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대전 은행강도 살인사건'은 총기로 무장한 2인조 복면강도가 은행 현금 수송 차량을 습격하여 현금을 강탈해가고 인명피해까지 발생시킨 사건이다. 그 과정에서 현금수송업무를 맡고 있던 무고한 직원 한 사람이 안타깝게 피살 당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던 총기범죄에, 백주대낮에 시내 번화가 한복판에서 일어난 초유의 은행강도 사건은 전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오랫동안 미제로 남아있던 이 사건은 무려 21년이 흘러서야 진범들이 체포되어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알고보니 두 범인은 어릴때부터 오랫동안 우정을 쌓아온 절친 관계였다. 한때는 죽마고우였던 두 사람은 막상 체포된 후에는 어떻게든 처벌을 피하기 위하여 서로에게 죄를 떠넘기려는 추태까지 부렸다. 과연 20여 년간 밝혀지지 못했던 사건의 씁쓸한 진상은 무엇이었을까.
 
3월 28일 방송된 SBS 실화 스토리텔링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우정의 딜레마, 친구 혹은 악연'편을 통하여 대전 은행강도 살인사건의 진실을 조명했다.
 
2001년 12월 21일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동의 한 은행 지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은행 직원들과 청원경찰 등 세 사람은 평소와 다름없이 현금 수송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현금 6억 원과 수표 등이 담긴 특수가방을 들고 둔산지점의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차량 한 대가 갑자기 급하게 정차하더니, 그 안에서 복면을 착용한 2인조 강도들이 나타나 총구를 겨누며 현금가방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이들은 실탄이 든 총을 발사하며 직원들을 위협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범인들이 발사한 탄환에 현금출납 담당자였던 은행 과장이 피격되어 즉사하고 말았다. 범인들은 현금 3억 원과 수표가 든 가방을 들고 도주했다.
 
대낮에 번화가에서 벌어진 총기강도사건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나서며 차량수배 및 검문검색을 강화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미비했던 CCTV 등으로 인하여 추적이 쉽지 않았다.
 
경찰은 추적 9시간 만에 은행에서 불과 170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범행차량을 발견했지만 범인들은 이미 도주한 뒤였다.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범인들은 처음부터 범행 차량을 오래 이용할 생각이 없었다. 또한 해당 차량은 이미 도난신고가 되어있던 차량으로 밝혀지며 범인 추적은 난항에 부딪혔다.
 
한편 범인들의 총격으로 사망한 과장의 시신에서 검출된 총알을 분석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해당 총알이 경찰이나 군 간부들이 주로 사용하는 리볼버 38구경 전용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 경찰용 총기와 탄환이 강도범죄에 이용되었다는 사실에 경찰은 발칵 뒤집혔다.
 
은행강도 사건이 벌어지기 두 달 전인 10월 14일, 범인들은 먼저 차량 한 대를 절도한 뒤 다음날 새벽에는 해당 차량을 이용하여 경찰을 공격하여 부상을 입히고 그가 가지고 있는 총기를 탈취했다. 범인들은 이후로도 몇 차례의 차량 절도를 거듭했고, 마지막이자 최종목표였던 은행 현금 수송차 강도 및 살인을 저지르고 잠적한 것이었다.
 
당시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고 높은 현상금까지 걸었지만 범인들의 윤곽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은 해결되지 못한 미제로 남았고 수사팀은 해체됐다.

그런데 무려 14년이 흐른 2015년, 대전경찰청에 미제사건 전담팀이 만들어지면서 둔산동 은행 강도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시작된다. 당시와 달라진 점은 과학수사가 발전하면서 DNA 검출을 통한 추적이 가능해졌다는 것. 수사팀은 범행 차량에서 수거된 마스크와 손수건에서 검출된 DNA 유전자 정보가 2015년 충북 경찰의 한 불법 게임장 검거 당시 나온 범인의 DNA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수사팀은 무려 4년 8개월간에 걸쳐 용의자 리스트를 추리고 DNA를 일일이 대조하는 인고의 작업을 진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사는 제자리걸음이었다. 고민하던 수사팀은 경찰에 협조한 '정보원'이었던 게임장 종업원을 통하여 혹시 리스트에 빠진 인물이 있는지 확인했다. 종업원은 한참 생각한 끝에 게임장에서 아주 잠깐 일을 하다가 떠난 한 사람을 떠올렸다.
 
해당 인물의 이름은 '이정학', 수사팀은 이정학이 과거 은행강도사건 속 몽타주의 인물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또한 이정학의 범죄 이력을 조사하던중 과거에 차량 절도 기록이 있다는 것도 파악했다. 수사팀은 잠복 끝에 이정학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가 버린 물건을 통하여 DNA를 국과수에 의뢰한 결과, 그의 DNA가 범인과 100%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오랫동안 미궁에 빠져있던 미제사건의 범인이 무려 21년 만에 그 정체가 드러난 것이다.
 
경찰은 치밀한 준비 끝에 마침내 이정학을 체포했다. 그런데 당시 이정학의 반응은 의외로 경찰들을 보자마자 "언젠가 이날이 올 줄 알았다"라며 저항도 하지 않고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정학과 함께 범행을 저지른 공범이 아직 남아있었다. 이정학의 체포 사실이 언론에 먼저 알려진다면 공범이 잠적할 가능성도 있었다. 경찰은 이정학을 회유하여 공범의 정체를 밝힐 것을 권유했다.
 
고민 끝에 이정학이 밝힌 공범의 이름은 그의 오랜 베스트 프렌드였다는 '이승만'이라는 인물이었다. 놀랍게도 이정학은 이승만의 주민등록번호까지도 기억하며 수사에 도움을 줬다. 이정학과 이승만을 수사한 담당 형사는 "친한 친구사이인 듯하면서 악연, 만나면 안 될 사이"였다는 의미심장한 표현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했다.
 
이정학의 적극적인 협조로 경찰은 강원도의 한 카지노 인근 찜질방에서 이승만을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놀랍게도 경찰에 붙잡힌 두 범인의 현재 얼굴은 과거 경찰이 작성한 몽타주와 거의 일치했다. 21년, 날짜로는 무려 7533일 만에 대전 은행강도 미제사건의 범인이 체포되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그러나 사건은 이제부터가 또다른 시작이었다. 두 사람의 차이는 직접 증거가 발견된 이정학과 달리, 이승만은 공범 이정학의 자백 외에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순순히 범행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죄를 뜻을 밝힌 이정학과 달리, 이승만은 모든 혐의를 부인했고 이정학이 자백했다는 사실도 믿지 않았다. 이에 경찰은 사건의 온전한 진실을 밝히기 위하여 범인들과 치열한 '심리게임'을 펼쳐야했다.
 
형사들은 이승만이 몇몇 거친 단어들을 자주 쓰고 민감하다는 것에 주목했다. 담당 형사는 범행을 부인하고 수사에 비협조적인 이승만에게 일부러 '양아치'라는 표현을 쓰며 자극했다.

그러자 정색한 이승만의 얼굴이 이제껏 보지 못한 표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흥분한 이승만은 "두 친구가 금덩어리를 훔친 걸 무덤까지도 이야기 안 하기로 약속했다. 그걸 이야기한 놈이 양아치인가, 이야기 안 한 내가 양아치인가"라고 따졌다. 이는 사실상의 범행 자백이었다.

이어 경찰은 영상통화로 두 사람의 대질조사를 단행했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게된 두 사람은 이승만이 먼저 이정학에게 범행을 다 이야기했는지 확인했고, 이정학은 자백을 인정했다. 그제야 이승만도 포기하고 결국 모든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
 
두 사람의 21년 우정을 둘러싼 씁쓸한 진실도 드러났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동등한 친구관계라기보다는 이정학은 이승만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만 하는 '부하같은 친구'에 가까웠다고. 두 사람은 젊은 시절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은 이후 여러 가지 불법과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으로 생계를 연명했다.
 
2000년 여름, 이정학이 출소한 뒤에 은행강도를 모의했던 두 사람은 현금을 강탈하는 과정에서 경찰관의 총기를 탈취하고 부상을 입힌 데 이어, 무고한 은행직원을 살해하는 범행까지 저질렀다. 탈취한 돈은 이승만이 2억 1000만 원을, 이정학이 9000만 원을 가져가기로 배분한 것도 두 사람의 불평등한 친구관계를 보여주는 일면이다. 두 사람은 범행을 마친 후 '이 일은 영원히 죽을 때까지 둘만의 비밀로 하자'고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아직 하나가 남아있었다. 과연 직원에게 총을 쏴서 살해한 인물은 누구였을까. 이들은 모두 서로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떠넘겼다. 살인한 사람이 더 높은 형량을 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더 이상 두 사람에게는 친구도 의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두 사람의 이력을 토대로 총격의 범인을 이승만으로 판단하고 무기징역을 선언했다. 그러자 이번엔 이승만의 폭로전이 시작됐다.

이승만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이정학과의 또다른 범죄가 있었음을 자백했다. 대전은행강도 사건 1년 후, 2002년 9월 전주에파출소에서 벌어진 '백 경사 사망사건'도 자신들이 벌인 일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 사건 역시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미제로 남아있던 사건이었다.
 
이승만은 이정학의 부탁으로 탈취한 총기는 숨기고 실탄은 분리해서 버렸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승만의 진술에 따라 그가 머물던 울산의 한 여관에서 백 경사로부터 탈취한 총기를 증거물로 확보했다.
 
이승만의 폭로전은 이정학의 밀고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자, 이대로 혼자 죽을 수 없다는 '물귀신' 작전이었다. 두 사람은 다시금 서로가 살인을 저질렀다며 진흙탕 공방전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이 경쟁적으로 서로의 여죄를 폭로하면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미제사건들의 진실이 속속들이 밝혀졌다. 결국 두 사람은 대전은행강도사건의 진범으로 대법원에서 사이좋게 무기징역이 최종확정됐다.
 
이정학과 이승만의 동반 몰락은 '죄수의 딜레마' 이론의 전형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공범들이 협동하여 둘 다 자백을 안 하면 가벼운 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한쪽이 배신하여 자백을 하면 다른 한쪽만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 이 상황에서 죄수들은 서로 손해를 안 보기 위하여 둘다 자백을 해버려서 모두에게 불리한 결과를 받게 된다는 이론이다. 그들은 친구인 서로를 탓했지만 결국 죄를 저지른 가장 큰 책임은 바로 '자신'의 선택이었다.
 
친구에서 공범, 그리고 원수가 되어버린 베스트 프렌드의 못난 우정 때문에 애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귀한 목숨까지 잃어야 했다. 이정학과 이승만의 최종판결 당시 판사는 "피해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직무를 충실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더욱 비극적이다. 약 20년 만에 이해할 수 있게 된 사건의 진실에는, 사망한 피해자가 그 순간 얼마나 정의롭고 고결하게 행동했는지를 포함한다"고 언급하며 사명감있게 최선을 다한 피해자의 희생을 기린 대목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꼬꼬무 대전은행강도살인 이정학 이승만 죄수의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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