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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귀 가는 아이
 기저귀 가는 아이
ⓒ 픽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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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똥냄새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아기 똥 기저귀 가는 것을 좋아하지 못한다. 첫째때도 그랬고, 둘째도도 마찬가지다. 

부성애가 부족하다고 말해도 좋다. 네가 그러고도 아빠냐 라고 손가락질해도 좋다. 당신은 글에서 수시로 똥을 메타포로 혹은 직접 소환으로 사용하면서 이중적이라고 비판해도 좋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똥은 똥이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똥을 사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똥의 본질은 상당수가 더러움이기 때문이다. 

젖먹이, 이유식까지는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그러려니 하고 상대할 수 있다. 냄새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맘때 아이들의 똥은 그저 식초 냄새랑 별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속세에 속한 어른의 식탁에 참여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제야 똥은 완성된다. 그 특유의 냄새를 소유하게 된다. 

너는 똥 안 싸냐 라고 물을 수 있겠다. 싼다. 모든 사람이 똥을 품고 산다. 그리고 각자의 시간에 맞게 그것들과 이별을 하고 또 만남을 가진다. 이것은 어쩌면 니체가 말한 '영원 회귀'와 같다. 

아무튼 똥을 싸도 그것을 오롯이 받아내는 것은 변기다. 즉, 나는 존재론적으로는 똥과 이별을 하나 실존으로는 그것과 마주하지 않는다. 행여나 마주하고 합장이라도 하면서 물이 내리는 사람을 발견한다면, 그 사람이나, 그걸 발견한 사람이나 둘 다 손잡고 가까운 정신과를 가봐야 한다. 

그러나 아이의 똥은 다르다. 그 실존과 날마다 마주쳐야 한다. 마주치는 것 넘어 그것을 만져야 한다. 그 근원지를 손으로 섬세하게 닦아줘야 한다. 아무리 숨을 참아도 비집고 들어오는 선명함을 온전히 거부할 수는 없다. 쉽게 말해, 그래 나 방금 손으로 아기 똥 닦아줬다 이 말이다. 

여기서 자아는 기가 막힌 상실에 빠진다. 때로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얻는다. 아아, 이 핏덩어리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어찌 이리 작은 구멍을 통해 이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뜨거움을 세상에 쏟아놓는단 말입니까. 나는 누구입니까. 이것과 언제까지 이런 맨손으로 맞서 싸워야 합니까. 나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아무리 물어도 똥 기저귀는 말이 없다. 

있는 힘껏 기저귀를 팽팽하게 똘똘 말아 달린 테이프로 싸매버리면 매번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 공수래공수거, 인생 참 별거 없다 생각이 든다. 쾌변의 맛은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에게 달콤한지 해맑게 웃는 아이를 보며 나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제발 엄마가 있을 때 똥 싸게 해주세요. 

어떻게 똥냄새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거지.

 

태그:#기저귀, #아이, #육아, #이래도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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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당연스럽게 '내'가 주체가 되어 글을 쓰지만, 어떤 순간에는 글이 '나'를 쓰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치 나도 '생명체'이지만, 글 역시 동족인 것 같아서, 꿈틀 거리며 살아있어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렇게 쓰여지는 나를, 그렇게 써지는 글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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