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토미 오브 스캔들> 영화 리뷰를 본격 시작하기 전에 '폭력'이라는 주제에 관련된 비유 이야기를 한 편 들려드리겠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에 적잖이 유의미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스포일러 아님). 이 비유 이야기에는 폭력의 점증적 단계를 상징하는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에, 알아보기 쉽게 단계를 표기하겠다.
 
[1단계] A와 B는 친구 사이다. 두 사람은 평소 만나면 어깨를 툭툭 치고, 때로는 재미로 주먹을 주고받으며 (남들에겐 좀 과격해 보이지만) 자기들끼리는 재미있게 논다.

[2단계] 어느 날, 둘이 만나 여느 때처럼 놀다가, A가 평소보다 조금 세게 B의 얼굴을 밀쳤다. A에게 폭력의 의도가 있었던 건 결코 아니었다.

[3단계] 그러나 그날따라 코감기에 걸려있어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던 B가 휘청했다. 얼굴에 닿았던 A의 손이 매우 아프게 느껴졌다.

[4단계] 그래서 B는 "하지 마!"라고, 정색하고 말했다. 그러자 A는 "야, 웬 할리우드 연기냐? 아픈 척하기는…" 하면서 A는 B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웃었다. 그때 B는 다시 한 번 "하지 말랬지!" 하고는 A에게 일명 '등짝 스매싱'을 따끔하게 날렸다.

[5단계] A는 당황했다. A는 "아니, 너 왜 그래?" 하면서 대응 차원에서 B에게 '등짝 스매싱'을 돌려주었다.

[6단계] 한 차례씩 등짝 스매싱을 주고받던 A와 B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를 계속 때리게 되었다. 최종적으로는 A가 B의 밑에 깔려, 두들겨 맞는 상황까지 갔다. 주위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하여 두 사람은 같이 경찰서에 붙들려오게 되었다.

[7단계] A는 어디서부터 폭력이 일어났다고 주장할까? 반대로 B는 어느 단계에서부터 폭력이 일어났다고 주장할까? A와 B의 증언을 듣는 사람들은 몇 단계에서부터 폭력이 확실하다고 말할 것인가?
 
위와 같은 A와 B의 상호폭행 사건에서 만일 내가 판사라면 (혹은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 중 1인이라면)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이 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재판이라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서도 명확하게 가려질 수 있을까? <아나토미 오브 스캔들>을 관람하든 관람하지 않든, 시험삼아 한 번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 같다.
 
어디서부터가 성폭력일까
 
아나토미 오브 스캔들  (주요 등장인물들)

▲ 아나토미 오브 스캔들 (주요 등장인물들) ⓒ 넷플릭스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국 영화 <아나토미 오브 스캔들(Anatomy of a Scandal)>에서는 한 유명 정치인 제임스 화이트하우스를 둘러싼 폭력 사건이 두 건 묘사된다. 하나는 학창시절 즐겁게 놀던 중, 제임스가 친구 A&B를 찾아 옥상에 갔을 때, A가 B에게 "뛰어내려봐" 하고 말했는데 정말로 B가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사망하는 불상사가 일어난 것이다. 이때 제임스는 '우리 둘만 아는 일로 하자'고 A와 말을 맞춰 그 사건 자체가 수십 년간 두 사람의 비밀로만 남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스트레스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황에서 제임스는 올리비아(비서이자 불륜 상대여성)와 엘리베이터 안에서 격렬한 성관계를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그녀가 '김샌' 반응을 보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임스가 그대로 밀어붙인 사건이다. 나중에 올리비아가 성폭행 가해자로 제임스를 고발하여 제임스는 법정에 불려나가게 된다. 제임스는 이별 통보 때문에 화가 난 올리비아가 자신을 고소했다고 확신한다. 그는 '권력형 성범죄' 따위는 결코 없었다고 주장한다. 제임스 측 변호인은 제임스의 주장을 뼈대로 삼아 변론을 구성한다.  
 
그런데, 위의 두 사건을 절묘하게 이어주는 '숨겨진' 사건이 하나 더 있다.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친구(B)의 사건을 즉시 신고하지 않고 도망쳤던 바로 그날 발생한 사건이었다. 친구(B)의 죽음을 모르는 체하자고 A와 굳게 약속한 뒤 허둥지둥 도망친 제임스는 황급히 여자친구를 찾아간다. 여자친구에게 가던 중 한 여학생과 어둑어둑한 복도에서 우연히 부딪힌다. 그 여학생은 평소 눈인사 정도만 나누었을 뿐 통성명조차 제대로 한 적도 없었는데, 그 여학생은 당대 이른바 '킹카' 제임스를 내심 짝사랑하던 터였다.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로맨틱한 제스처도 선행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방금 전 친구(B)의 불의의 죽음으로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상황이었는데도, 제임스는 그 여학생과 성관계했(다고 생각했)다. 그 여학생 입장에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의 성폭행으로 느꼈고 충격과 후유증이 컸지만, 제임스에겐 한낱 접촉사고나 교통사고 수준에 지나지 않는 가벼운 해프닝이다. 
 
사건 당시 그 여학생은 성폭행 사건을 고발하지 못했다. 충격 때문일 수도 있고 성폭행 피해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반면 제임스는 자신의 도발적 성행위 도중 그 여학생이 '김샌' 반응을 보였다는 것 정도는 그래도 기억한다. 그때 그는 그 여학생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넷플릭스 번역을 그대로 옮긴다.
 
"꼴리게 해놓고 빼지 마(Don't be such a prick-tease)."

제임스의 엘리트주의적 자기중심성, 그 자기중심성 때문에 상대의 부정적 거부 표현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무감각성을 보여주는 그의 이 말은, 공교롭게도 엘리베이터 성행위(여성은 성폭력이라 생각했다) 사건에서도, 습관처럼 발설된 말이었다. 처음엔 아니었지만 어느 단계에 이르러 명백히 불편감과 불쾌감을 느낀 올리비아가 제임스에게 거절 반응(제임스 입장에선 '김샌' 반응)을 보였을 그때, 제임스가 내뱉은 말과 완전히 똑같은 것이다. 
 
그건 그렇고, 올리비아와의 힘겨운 법정 다툼 끝에, 엘리베이터 성폭행 혐의는 결국 무죄 판결이 났다. 배심원 만장일치 판결이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영국 사회에서도 성행위 도중 피해자가 '김샌' 반응을 보인 것 정도로는, 가해자의 성폭행 유죄가 거의 성립되지 않는다.

결코 자포자기하지 말고 기를 쓰고 저항해야만 유효 거절 반응으로 간주된다. 아닌 게 아니라, 성폭행 사건에서 가해 혐의자는 동의를 입증하기 어렵고(Only Yes Means Yes), 반대로 피해 당사자는 자신의 비동의를 명확히 입증하기 어렵다(No means No). 어차피 양쪽 다 힘들게 법정 다툼을 벌이게 되는데, 피해자 쪽이 조금 더 어려운 듯하다. 그냥 단순 폭행 사건(이 글 맨앞에서 비유로 예시한 이야기)에서도 폭행 피해 당사자는 상처, 진단서, 혹은 폭행당하는 영상 같은 게 없으면, 폭행 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 성폭행 사건도 그와 다르지 않다.
 
법정에서의 진실공방
 
<아나토미 오브 스캔들>에서도 성폭행 피해자 올리비아는 판사와 배심원들 앞에서 명확히 자신의 피해 사실을 입증하지 못했고 (실제 피해가 있었는지 어느 정도였는지는 차치하고라고)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일 자체를 힘들어했다. 결국 제임스가 승소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영화는 제임스 쪽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듯하다.
 
그러나, 영화는 말미에 가서 의미심장하게 다른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이제까지 남편의 외도를 간신히 용서하고, 법정에서의 성폭행 다툼을 잠잠히 지켜보던 소피(제임스의 아내)가 수십 년 전 제임스에게 '김샌' 표현으로 저항했지만 성폭행을 당했던 바로 그 여학생을 찾아낸 것이다. 현재 법관으로 활동중인 그 여학생에게, 소피는 비밀로 묻혀있는 사건을 폭로할 수 있는 중요 열쇠를 넘겨준다.
 
그렇다. 제임스에겐 아직 그 사건이 남아있다. 수사도 기소도 없어 영원히 비밀이 되었을지 모를 그 사건 (B의 옥상 투신사망 사건) 말이다. 공개적 거론과 본격적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기소도 재판도 없다면, 범죄도 처벌도 없다'고 자부하며 살아온 제임스의 '엘리트주의적 오만'이 법정에서 제대로 판단받을 수 있는 사건이다.
 
이제 이 글 앞에서 제기한 질문으로 다시금 되돌아가보자. 일상에서 사람들이 수없이 주고받는 행위에서 어디부터가 폭력인지 폭력이 아닌지 우리는 정말로 명확히 알 수 있는가? 폭력 판별이 누구에게나 명확하다면 재판이라는 것을 우리가 왜 하겠는가?

예를 들어, 지금 옥상 난간에 비틀비틀 서있는 친구에게 "뛰어내려봐"라고 말해서 그가 진짜 떨어져 죽었다면 폭력일까? 폭력이 아닐까? 또, 상대가 원하는 것 같아 시작은 했지만 어느 순간 상대 여성이 '김샌' 반응을 보일 때 멈추지 않고 밀어붙인 성적 행위는 성폭력일까? 성폭력이 아닐까? 간단히 답하기 어렵고 간단히 답해서도 안 되는 문제다. <아나토미 오브 스캔들>에서처럼 법정에서의 진실공방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 드라마 <아나토미 오브 스캔들>은 두 가지 법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해주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첫째는 '비동의강간' 법안의 필요성 즉 'No Means No Rule' 관련 법조항이 존재하는 것이 공정한 판단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에 관한 것이다.

둘째는 어떻게든 수사, 기소, 재판이 불가능하도록 만들 수만 있다면 (범죄도 처벌도 없을 테니) 나는 깨끗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엘리트주의적 오만에 대한 것이다.

이 두 주제는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영국사회 말고 우리 한국사회에서도 논쟁과 토론과 필요한 주제라고 말할 수 있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아나토미오브스캔들 넷플릭스 비동의강간 엘리트주의 법정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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