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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한국은행의 이슈노트 하나가 논쟁 거리를 제공했다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에는 돌봄서비스직 노동공급 부족 규모를 전망하면서 "돌봄서비스 부문의 인력난을 완화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되, 비용 부담을 낮추는 방안도 함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있다. 그러면서 ▲사적계약을 통해 이주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서 최저임금 적용을 피하는 방식 ▲이주노동자에 대한 고용허가제 대상 업종에 돌봄서비스업을 포함하고, 동 업종에 대한 최저임금을 상대적으로 낮게 설정하는 내용들이 언급되었다.

돌봄인력난 해결에 함께 제시된 최저임금 낮추기?
 
지난 3월 13일 진행된. 한국은행 규탄 돌봄/이주노동자 합동 기자회견. 이날 돌봄/이주노동자와 여러 노동시민사회가 함께했다.
 지난 3월 13일 진행된. 한국은행 규탄 돌봄/이주노동자 합동 기자회견. 이날 돌봄/이주노동자와 여러 노동시민사회가 함께했다.
ⓒ 공공운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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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계약과 고용허가제 확대 후 동 업종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적용의 내용은 최저임금을 낮추는 방안으로서 노동계의 반발을 샀다. 돌봄·이주노동자, 시민사회는 지난 3월 13일 한국은행 앞에서 합동으로 규탄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앞선 기사에서 살펴본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내용이 해결되지 않으면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자수는 늘어날 수 있겠지만 요양보호사 부족 사태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요양보호사 인력 확보 방안과 관련해서 처우개선이 이야기되는 것은 그저 나오는 말이 아니다. 쉽게 생각해서 일은 힘든데 보상이 적다면 누가 그 일에 선뜻 나서겠는가.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요양보호사 자격취득 건수(연도별 누적)는 2021년 220만6730명, 2022년 252만4912명, 2023년 280만7559명이다. 2022년은 31만8182명이 늘었고, 2023년은 28만2647명이 늘었다. 2년 동안 60만 명이 넘는 인원들이 신규로 자격을 취득했다(평균 30만 명 이상). 자격취득만 놓고 보면 금새 돌봄 부족이 해소되고도 남을만한 자격 취득 상황이지만 열악한 돌봄노동자의 노동조건과 환경을 생각해본다면 부족한 이유도 납득이 간다.

단순히 돌봄비용을 줄이기 위해 돌봄에 들어가는 비용을 낮추자는 이야기는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열악한 돌봄노동자의 상황을 두고 이를 금전적으로 더 악화시키는 주장은 돌봄노동의 처우개선은 물론이고 인력확보에도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 오히려 금전적 악화는 노동시장에서 돌봄노동의 경쟁력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돌봄·이주노동자 최저임금 차등적용 이야기,
서사원 소정근로시간 단축 논란 등 돌봄임금에 대한 일련의 흐름
 
 
지난 2월 5일 진행된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임금체계 개악 반대 기자회견
 지난 2월 5일 진행된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임금체계 개악 반대 기자회견
ⓒ 공공운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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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에 소속된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 보육교사 대다수가 가입한 공공운수노조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서사어ㅜㄴ은 현재 '고비용 저효율'을 혁신방향으로 삼고 기본급 조정을 골자로 한 소정근로시간 단축(8시간→6시간)내용이 담긴 임금체계를 내놓은 상태다.

사측이 노동조합에 보낸 시뮬레이션 자료에 의하면 기본급이 154만 원 정도다(교통비와 식대는 별도). 올해 최저임금 9860원으로 월 환산액(월 209시간 기준)은 206만740원이다. 소정근로시간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기본급만 놓고 놨을 때 한 사람의 한 달 월급이라고만 생각해본다면 매우 가혹한 액수다.

임금체계 변경 등과 관련해서 서사원의 혁신방향이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것(2023년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혁신 계획에 관한 Q&A)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 이슈노트에서 나온 돌봄·이주노동자 최저임금 차등적용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해당 문서에는 "임금 상승을 통해 내국인 종사자를 늘리는 것은 높은 비용 부담과 비효율적 자원 배분을 초래한다"라는 내용과 함께 '공적 돌봄서비스 확대'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도 공공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본고에서 제시된 방안들을 통해 돌봄서비스 비용을 낮추어 재정부담의 급격한 증가를 예방하는 조치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서사원의 혁신방향, 한국은행 이슈노트 내용 등을 볼 때 돌봄노동자 임금은 비용적 측면에서 언급되고 있다. 돌봄에 있어서 돌봄노동자의 임금은 매우 핵심적인 요소이지만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일련의 흐름들은 처우개선이 중심이 아니다.

서사원의 소정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기본급 단축, 돌봄·이주노동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적용 등 이 모든 것은 돌봄임금의 비용적 측면에서 봤을 때의 이야기지, 앞서 우리가 살펴본 처우개선이 필요하다는 결론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이야기다.

비용관점을 넘어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돌봄으로

사회복지사업법 제5조(인권존중 및 최대 봉사의 원칙)은 "이 법에 따라 복지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은 그 업무를 수행할 때에 사회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하여 인권을 존중하고 차별 없이 최대로 봉사하여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봉사"라는 단어의 뜻은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씀"이라는 뜻이다. "노동"으로서의 관점이 아닌 "봉사"의 개념이 되는 것이다.

사회복지사업과 관련한 법에, 특히 노동과 관련해서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것 자체가 씁쓸하다. 노동현장에서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지만, 노동에 있어서 봉사의 원칙이 제시되는 것은 옳다고 하기 어렵다. 사회복지현장을 지탱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봉사자도 아니고, 천사도 아니다. 노동자이다.

누군가의 일상을 유지하고 돌보는 일이 적성에 잘 맞고 사명감을 느낄 수 있지만 우리는 돌봄노동자들이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돌봄은 봉사가 아닌 비용이 지불되는 서비스다.

돌봄노동은 돌봄이라는 공공재를 생산하는 노동이다. 누군가의 일상을 유지하는 노동에 최소비용, 비용절감의 논리는 자본의 입장에서는 매력적일 수 있겠지만 노동시장에서 돌봄노동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고 돌봄인력 부족을 걱정하는 상황에서 시민의 삶을 유지하는 측면에서도 결코 긍정적이라고 볼 수 없다.

돌봄노동은 힘든 노동이다. 사람의 마음과 몸을 돌보는 일을 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고된 노동인지를 알 수 있다. 돌봄노동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 가치가 낮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돌봄노동에 대해서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

돌봄노동자의 처우개선을 비용부담의 관점이 아닌 인력확보 및 유인의 관점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는 돌봄노동자 부족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실마리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서사원은 '완전월급제'로 돌봄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돌봄노동자 부족사태를 시장에 해결하라고 맡길 수 없다. 더 위기가 오기 전에 정부와 지자체는 부족한 돌봄노동자 수요를 파악하고 사회서비스원과 같은 공공돌봄기관이 나서 안정된 노동조건으로 돌봄노동자들을 확보하는 것이 정책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다수의 돌봄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한 서사원의 사례는 우리 사회 미래의 돌봄문제 대비를 위한 모델로서 제시돼야 한다.

서사원 문제, 돌봄·이주노동 최저임금 차등적용 등 이러한 이슈들을 접하면 과연 정말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을지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작년 6월3일 진행된 2023년 돌봄노동자 한마당 중. 장애인활동지원현장의 요구를 전하는 공공운수노조 장애인활동지원지부 조합원들. 공공돌봄을 늘리고 돌봄임금을 올리는 것은 안정적인 돌봄현장을 위한 우리사회의 과제이다.
 작년 6월3일 진행된 2023년 돌봄노동자 한마당 중. 장애인활동지원현장의 요구를 전하는 공공운수노조 장애인활동지원지부 조합원들. 공공돌봄을 늘리고 돌봄임금을 올리는 것은 안정적인 돌봄현장을 위한 우리사회의 과제이다.
ⓒ 공공운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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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관점을 넘어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돌봄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공공돌봄이 필요하다. 이러한 공공돌봄은 시장이 할 수도, 비용을 절감해서도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보다 더욱 돌봄의 공공성이 강조되고 공적체계가 갖춰지는 것은 물론 돌봄노동자들이 지속가능한 노동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의 노동의 가치와 중요성만큼 노동조건과 처우가 개선되어야 한다. 우리가 돌봄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지불하게 되는 사회적 비용은 우리 사회 지속을 위한 투자가 될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조례 폐지 조례안을 발의한 시의원들, 앞으로 뽑힐 국회의원들, 한국은행은 이러한 점들을 명심했으면 한다.

[지난 기사]
돌봄 필요성은 커지는데... 돌봄노동자가 부족하다 https://omn.kr/284i6

덧붙이는 글 | - 해당 내용은 플랫폼C 홈페이지에도 같이 실립니다
- 코로나19시기부터 지금까지 서울시민들을 위해 돌봄을 제공해왔고, 이러한 글을 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어려운 상황에도 지치지 않고 목소리 내오고 있는 공공운수노조 소속의 서울시사회서비스원에 돌봄노동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완전월급제는 정당합니다.


태그:#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 #돌봄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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