택시운전사>가 홍콩에서 인기'라는 류의 기사를 볼 때마다 왜인지 마음 한구석이 긁혔다며 이렇게 묻는다.
 
"해외 뉴스는 '우리'와 정서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연결되어야만 의미 있어지는 건지. 그렇다면 먼 거리에 있는, 통역에 실패한, 바다를 건너오지 못하는 고통은 어떤 포지션에서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어째서 타국의 시련을 전달할 때는 고통의 현지화가 필요한지." (175쪽)
 
나도 해외 뉴스를 보다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적이 있어서 이 대목에 오래 머물렀다. 가끔은 우리와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한 시도가 지나치다고 느꼈을 때 들었던, '그들을 너무 우리의 거울로만 여기는 것은 아닌가?'라고 의심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게 단지 조회수 장사, 매체들만의 문제일까

저자가 지향하는 '고통의 윤리적 재현'은 쉽지 않다. 개별 매체나 저널리스트의 잘못 때문만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기레기'라 아무리 욕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인 셈이다.
 
"지금 뉴스가 놓인 가정과 전제, 환경은 뉴스의 내용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슈를, 이목을 끄는 이미지를 써서, 화제가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다루는 데서 벗어나기가 쉽지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전반적인 경향성이 그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단순히 매체들이 조회수 장사에만 혈안이 되어있고 극히 비윤리적이라서가 아니다. 이 경향은 영향력을 확장하여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매체의 욕망,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효과적인 뉴스를 만들겠다는 기자의 선한 다짐들과도 분리하기 어렵다." (235쪽)
 
그러나 '우리'가 흐릿해진 세계, 내가 아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세계에서는 세계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선한 의도도 타인의 고통을 착취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누군가의 고통을 생생하게 보여주겠다는 의지는 그의 고통을 자극적인 흥밋거리로 만들 수 있고, 타국의 문제를 우리와 연결해서 설명하려는 시도는 사건이 발생한 현장의 맥락을 제거하기 일쑤다.
 
누군가의 고통을 생생하게 보여주겠다는 의지는, 그의 고통을 자극적인 흥밋거리로만 만들 수 있다(자료사진).
 누군가의 고통을 생생하게 보여주겠다는 의지는, 그의 고통을 자극적인 흥밋거리로만 만들 수 있다(자료사진).
ⓒ Unsplash(Kushagra Ke)

관련사진보기

 
이런 함정들을 피해 독자/시청자들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며 또 다른 고통을 줄이는 행동에 나서도록 만드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이 책 또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다만, "분열하고 또 분열해서 더 이상 우리라고 부를 만한 것이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266쪽)조차 여전히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저자는 "누군가의 애도가 우리의 애도가 되고 결국 우리를 바꾸어놓을 수 있"(262쪽)기를 희망하면서 끊임없이 타인의 고통을 응시한다.

고통을 통해 소통하는 법

이 책을 읽은 뒤, 소설가 위화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에 쓴 치과의사 시절의 일화가 생각났다.

마오쩌둥 시대에는 정부가 사람들에게 무료 예방주사를 놔줬는데, 주사기를 반복해서 쓰다 보니 주삿바늘 끝이 구부러지기 일쑤였다. 위화가 어느 공장에서 예방주사를 놨을 때 "노동자들의 팔뚝에 들어간 주삿바늘은 모두 작은 살점을 달고 나왔다. 그들은 극심한 고통을 참느라 이를 악물어야 했다. 심할 때는 신음 소리를 내기도 했다."(352쪽)

위화는 그 광경을 보면서도 '이런 주사기는 이전에도 사용했고, 모든 주삿바늘이 끝이 구부러져 있겠거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날 유치원을 찾아가 아이들에게 예방주사를 놨을 때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어린아이들은 살이 연해서 살점이 더 많이 달려 나왔고, 피도 더 많이 나왔다. 유치원은 온통 울음바다가 됐다.

그날 밤 위화는 주삿바늘의 구부러진 부분을 갈면서 생각한다. '나는 왜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기 전에 노동자들의 고통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내가 노동자들과 아이들에게 예방주사를 놓기 전에 먼저 구부러진 주삿바늘을 내 팔에 찔러보았더라면, 그리고 바늘에 달려 나온 나의 피와 살점을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아이들이 고통으로 울부짖기 전에, 노동자들이 신음하기 전에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을 거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는 당시의 경험을 이렇게 회상한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사람들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 뻗어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353쪽)
 
나도 고통에 내재한 윤리적 가능성을 믿는다. '우리'가 점차 흐릿해지는 시대에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일은 지난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일이 더욱 절실하다고 본다.

타인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해도 어렴풋하게라도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고 공감하는 일은 여전히 가능하며, 그런 시도야말로 무너져가는 '우리'라는 공동체를 복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우리가 고통의 구경꾼이 아니라 목격자이자 증언자, 나아가 연대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태그:#고통, #구경, #연대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2024.3 한겨레출판 편집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