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21년 광릉 국립수목원을 필자와 함께 찾았을 때의 고 정우영 동국대 명예교수(왼쪽)  @김슬옹
▲ 고 정우영 교수(왼쪽)와 필자 2021년 광릉 국립수목원을 필자와 함께 찾았을 때의 고 정우영 동국대 명예교수(왼쪽) @김슬옹
ⓒ 김슬옹

관련사진보기

 
지난 3일 향년 70세로 별세하신 정우영 동국대 명예교수는 훈민정음과 훈민정음 해례본 연구의 몇 안 되는 권위자이셨다. 특히 2015년에 간송미술문화재단과 교보문고가 최초로 복간한 해례본의 자문을 맡아주셨고 2023년에 가온누리에서 간행한,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 동시 복간본과 필자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의 탄생과 역사>의 감수를 맡아주셨다.

개인적으로는 필자의 세 번째 박사학위 논문인 '<훈민정음> 해례본의 역주 방법론 정립에 관한 연구(2020, 연세대 국어국문과)' 심사위원으로 엄격히 지도 평가해 주셨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왜 훈민정음 해례본 연구자를 전임 교원으로 뽑지 않는지 한탄하셨다.

지난해 복간본 감수 원고를 출판사(가온누리)에 넘기신 직후 뇌종양이 발견되어 투병하시다가 끝내 1년을 못 넘기시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현재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훈민정음과 훈민정음 해례본, 언해본만을 연구하는 연구자는 거의 없다. 그래서 정 교수는 훈민정음 연구의 이정표 역할을 해왔다.

사실 지금 활동 중인 인문학 분야 교수나 학자 중에 평생을 한 주제만으로 연구에 몰입해 온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런데 고인께서는 1985년의 '15세기 국어의 초성 합용병서론(동국대)' 석사 논문부터 1996년의 '15세기 국어 문헌 자료의 표기법 연구(동국대)'의 박사논문, 그리고 일반 논문에 이르기까지 평생 훈민정음 관련 연구에만 몰두해 오셨다.

특히 2000년의 '훈민정음 한문본의 원문 복원에 대한 연구'와 2005년의 '훈민정음 언해본의 성립과 원본 재구' 연구 등 20여 년간 진행해온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 원본(초간본) 복원과 재구 연구는 이 분야의 탁월한 연구 업적이다. 해례본은 33장 66쪽 가운데 두 장 네 쪽이 진본이 아니라서 이에 대한 연구가 매우 중요하다. 언해본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이 세조 때 나온 것이라 세종 때 언해본 재구 문제도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훈민정음 연구의 핵심 분야를 개척하고 발전시킨 분이 정우영 교수님이시다.

고인은 놀러 다니는 것 자체를 잊고 지낼 정도로 오직 연구와 교육에만 전념해오셨다. 수많은 제자들을 늘 자상하고 꼼꼼하게 챙겨주시어 참스승이시기도 하셨던 고인의 고귀한 길을 짧은 글로 추모하는 것이 못내 죄송스럽다. 평생의 역작인 훈민정음 연구서 '훈민정음 해례본·언해본, 그리고 복원·표기법 연구' 교정(박이정 출판사) 중에 돌아가시어 더욱 안타깝다. 후학들이 유고집 출판으로 추모를 이어가야 한다. 고인은 공군 장교로 군복무한 것을 늘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창형 경주이씨 교감공파 대종회 회장, 최창수 아시아산업 대표 등 공군 장교 동기생들이 힘을 보태기로 했다.

유족은 부인 홍민숙 씨와 사이에 딸 정모은 씨가 있다. 빈소는 이대 서울병원 장례식장 12호실이다. 발인은 6일 오전 5시 30분, 장지는 용미리 추모의숲이다. ☎ 02-6986-4462

태그:#정우영교수, #훈민정음해례본, #훈민정음언해본, #훈민정음복간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훈민정음학과 세종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