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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합원들의 물가폭등-식대인상 요구 피케팅. 왼쪽부터 문유례(연세대분회), 김지민(홍익대분회), 이애경(이화여대분회).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합원들의 물가폭등-식대인상 요구 피케팅. 왼쪽부터 문유례(연세대분회), 김지민(홍익대분회), 이애경(이화여대분회).
ⓒ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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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덕대 청소노동자들이 오랜만에 외식을 했다. 장소가 어디냐면 5500원짜리 식사를 파는 학생식당이다. 평소 밥을 직접 지어먹는 노동자들이 외식을 한 이유는 모처럼 손님이 왔기 때문이다. 신임 총장의 임기 첫날 현장선전전에 힘을 보태기 위해 저 멀리 이화여대와 홍익대에서 동지들과 노동조합 간부들이 왔고,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서 식당을 찾았다.

요즘 여러 학교 조합원들이 모이면 학생식당 가격과 메뉴를 공유한다. 홍익대 학생식당 가격은 6500원이다. 학생들은 1100원 할인을 받는다. 본관 꼭대기층 교직원식당은 9000원이다. 이화여대 중심에 있고, 사람이 가장 붐비는 진선미관식당은 한끼에 6500원이다. 숙명여대 순헌관에 있는 구내식당 가격은 천원이 올라 6500원이 됐다. 이런 게 대화 주제가 된 이유는 요즘 우리가 학교와 용역업체에 식대 인상을 요구하며 투쟁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조합원들은 학생식당을 찾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월급이 적은 탓이다. 최저임금에 달라붙은 기본급, 식대 12만원, 설과 추석에 받는 상여금 30만원이 전부다. 청소노동을 하는 조합원의 경우 해뜨기 전 출근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아침밥과 점심밥 두끼를 먹거나 아침 간식과 점심밥을 먹어야만 일을 해낼 수 있다. 한끼로 따지면 2790원. 간식을 0.5끼로 보면 한끼에 3720원이다. 따뜻한 밥은 분수에 넘친다. 가족을 위해 써야 할 월급을 헐어야만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조합원들은 도시락을 싸거나 직접 밥상을 차린다.
   
홍익대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지상 16층 지하 6층짜리 초대형 정문(홍문관)의 밑바닥층에는 숨구멍마냥 붙은 아주 작은 창문이 있고, 이 안에는 열명의 청소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이곳에서 밥을 지어 먹는다. 건너편 전기, 온수 설비로 소음과 진동이 가득한 곳에서 시설노동자들이 일하고 쉬고 밥을 먹는다.

식대를 단 한푼도 올릴 수 없단 대학들

원청이자 진짜사장인 대학, 그리고 노동자와 대학 중간에 위치한 용역업체들은 식대를 단 한푼도 올릴 수 없다고 한다. '올해 시급을 270원(최저임금 인상분+30원) 올릴 테니 식대는 내년에 이야기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뒤에선 이런 이야기들이 들린다. '근로자들 임금이 적정수준으로 올라갔으니 요구안을 합리적으로 제시하라', '최저임금 올라간 것보다 더 올려 준다는데 왜 데모를 하나', '최저임금보다 더 받지 않나? 학교 계약직들은 여러분보다 월급이 적다' 등등. 그들은 매년 이렇게 우리를 '최저임금'으로 몰아세운다.

대학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지역에서부터 통폐합이 이뤄지고 있고, 학과 구조조정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학교법인들은 대학을 기업처럼 운영하고, 정부는 이런 대학의 기업화를 촉진할 뿐이다. '학교기업'에 제동을 걸고 민주적 개입을 시도하는 주체들은 갈수록 세가 줄고 있다. 대학은 각자도생의 정글이 됐고, 학교가 일방적으로 청소·경비노동자 TO를 줄여도 전혀 문제가 안 된다. 학교가 보안노동자들을 다단계 하도급으로 고용해도 아무런 이슈가 안 된다. 이게 우리에게 성큼, 이미 다가온 '대학의 미래'다.

동덕여대 같은 경우, 지난해 11월 청소용역업체가 갑자기 바뀌면서 조합원들의 월급이 깎였다. 근속이 단절된 탓에 연차휴가도 16개에서 11개로 5개나 줄었다.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하루 아침에 엄청난 불이익을 당했는데, 새로운 업체인 대한안전관리공사는 '미안한데 회사 사정상 어쩔 수 없다'고 하고, 원청인 동덕여대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삭감된 월급을 해결해 달라"고 외쳐도 "식대를 인상하라"며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동덕여대는 답이 없다. 

비정규직노동자에겐 인색한 학교의 다른 모습
 
고려대학교 총장의 2024년 2월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고려대학교 총장의 2024년 2월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 고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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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대 총장의 2023년 5월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숙명여대 총장의 2023년 5월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 숙명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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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는 이토록 인색한 학교가 다른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바로 총장님들이 식사를 하실 때이다. 이런 모습은 기관장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들여다보면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몇몇 대학 총장님들의 씀씀이를 보자. 먼저 고려대. 고려대 총장님은 2022년 5월 두 차례 발전기금 기부자 간담회를 진행했는데 6명 식대로 10만6천원, 5명 식대로 23만4천원을 썼다. 이듬해인 2023년 3월 대학발전 간담회에서는 6명이서 36만1천원을 사용했다. 그리고 올해 2월 두 차례 진행한 대학발전 논의 오찬 간담회에서는 8명이 119만9천원, 6명이 92만2200원을 썼다. 

홍익대는 2020년, 2021년 인당 1만5000원 수준이던 식대가 2023년에는 2만원 이상이 됐다. 서강대는 법인카드로 3만 원이 넘는 도시락을 시켜먹는다. 성신여대 총장님은 외부인사 업무 협력 논의를 하는데 2023년 3월 인당 2만9500원을 썼는데 일 년이 지난 2024년 2월에는 인당 5만8500원을 사용했다. 학교 돈을 최대한 절약하려는 대학 총장들의 씀씀이를 보더라도 물가와 식대는 확실히 올랐다.
   
식대만 올린 게 아니다. 다과비도 늘었다. 숙명여대 총장님은 2022년 2월 학내 현안 협의를 위해 앰버서더 서울호텔에서 진행한 티타임 때 인당 1만5000원을 썼는데, 2023년 5월 티타임은 롯데호텔에서 인당 3만 원 넘게 주문했다. 참고로 숙대는 식대도 대폭 늘었는데, 2022년 2월 인당 3만 원 수준에서 2023년 5월 인당 5만5천원을 넘겼다.
 
홍익대학교 보안노동자들의 점심도시락
 홍익대학교 보안노동자들의 점심도시락
ⓒ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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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님의 밥상 물가는 이렇게 인상됐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식대는 못 올리겠다는 학교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3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농산물 물가는 20.5% 올랐다. 농·축·수산물로 넓혀보면 물가는 11.7% 올랐다. 그런데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식대는 5년째 동결이다. 조합원들 간식메뉴에서 과일이 사라졌고, 도시락의 반찬 가짓수는 확 줄었다.

며칠 전 우리 조합원들이 도대체 어떻게 점심밥을 먹는지 확인한 적이 있다. 조합원들은 김밥, 즉석밥과 컵라면, 밥 한 공기와 참치 한 캔, 밥과 삶은 달걀, 밥과 김치로 점심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지금 식대로는 이렇게 먹어야 한다. 편의점 도시락을 절반만 먹어야 하고, 학생식당 밥도 절반만 먹어야 한다. 이렇게 먹어서는 빗자루를 들 수가 없다. 뙤약볕을 견디며 주차 유도를 할 수가 없다. 온종일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기계를 고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될 때까지 외칠 작정이다.

따뜻한 밥 먹고 싶다, 식대를 인상하라!
진짜사장 대학이 생활임금 보장하라!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직부장입니다.


태그:#청소노동자, #한끼2700원, #식대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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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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