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키퍼 김정훈(전북현대)과 공격수 이영준(김천상무)이 위기의 황선홍호를 구해내며 'K리거'의 자존심을 드높였다.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23세 이하 축구대표팀은 4월19일(한국시각) 카타르 도하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 B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2-0으로 승리했다.
 
황선홍호는 지난 17일 아랍에미리트(UAE)와의 1차전에서 1-0으로 승리한데 이어 2연승을 기록하며 조별리그 최종전인 일본전 결과와 상관없이 조기에 8강 진출을 확정했다. 같은 조의 일본도 UAE를 2-0으로 제압하며 2연승을 내달리며 한국과 B조 공동 1위에 올랐다. 나란히 2패를 기록한 중국과 UAE는 탈락이 확정됐다.
 
승리는 했지만 이번에도 과정은 험난했다. 황선홍호는 지난 1차전에서도 UAE의 빗장수비에 내내 고전하다가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극장골로 겨우 신승한바 있다.
 
중국전은 오히려 UAE전보다 내용이 더 심각했다. 모두가 한국의 일방적인 낙승을 예상했으나 뚜껑을 열자 초반 경기력은 의외로 중국이 한국을 강하게 몰아붙이는 구도로 전개됐다. 슈팅 숫자는 13-9, 유효 슈팅은 5-3으로 모두 중국이 앞섰다.
 
한국은 초반부터 높은 점유율을 이어가며 중국을 압도하고도 수비진의 연이은 실수로 역습 찬스를 허용하며 여러 번 결정적인 위기를 맞이했다. 사실상 전반에만 2-3골은 먼저 내줬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로 하마터면 대참사가 될수도 있었던 경기력이었다.
 
황선홍호를 벼랑끝에서 구해낸 것은 골키퍼 김정훈이었다. 전반 15분 수비수 서명관이 위험지역에서 중국의 압박에 공을 빼앗겼고, 압두웨이가 박스 안까지 공을 몰고들어와 슈팅을 시도했다. 누가봐도 완벽한 일대일 찬스였으나 김정훈이 동물적인 순발력으로 압두웨이의 슈팅을 손끝으로 간신히 막아내면서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위기는 계속 이어졌다. 불과 2분뒤에는 타오 창룽, 전반 21분에는 압두웨이의  슈팅이 아슬아슬하게 골문을 벗어났다. 전반 24분에는 또다시 중국의 역습 상황에서 시에원넝의 왼발슈팅을 김정훈의 선방으로 막아냈다. 하나같이 실점으로 이어져도 이상하지않을 장면들이었다.
 
김정훈은 후반 12분에는 상대 공격을 막는 과정에서 손을 가격당하여 부상우려를 자아내기도 했지만, 테이핑을 하고 곧바로 경기에 복귀하는 투혼을 발휘하며 끝까지 골문을 지켰다. 후반 24분에는 또다시 수비진의 패스미스로 시에원넝에게 1대1 상황을 줄 뻔했으나 김정훈이 반사신경을 발휘하여 먼저 공을 잡아냈다.
 
김정훈은 이날 전후반 통틀어 중국에게 허용한 5개의 유효 슈팅을 모조리 틀어막는 활약을 선보였다. 김정훈의 선방쇼가 없었더라면 한국은 중국을 상대로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가는 경기가 되었을 것이고, 더 나아가 패배하여 8강진출조차 장담할수 없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올 수도 있었다.
 
한국은 든든한 김정훈의 활약 덕분에 결국 2경기 연속으로 상대에게 단 한 골도 허락하지 않는 클린시트를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중요한 국제대회, 그것도 단기전에서 골키퍼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 경기였다.
 
골키퍼 김정훈이 결코 뚫리지않는 견고한 '방패'였다면, 한국의 반격을 이끈 '창'은 공격수 이영준이었다. 지난 UAE전에서 추가시간 헤더로 결승골을 넣으며 황선홍호를 구해냈던 이영준은 중국전에서도 다시 한번 해결사로 나섰다.

전반 35분 강상윤이 수비 사이로 내준 공을 받은 이영준이 골문 앞에서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중국 골문에 꽂아 넣으며 분위기를 바꿨다. 선제 결승골이자 이영준의 2경기 연속골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이영준은 후반 24분에는 이태석의 도움을 받아 왼발로 마무리하며 멀티골까지 터뜨렸다. 독특하게도 2경기에서 3골을 넣는 동안 이영준은 머리, 왼발, 오른발 등 모두 각기다른 신체 부위를 활용해 골을 넣는 이색적인 기록도 세웠다.
 
김정훈과 이영준의 놀라운 활약상은 위기의 황선홍호를 구해냈을뿐 아니라 K리거들의 경쟁력을 증명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었다. 황선홍호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양현준, 배준호, 김지수 등 주력 유럽파 선수들의 차출이 대거 불발되며 전력에 큰 차질을 빚었다. 황 선홍 감독은 A대표팀 임시 감독직을 수행하느라 잠시 자리를 비우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기대했던 최상의 전력을 구축하는데 실패한 황선홍 감독은 결국 플랜B를 가동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이들이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진출을 장담할 수 없다며 대표팀의 불안한 전력에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끈끈한 조직력과 경험으로 무장한 황선홍호는 비록 위기도 있었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김정훈은 전북 현대 유소년 시절부터 유망주 골키퍼로 주목받았다. 김천 상무에서 병역을 마친 김정훈은 2023년부터 송범근이 일본 J리그로 이적하면서 전북의 주전 골키퍼 자리를 물려받았다. 전북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김정훈과 2026년까지 계약을 연장하면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대표팀과는 좀처럼 인연이 없었다.황선홍 감독의 눈에 들어 23세 이하 대표팀에 꾸준히 소집되었지만 한국축구가 3연패를 달성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넘버1 이광연에 이어 민성준에게도 밀려 단 한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3월 사우디아라비아에 열린 'WAFF 23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맹활약을 선보이며 마침내 연령대별 대표팀에서 최초로 넘버 1 수문장에 올라설 기회를 잡았다. 승부차기까지 치른 결승전에서 연이은 선방쇼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며 경쟁자들을 제치고 황선홍호의 주전 골키퍼로 낙점받았다. 그리고 김정훈은 중국전을 통하여 축구팬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키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영준은 지난 2023 FIFA 아르헨티나 U-20 월드컵에서 '김은중호'의 4강신화를 이끈 핵심 주역중 하나다. 이영준은 7경기에서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며 2골 1도움을 기록했고 대부분의 경기를 풀타임을 소화하는 투혼을 선보이며 한국축구의 차세대 타깃 스트라이커로 강렬한 존재감을 남겼다. 비록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지만, 23세 이하 아시안컵에서 황선홍호의 주전 공격수로 낙점되며 다시 기회를 잡았다. 
 
유럽파들이 대거 빠진 황선홍호의 공격진에서 사실상 유일한 정통 스트라이커인 이영준의 전술적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완벽한 경기력을 보여준 항저우 아시안게임과는 달리, 황선홍호는 이번 대회에서 좌우 측면 공격에 의한 크로스 일변도의 단조로운 공격과 수비불안이라는 약점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를 만들어낼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이영준의 탁월한 결정력 덕분이었다.
 
이영준은 팀이 기록한 3골을 모두 책임지며 유럽파의 빈 자리를 잘 메워냈다. 큰 키를 이용한 헤더와 제공권도 우수하지만, 공간을 찾아가들어는 스피디한 라인브레이킹이나 지능적인 오프더볼무브 능력까지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주민규-조규성 등을 잇는 차세대 공격수로서 이영준의 성장 가능성을 더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한국축구는 이번 대회에서 3위 안에 들어야 파리올림픽 본선에 출전할 수 있다. 4위는 아프리카 예선 4위팀인 기니와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한다. 8강진출이라는 1차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는 데 결정적인 수훈을 세운 이영준과 김정훈의 활약이 토너먼트까지 이어진다면, 황선홍호의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진출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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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준 김정훈 U23아시안컵 한일전 K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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