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원년 MVP에 선정됐던 '레전드 미들블로커' 정대영이 코트를 떠난다.

GS칼텍스 구단은 3일 공식 SNS를 통해 V리그 최고령 선수 정대영이 현역생활을 마감하고 은퇴를 한다고 발표했다. 작년 4월 1년3억 원의 조건에 GS칼텍스와 계약하며 9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온 정대영은 이번 시즌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22경기에서 53세트 동안 57득점을 올리는데 그쳤다. 5라운드 막판부터 후배들에게 기회를 양보하며 은퇴를 준비한 정대영은 지난 2월 18일 IBK기업은행 알토스와의 원정경기가 현역 마지막 경기가 됐다.

지난 1999년 지금은 폐교된 양백여상을 졸업하고 실업팀 현대건설에 입단한 정대영은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와 GS칼텍스,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를 거쳐 GS칼텍스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하기까지 햇수로 26년 동안 현역으로 활약했다. 정대영은 통산 4개의 우승반지와 함께 정규리그 MVP, 챔프전 MVP, 올스타전 MVP, 2012년 런던 올림픽 4강 등 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룬 채 후회 없이 코트와 작별했다.
 
 V리그의 레전드 미들블로커 정대영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현역생활을 마감한다.

V리그의 레전드 미들블로커 정대영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현역생활을 마감한다. ⓒ GS칼텍스 KIXX

 
뛰어난 실력에 리더십까지 겸비한 선수

현대건설은 1999년 세계청소년배구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기록한 주역이었던 양백여상의 정대영과 한일전산여고(현 한봄고)의 한유미(KBS N 스포츠 해설위원)를 영입했다. '이적생 3인방' 구민정, 강혜미, 장소연(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 감독)과 함께 단숨에 최강의 전력을 구축한 현대건설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겨울리그 5연패의 위업을 달성했고 정대영은 입단 초기부터 현대건설의 주전 미들블로커로 활약했다. 

하지만 V리그 출범을 앞두고 고참 선수들이 대거 은퇴를 하면서 정대영은 졸지에 팀을 짊어져야 할 에이스가 됐다. 정대영은 V리그 원년 MVP를 비롯해 리그 최고의 미들블로커로 맹활약했지만 '여제' 김연경이 입단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벽을 넘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정대영은 V리그에 FA제도가 생긴 2007년 이숙자 세터(정관장 레드스파크스 코치)와 함께 GS칼텍스로 이적했고 이적 첫 해 팀을 챔프전 우승으로 이끌었다.

2008-2009 시즌이 끝난 후 아이를 가진 정대영은 여자배구선수 최초로 '출산휴가'를 받고 2009-2010 시즌을 쉬었다(국내 프로스포츠 최초의 출산휴가는 2004년 WKBL의 전주원이었다). 정대영은 딸을 출산하고 2010년 복귀했지만 GS칼텍스는 정대영 복귀 후 두 시즌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정대영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해 양효진(현대건설),김희진(기업은행) 등 젊은 선수들을 잘 이끌며 한국의 4강신화에 기여했다.

GS칼텍스는 2011-2012 시즌을 앞두고 FA시장에서 한송이를 영입했고 2012-2013 시즌 1순위 신인 이소영(이상 정관장)이 합류하며 전력이 한층 강해졌다. 그리고 외국인 선수 베타니아 데 라 크루스가 활약한 2013-2014 시즌 두 번째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2011년부터 팀의 주장을 맡은 정대영은 GS 이적 후 두 번째 우승반지를 획득했지만 2014년 FA시장에서 도로공사로 이적하면서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도로공사는 2014년 FA시장에서 정대영과 이효희 세터(도로공사 코치)를 동시에 영입했고 큰 경기 경험이 풍부한 정대영은 이적하자마자 곧바로 팀의 주장 자리를 맡았다. 도로공사는 정대영이 가세한 2014-2015 시즌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고 박정아(페퍼저축은행)까지 합류한 2017-2018 시즌에는 프로 출범 후 처음으로 챔프전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을 누렸다. 정대영에게는 커리어 세 번째 챔프전 우승이었다. 

6201득점-1337블로킹 대기록 남기고 은퇴

실업배구 시절부터 활약한 정대영의 나이도 어느덧 30대 중반을 훌쩍 넘어갔고 한유미를 비롯해 김사니, 이효희, 김세영 등 또래 선수들도 하나,둘 유니폼을 벗고 현역생활을 마감했다. 하지만 정대영은 배유나와 함께 도로공사의 중앙을 든든히 지키며 매 시즌 블로킹 순위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비록 운동능력은 전성기에 비할 수 없었지만 상대의 움직임을 간파하는 정확한 블로킹 타이밍은 여전히 발군이었다.

정대영은 만 41세 시즌이었던 2022-2023 시즌에도 세트당 0.77개의 블로킹으로 블로킹 부문 3위에 올랐고 흥국생명과의 챔프전 5경기에서도 블로킹 7개와 함께 19득점을 올리며 도로공사의 '리버스 스윕'에 기여했다. 2022-2023 시즌 개인 통산 4번째 챔프전 우승을 차지한 정대영은 6번째  FA자격을 얻었고 도로공사에 잔류할 거란 예상을 깨고 1년 3억 원의 조건으로 9년 만에 GS칼텍스로 복귀했다.

2022-2023 시즌 블로킹 1위(세트당 0.83개) 한수지와 3위 정대영이 한 팀에서 만나면서 GS칼텍스는 약점으로 지적되던 높이를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친정으로 돌아온 정대영의 기량은 예전 같지 않았다. 실제로 지난 시즌 도로공사에서 정규리그부터 챔프전까지 43경기에 모두 출전해 풀타임을 소화했던 정대영은 이번 시즌 GS칼텍스에서 22경기에 출전해 단 53세트를 소화하는데 그쳤다.

사실 정대영에 이어 리그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미들블로커 한송이(1984년생)도 이번 시즌 박은진과 정호영에게 주전 자리를 내준 채 21경기에서 24득점을 올리는데 그쳤다. 지난 시즌 기업은행에서 303득점을 기록했던 김수지(1987년생) 역시 이번 시즌 흥국생명 이적 후 득점이 155점으로 크게 줄었다. 미들블로커가 상대적으로 체력적인 부담이 덜하다 해도 30대 중반 이상의 노장선수가 풀타임을 소화하기는 쉽지 않다는 뜻이다.

40대까지 주전으로 활약했던 정대영도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현역생활을 마감한다. 정대영은 작년 GS칼텍스 이적 후 제천여중에서 배구선수로 활약하는 딸 보민양과 V리그에서 함께 뛰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 바 있다. 물론 정대영이 은퇴를 하면서 V리그 최초로 모녀가 함께 뛰는 그림은 볼 수 없게 됐지만 V리그 통산 득점 4위(6201점), 블로킹 2위(1337개)라는 기록을 남긴 정대영은 V리그 역대 최고의 미들블로커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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