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역사상 세기의 '사제대결'이 시작된다. 사령탑과 에이스로 함께 원주산성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전창진 부산 KCC 감독과 김주성 원주 DB 감독이 챔피언결정전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나 피할 수 없는 한판승부를 펼치게 됐다.
 
김주성 감독이 이끄는 DB는 41승 13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2019-20시즌 이후 4년 만의 1위이자 봄농구 진출이었다. 전창진 감독의 KCC는 정규리그 30승 24패로 5위에 그쳤으나 6강플레이오프에서 4위 서울 SK에게 압도적인 3연승으로 업셋앤 스윕을 거두고 3년만에 4강 진출에 성공하며 DB를 만나게 됐다.
 
양팀의 사령탑인 김주성 감독과 전창진 감독은 서로의 농구인생을 이야기하는데 떼어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두 사람은 함께 DB(전신 TG-동부 시절 포함)의 최전성기를 이끌며 KBL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전창진 감독은 원주 DB에서 감독대행을 거쳐 2002-03시즌부터 구단의 4대 감독에 정식 선임되면서 본격적인 감독 경력을 시작했다. 200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전 감독은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어 당시 대학 최대어이던 김주성을 지명했다. '원주산성'의 신화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원주 DB는 전 감독과 김주성이 등장하기 이전만 해도 우승과 거리가 멀고 이렇다할 간판 스타도 없었던 그저그런 팀이었다. 하지만 2002-03시즌 DB는 정규리그 3위로 플레이오프에 올라 상위팀들을 연파하고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4강에 직행하지 못한 3위 팀이 우승을 차지한 것은 당시 KBL 최초였다.
 
이후로 DB의 승승장구는 멈추지 않았다. 전창진-김주성 콤비를 앞세운 DB는 2004-05시즌과 2007-08시즌에는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통합 우승을 달성하며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강호로 올라섰다. 이전까지 프로스포츠의 불모지로 꼽히던 강원 지역을 대표하는 최고의 명문구단으로 자리잡았다.
 
전 감독은 2008-09시즌을 끝으로 DB를 떠났고, 이후 부산 KT와 현 KCC 등에서도 성공적인 감독 경력을 이어갔다. 올시즌까지 정규리그 통산 560승으로 동갑내기 유재학(전 현대모비스, 724승) 감독에 이어 KBL 역대 감독 최다승 2위이자 단 두명뿐인 500승 감독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KBL 10개구단 사령탑을 통틀어 최고령-최장수 현역 감독이기도 하다.
 
김주성 감독은 2018년을 끝으로 현역생활을 마감할 때까지 오직 DB에서만 선수생활을 보낸 '원클럽맨'이자 KBL 역사상 최고의 프랜차이즈스타로 남으며 '영구결번'의 영예까지 받았다. 은퇴 후에도 곧바로 DB에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한 김주성 감독은 코치-감독대행을 거쳐 2023-24시즌부터 구단 역사상 첫 프랜차이즈 출신 감독에 선임되었고, 부임 첫해 정규리그 우승과 '올해의 감독상'을 석권하며 세우며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전창진-김주성의 사제 콤비가 해체된 이후로는 두 사람 모두 더 이상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DB의 마지막 챔프전 우승 시계는 16년전인 2007-08시즌을 끝으로 멈춰있다.

전창진 감독은 KT와 KCC에서 정규리그 우승은 각 1회씩 차지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는 하위팀에 업셋만 세 번이나 당하며 챔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2020-21시즌 KCC를 정규리그 1위로 이끌며 DB시절 이후 첫 챔프전까지 올랐지만 제러드 설린저를 앞세운 안양 정관장(당시 KGC)의 돌풍에 4전 전패로 무기력하게 무릎을 끓었다.
 
김주성 감독은 2008년 이후로는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준우승만 4번 추가하는데 그쳤다. 공교롭게도 김 감독이 은퇴한 이후 DB는 최근 5시즌간 4번이나 6강플레이오프에 탈락했고 유일하게 1위를 기록했던 2019-20시즌을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시즌이 플레이오프없이 조기종료되는 등 이래저래 운이 따르지 않으며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전창진과 김주성 감독 모두 어느 때보다 우승의 적기로 꼽히는 올시즌에 챔피언트로피가 간절하다.
 
그동안 KBL 역사상 왕년에 한팀에서 '감독과 선수'관계로 한솥밥을 먹었던 사령탑들의 플레이오프 맞대결은 전창진VS 김주성이 처음은 아니다. 2008-2009시즌 4강전에서 전창진(당시 DB) VS 허재(당시 KCC 감독), 2012-13시즌 챔피언결정전 유재학(당시 현대모비스)VS 문경은(당시 SK 감독), 2020-2021시즌 챔피언결정전 전창진(KCC)VS 김승기(당시 정관장) 등 총 9번의 사제대결이 있었다. 항상 스승의 포지션은 유재학 아니면 전창진이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에 비하여 전창진과 김주성 감독의 관계는 각각 정식 감독과 프로 선수로 같은 해 데뷔하여 KBL 최고의 명장과 슈퍼스타로 함께 성장해 나갔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둘다 진정한 '레전드급 사제'라는 수식어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정규리그 상대전적에서는 DB가 KCC를 5승 1패로 압도했다. DB는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여 4강에 직행하며 충분한 휴식까지 취했다. 올해 정규리그와 외국인 MVP를 수상한 이선 알바노와 디드릭 로슨 콤비에 강상재-김종규 등이 포진한 호화전력은 주전과 벤치 모두 빈틈이 없다는 평가다. 
 
다만 KCC도 정규리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팀이 되었다는 게 변수였다. 연이은 부상자 속출로 정상전력을 가동하지 못했던 KCC는 플레이오프 들어 송교창과 최준용이 복귀하며 드디어 '완전체' 전력을 구축했다. 6강플레이오프에서는 지난해 0대 3의 스윕패를 안겼던 서울 SK를 상대로 3연승-평균 21점차이로 가볍게 스윕하며 '슈퍼팀'의 면모를 과시했다. DB와의 4강 플레이오프 1차전까지 1주일의 휴식 시간을 벌며 이제 체력적인 면에서도 크게 밀리지 않게 됐다.
 
역대 플레이오프에서 정규리그 1위와 6강 진출팀(4-5위 승자)간의 4강 맞대결은 24승 2패로 정규리그 성적에 걸맞게 1위팀이 그야말로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정규리그 1위가 4강에서 탈락한 경우는 2008-2009시즌 울산 모비스(VS 서울 삼성)와 2010-2011시즌 부산 KT(VS 원주 DB) 두 팀 뿐이다. 대이변을 이끌었던 삼성과 DB는 모두 4위팀이었고, 5위가 1위팀을 꺾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한 경우는 아직 전무하다.
 
공교롭게도 전창진 감독은 플레이오프 사제대결에서 여러번 굴욕을 당했던 징크스가 있다. 각각 DB와 KT 사령탑이던 2008-09시즌과 2009-10시즌 4강전에서 허재의 KCC에게 2년연속으로, KCC 사령탑이던 2020-21시즌 챔프전에서는 김승기의 KGC에게 잇달아 업셋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특히 2010-11시즌에는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고도 4강플레이오프에서 자신의 휘하 코치 출신이었던 강동희가 이끄는 친정팀 DB에게 덜미를 잡히며 프로농구 역사상 단 2번뿐인 1위팀의 챔피언결정전진출 실패라는 흑역사도 썼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는 전창진 감독이 친정팀 DB과 제자 김주성 감독을 상대로 13년전 의 업셋을 설욕해야 하는 상황이다.
 
양팀의 대결은 15일 원주체육관에서 열리는 1차전에서 막을 올린다. 초보 감독의 통합우승신화를 노리는 김주성 감독과, 5위의 기적을 꿈꾸는 전창진 감독. 두 사제간의 역사적인 대결에서 과연 누가 웃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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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감독 전창진감독 원주DB 부산KCC 프로농구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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