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15 12:02최종 업데이트 24.04.1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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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 [편집자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민생토론회 후속 조치 2차, 경제분야 점검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미조직 근로자의 권익 증진은 정부가 직접 챙겨야 한다면서 고용노동부에 '미조직 근로자 지원과 설치'를 지시했습니다. 지난 4일 민생토론회 후속조치 점검회의 때 발언한 것인데, 당시 대통령 앞에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민생을 챙기는 정부'라는 푯말이 놓여 있었습니다. 

박정훈 기자님은 지난 편지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장이 컵라면을 먹는 걸 '도둑맞은 가난'이라고 하셨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조직 근로자 운운을 듣고 있자니 '도둑맞은 대표'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권력자들은 늘 노동자와 서민의 대표라고 우기지요. 

노동운동의 역사를 모르는 대통령  

2000년대에는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가 노동의 키워드였는데, 어는 순간 불안정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노조 밖 노동자가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산업구조가 바뀌고 기업의 노무관리 전략이 치밀해지면서 다양한 노동자가 등장한 게 가장 큰 원인일 겁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노조에 가입돼 있지 않은 미조직 노동자'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건 주목할 일입니다. 

정치인들이 인기를 얻기 위해 비판만 하는 동안, 노동조합은 비정규직과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했습니다. 제가 속해있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이 25만 명인데, 10만 명 이상이 비정규직입니다. 형태도 다양합니다. 공공부문/간접고용 비정규직, 무기계약직, 특수고용, 플랫폼노동자들입니다. 조직노동자를 비판하는 많은 이들은 이런 현실을 애써 삭제하려고 합니다. 대통령이 '미조직'을 언급한 것도 노조하는 비정규직노동자와 노조하지 않은 비정규직을 가르기 위해서입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 소속 조합원들이 2023년 8월 3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폭염대책 혁신'을 주문하고 있는 모습. ⓒ 박수림

 
노동운동의 역사를 생각해봅시다. 일제 강점기에 파업을 벌였던 수많은 노동자들은 처음엔 미조직노동자들이었습니다. 일제는 노조원들을 불순분자이자 폭도로 불렀습니다. 전태일의 친구였던 미조직노동자들은 청계피복노동조합을 조직해 조직노동자가 됐습니다. 1987년 여름, 노동자 대투쟁에 나섰던 노동자들은 회사관리자들의 손에 들린 바리캉으로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던 미조직노동자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압했던 화물노동자들과 건설노동자들도 처음부터 조직노동자가 아니었습니다. 무법천지인 화물과 건설현장에서 개별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걸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헌신적인 노동조합 활동으로 조직노동자가 된 그들은 산업의 기준을 하나둘씩 만들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들 노동자들을 탄압한 이후 건설현장과 화물현장은 개선되었습니까? 대통령이 자기 앞에 놓은 푯말처럼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미조직노동자들의 현실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요? 윤석열 대통령의 진심을 알 수는 없으나 용산에 앉아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노동현안에 대응할 수는 없습니다. 

노조 욕하더라도, 마지막 동아줄로 노조 찾아

그럼에도 정부와 대통령이 노조를 욕하는 건, 우리 사회 노조 혐오가 워낙 심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번 상상을 해보십시오. 직장에서는 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매일같이 벌어집니다. 직장상사의 부당한 지시, 알 수 없는 기준으로 이루어지는 계약해지와 근로조건의 차별은 근로기준법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설사 명백한 불법행위라 하더라도 혼자서 기업과 맞서 싸우기는 두려운 일입니다. 부당한 일들을 방치하고 있는 국가를 신뢰하기도 힘들지요. 그래서 결국엔 노동조합을 찾습니다. 


지난겨울 한국전기공사협회에서 미화일을 하던 노동자들도 같은 이유로 노동조합을 찾았습니다. 이들은 노동조합을 한다는 이유로 모두 계약해지를 당했습니다. 박광배 조합원은 60세 이상 고령 노동자들 모두 노동조합은 처음인데, 마지막 동아줄로 잡은 게 민주노조라고 했습니다.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그는 자기가 직접 지은 시를 읊었는데 어떤 글과 말보다 울림이 있어 옮겨 봅니다. 

"보는 사람마다 뭣하러 이짓을 하냐고 
 만나는 놈마다 정신이 나갔냐구 한다 
 나도 예전에는 이 나이에 내가 이럴줄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니들이 겪어봤냐고."  


겪어본 사람은 아는 법입니다. 

노동자 탄압으로 지지율 올린 정부는 노동자에 의해 무너질 것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2023년 2월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앞에서 ‘건설노조 탄압 규탄! 반노동 윤석열 정권 심판! 민주노총 결의대회’ 사전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 권우성

  
윤석열 대통령은 미조직 근로자 지원과 설치를 지시한 날 외국인 유학생과 결혼이민자를 가사육아 분야에 취업할 수 있도록 허용해 맞벌이 부부의 육아부담을 덜어주자고 했습니다. 가정 내에서 계약을 하면 최저임금법을 회피할 수 있다는 컨설팅까지 해줬습니다.

일국의 대통령이 국제기준에 위반되는 인종차별은 물론, 컨설팅업체 사장 같은 말을 내뱉는 것입니다. 정규직/비정규직, 노조/비노조원을 넘어 국적과 인종에 따른 차별을 대통령이 조장합니다. 경제적으로도 비합리적인 생각입니다. 돌봄 산업에 대한 임금차별은 구인난을 심화시킬 것입니다. 이를 이주노동자에 대한 임금차별로 해결한다면 내국인들이 일할 일자리가 사라져 실업이 늘어나게 됩니다. 대통령의 편견과 달리 이주노동자라 하더라도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으며 일을 할 노동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잘못된 해결책인 이주노동자 차별을 대통령은 왜 계속 언급하는 걸까요? '맞벌이 부부 육아부담 해결'이라는 선의로 포장해, 노동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겁니다. 총선에서 비슷한 일이 자주 벌어졌습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대기업 노동자 임금 인상을 자제하면 대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겠다고 하고,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조국식 사회주의'라고 반박했습니다. 대기업 임금을 줄여 중소기업 임금을 높일 수 있는 방안도 없이, 노동자 임금 동결시키면 세금 혜택주는 건 대기업 지원정책이지 사회주의라고 볼 수 없습니다.

조국식으로 이야기하면 서울대 교수였던 본인부터 대학교 비정규직 강사와 노동자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비례대표 TV토론에서 조국혁신당 강경숙 후보(비례 11번, 총선 결과 당선자 신분)는 나순자 녹색정의당 후보에게 노란봉투법이 민주노총 구제법 아니냐며 해명하라고 했지요. 노조법 2, 3조 개정은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는 정치인들이 사랑하는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를 위한 법입니다. 법안은 읽어보지 않고 노란봉투법 기사들만 검색해서 질의한 것일까요?

이렇게 조직노동에 대한 편견은 좌/우가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 조직노동자들은 민주주의 발전의 원동력이었습니다. 박근혜 탄핵과 퇴진 촛불은, 박근혜의 노동탄압에 맞선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과 민주노총의 민중총궐기 위에 타올랐습니다.

역사를 보면, 윤석열 정권의 위기도 노동에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정권이 노동을 고리로 국정운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주요한 투쟁의 장이 될 것입니다. 선거 이후 시급히 다뤄야 할 의제가 노동이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노동조합이 모두 옳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반성하고 성찰할 부분이 있습니다.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목소리가 아니라 미조직노동자가 더 많이 조직노동자가 될수록, 노조내에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질수록, 노동조합은 혁신하고 바뀝니다. 

제가 너무 '노동', '노동조합'만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잘 모르는 일에 대해서 말할 수도 없지요. 박정훈 기자님이 채워주시리라 믿습니다. 기자님은 이번 선거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선거 이후 시급히 다루어야 할 주요한 문제들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 삶이 바뀌려면 심판 이후의 가슴 뛰는 세계를 꿈꾸고 그려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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