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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우리 집 막내인 셋째 고양이 세돌이가 탄생 만 5년을 맞았다. 세돌이와 첫 만남은 이 표현을 쓸 수밖에 없다. '잊을 수 없는' 만남이라는 말을.

약 5년 전 4월,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밤이었다. 아파트 앞 상가에 주차된 트럭 바퀴 밑에서 손바닥보다 작은 고양이가 끊임없이 울고 있었다고 한다. 목소리의 근원지를 발견한 동생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결국 집으로 데리고 왔다. 퇴근 후 집에 와보니 눈을 뜨지도 못한 새끼고양이가 다리를 절뚝이고 있었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는지, 온기가 있으면 그 옆으로 와서 몸을 붙인다. 

첫 만남의 기억

당시 집에는 이미 9살, 10살이 된 고양이 두 마리가 살고 있다. 고양이를 더 키우는 것에 대해 가족들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큰 고양이 둘과 아기고양이를 서로 보호하며 키울 자신도 없었고, 아픈 길고양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이 되었다. 일단 아기고양이를 수건으로 닦아줬더니 생각보다 훨씬 하얀 고양이였다.  
 
다쳤을 때의 세돌이 모습
 다쳤을 때의 세돌이 모습
ⓒ 이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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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침이 되면 병원에 데리고 가기로 했다. 다음날 우리 가족은 회의나 약속을 한 듯이 눈을 떠서 첫인사로 똑같은 마음을 내보였다. 아기고양이가 질병이 있고 뒷다리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큰 고양이들에게서 잘 보호해 주며 함께 살아보자고. 그날 병원을 다녀오면서 아기고양이가 한국토종이니 그에 어울리는 이름을 짓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이 생기고 건강해지길 바라서인지 "굳세어라 세돌이~"라는 이름이 저절로 입에서 나왔다. 

바둑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이세돌과 이름이 같은 것도 마음에 들어 했다. 세돌이 이름은 정말 기도의 만트라(mantra: 진리 또는 힘이 있는 말로, 이런 단순한 어구를 반복하는 명상방법도 있다)가 되었을까. 세돌이는 눈도 못 뜨고 무척 작아서 태어난 지 2주 정도로 보였는데, 의사 선생님은 1달이 넘었다고 한다. X-ray를 찍어보니 배속은 구적물만 있고, 바이러스 등 건강상태가 심각했다. 하지만 세돌이는 긴 치료과정 중에도 항상 밝고 귀여웠다. 

특히 아버지가 8개월간 온전한 잠이라곤 반납한 채 세돌이를 24시간 돌봐주었기에 가능했다. 6시간마다 먹는 약과 8시간마다 주사를 놓아주는 것을 밤낮이 따로 없이 정확하게 챙기면서. 사실 의사 선생님은 생존여부도 장담하기 어려운데 검사와 수술을 시작하겠는지 물었다. 이미 결정하고 병원을 찾은 우리 가족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의사 선생님이 쉽지 않은 수술을 거듭하는 가운데, 세돌이는 약냄새가 가득한 설사로 연명하면서도 뽀얗게 자라주었다. 

"1800도 바뀌었다"는 수의사, 확 달라진 묘생... 웃음꽃도 10배

오래 치료하다 세돌이의 완치를 확정하는 날, 선생님은 "네 인생은 180도가 아니라, 1800도 바뀌었다."라고 했다. 묘생도 아닌 인생이라고, 게다가 1800도라니. 그 숫자가 뭔지 잠시 생각하다가 마음에 웃음꽃이 10배로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세상 모든 것이 감사했다. 

세돌이도 그 감사함을 표현해 줬다. 어릴 때 바이러스로 눈도 콧구멍도 막혀 있던 때가 많아서인지, 이제 덩치는 커졌어도 콧구멍이 좁다. 그 콧구멍 모양은 원형이 아닌 하트다. 세돌이는 얼굴 중간부터 앞다리와 복부 전체가 새하얗다. 어느 날 배를 쓰다듬다 복부 중앙에 하나 있는 노란 점을 보니 하트 모양이다.

세돌이는 뒷다리 양발목과 오른 무릎관절에 염증 성분검사와 수술을 반복했다. 치료 중에는 관절에 핀을 꽂은 채로, 회복하는 동안은 붕대를 두텁게 감고서 다리를 끌고 다녔다. 그 시절이 억울했는지, 요즘은 걷는가 싶으면 뛰고, 뛰는가 싶으면 날듯이 점프한다.

고양이와 사는 집은 얼핏 보면 드러나지 않지만 고양이와 집사 역할에 알맞은 동선으로 물건 등이 배치된다. 세돌이가 집에 들어오면서 이전의 질서는 완전히 흐트러졌다. 고양이 살림살이가 많이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물그릇과 밥그릇, 화장실과 잠자리, 휴식과 놀이공간이 활발하게 사용된다. 노령기로 접어들던 고양이들도 다시 청년이 된 듯 식사도 잘하고 긴장감도 생기며 활기가 생겼다. 
 
애교가 많은 세돌이
 애교가 많은 세돌이
ⓒ 이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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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도 처음에 세돌이가 아플 때는 경황이 없었지만, 전에는 몰랐던 활기를 느꼈다. 집안의 한층 밝고 상승된 분위기는 날마다 이어졌다. 나는 확실히 많이 웃고 있었다. 자주 웃으니, 신기하게도 집사인 내 면역력이 올라가는 것 같다. 

"아주 영리하고 다정해요. 애교도 정말 많아요."

주변 길고양이를 입양한 분마다 입을 모아 공통으로 하는 얘기다. 한 번이라도 인사를 나누거나 밥을 준 적이 있는 길고양이는 몇 년이 지나도 만나면 가던 길을 멈추어 윙크하며 인사한다. 세돌이를 포함해 주변 길고양이들의 꼬리를 보면 강렬한 행복을 눈으로도 느낄 수 있다. 직각으로 세우는 것도 모자라 꼬리 끝부분이 모자를 쓴 듯 살짝 더 구부려지면서 진동을 한다. 둥글게 올려 살랑살랑 흔드는 때와는 기쁨의 강도가 다르다.  

겨울을 감내한 힘이 봄을 만난다. 세돌이의 치료기간 내내 희망을 놓지 않고 해온 기도가 힘이 되었다. 이제 세돌이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는 날은 언제나 봄날이다. 세돌이는 매일 하트를 보여주며 얘기하는 것 같다. "우리 가족은 제가 지킬게요"라고.

큰 일교차와 거친 바람이 오가는 봄날이 아직 이어진다. 집 안팎의 고양이들을 만나게 된 뒤로 날씨가 거칠 때면 거처가 마땅치 않은 길가의 생명들을 더 생각하게 된다. 다쳤다가 구조된, 해마다 건강해지는 세돌이를 보니 더욱 그렇다.

어느덧 진달래와 벚꽃이 얼굴을 내밀더니 하루가 다르게 만개한다. 이 시기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에게 화사한 봄날이 되기를 바란다. 다쳤던 세돌이의 경우와 달리, 건강하고 예쁜 고양이와 강아지들이 길에서 구조돼 입양을 기다리고 있다(각종 동물 보호소만 검색해도 많은 자료가 나온다).

망설이다가 좋은 입양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입양을 생각해본 분들이라면, 이 봄에 행운과 행복을 얻어가길 권한다.

태그:#고양이, #반려동물, #인연, #봄,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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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마리의 고양이와 살며 일상을 발견하고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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