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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대사전
▲ 이희승 편저, 국어대사전
ⓒ 민중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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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승은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1년 연상의 이정옥과 결혼했다. 부모님이 정해준 짝이었으나 부인이 1987년 12월 29일에 사망할 때까지 두 사람은 79년을 해로했다.

그가 고난에 찬 삶을 사는 동안 그 고난에 따른 뒷감당은 온통 부인의 몫이었다. 젊어서는 공부한다고 서울로 외국으로 떠나 있을 때도, 감옥에 들어가 고초를 겪을 때도 부인 홀로 자식을 키우고 부모를 봉양하면서 가정을 지켰다.

이희승과 이정옥이 부부로 맺어진 기간은 햇수로 79년이지만 두 사람이 한 집에서 함께 생활한 것은 그 절반도 못 된다. 부인은 고향을 지키고, 남편은 직장을 다니고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서로 헤어져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경성방직에서 6년을 근무했다. 몇 년 뒤 자리가 잡히자 아내를 불러 서울에서 새로 신접살림을 차렸으나, 채 1년도 못 되어 이 씨는 살림을 파산하고 아내를 고향으로 내려보냈다. 전문학교에서 더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다 지난 일이지만 그때 저 양반이 너무 야속했지요. 소박데기마냥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때 얼마나 마음이 쓰렸던지…."

지난 일이라도 부인은 아직 그때의 이별이 가슴에 남아 있나 보다.

"암, 그럴 만도 하지. 명색이 취직이랍시고 했고, 소꿉살림이나마 차렸는데, 모든 것을 다 끊어 버리고 다시 헤어져 살게 됐으니 내 입장으로는 배우고 싶은 일념에서 대용단을 내린 셈이지." (주석 1)

그 당시의 개화 청년들이 본처와 이혼하고 신여성과 재혼할 때도 이희승은 유행을 따르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생이 되었으리라고 생각되는 것은, 왜정시대에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경남도 홍원경찰서와 함흥형무소에 만 3년을 신세지고 있는 동안 위로 연만하신 양친과, 아래로 아직 미거하기 짝이 없는 어린 남매를 데리고, 입에 거미줄을 안 치도록 하기에, 갖은 고초를 다 맛본 모양이었다.

때는 마침 미일전쟁 말기라, 식량난이 극도로 심하여, 반출 금지의 눈을 피하여 가며, 시골에서 쥐 내듯 한 말씩 닷 되씩 쌀 얻어 나르기에, 노상 길에 나서서 세월을 보냈다는 이야기였다.

6·25 때는 거의 나와 고초를 함께 겪었지마는, 1·4 후퇴 무렵에는 가족을 한강만 겨우 건너다 내버려 두고 나 혼자 부산에 가 있는 동안 폭격을 당하여, 장단까지 쫓겨 다니던 이야기.

이 두 가지 사건은 아내의 일생 동안 가장 뼈저린 인상으로 남을 것이다. 양친은 매우 엄격하신 데다가, 내 성미 또한 여간 괴팍스러운 것이 아니어서, 몸으로나 마음으로나 별로 편한 날은 없었을 것이요. 인생의 향락이라는 것과는 이승과 저승만큼의 거리가 있었을 것이다. (주석 2)

이희승 부부는 1927년 1월에 장남 교웅, 1930년 3월에 장녀 교순을 낳았다. 교웅은 아버지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불령선인으로 낙인 찍히면서 제대로 진학할 수가 없었다. 경성교보를 졸업하고 경성제대 예과에 응시하여 필기시험에 합격했으나 구술시험에서 '비국민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두 차례나 낙방했다. 그러다가 해방이 된 뒤 졸업 2년 만에 서울의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요즈음은 젊은 부부들은 물론이요 나잇살이나 든 사람들도 부부 동반하여 영화 구경을 간다거나, 휴가 때 함께 여행을 즐긴다거나 혹은 가끔 외식을 한다거나 함으로써 인생을 즐긴다지만, 우리 부부는 그런 일들이란 먼 나라의 풍습이나 되는 듯 생경하였다. 다만 한 가지 자위한다면 우리는 아직 부부싸움이란 것을 해 본 일이 없다. 그것 역시 내자가 온갖 어려움을 잘 참아 준 덕일 터이니 그마저도 내자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할 일이다.

나의 결혼생활이 내자에게 고생이나 시키고 덤덤하기 짝이 없는 것인데도 결혼주례를 서 달라는 요청은 무척이나 많았다. 나는 일생 동안 줄잡아 1천여 쌍의 주례를 섰다. (주석 3)


주석
1> <한글학자 이희승 박사 부부>, <주간여성>, 1975년 6월 29일.
2> 이희승, <부부생활 50년기>, <한 개의 돌이로다>, 269~270쪽.
3> <회고록>, 239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딸깍발이 선비 이희승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이희승, #이희승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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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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