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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4월 13일에 여든셋으로 세상을 떠난 가수 현인. 그 22주기를 맞아 현인의 전성기 10년 동안 발표된 대표작들을 한데 모은 특별한 선집 음반이 제작되었다. 1949년 데뷔곡 <신라의 달밤>부터 1950년대 말 발표 곡 <체리 핑크 맘보>에 이르기까지, 수록 작품 모두가 그 당시 유성기음반 원음 그대로 복각되어 실렸다.

옛가요사랑모임 유정천리에서 창립 15주년을 맞아 특별히 제작한 이번 음반은, 우선 현인이라는 당대 최고 가수의 진면목을 충실히 담아냈다. 뿐만 아니라 광복, 분단과 전쟁, 전후 재건으로 이어지는 1940~1950년대 시대상의 흐름도 수록 작품들의 이면을 통해 살필 수 있다.
 
<타계 22년 기념 현인 대표작 22곡 선집> CD 앞뒷면
 <타계 22년 기념 현인 대표작 22곡 선집> CD 앞뒷면
ⓒ 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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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독특한 창법을 구사했던 그 옛날 가수로만 현인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스물네 살 때인 1943년 성보악극대에서 국내 무대 활동을 시작할 당시, 그는 노래를 부르는 한편 때때로 악극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1938년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을 가 도쿄음악학교에서 3년 동안 공부한 현인의 이력은, 비록 중퇴라고는 하나 당시 대중음악 가수로서는 분명 보기 드문 예였다.

이번 음반에 수록된 곡 중, 1945년부터 한 해 남짓 중국에 체류했을 때 만든 <추억의 꽃다발>이나 한국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6월에 발표한 <서울 야곡>은 자작 가수 현인의 그러한 음악 역량을 잘 보여준다. 곡을 만들어 본인이 직접 부르기도 하면서 다른 가수에게 곡을 주는 경우도 이따금 있었으므로, 작곡가라 불릴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어도 그가 그냥 노래 부르는 가수에만 머무르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944년 성보악극대 광고에 등장한 현인
 1944년 성보악극대 광고에 등장한 현인
ⓒ 매일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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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수록 곡을 통해서는 가사로도 현인의 작가적 면모를 살필 수 있다. 1940~50년대에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곡의 번안 가사를 현인이 직접 쓴 작품들인데, 요즘은 통상 <고엽>으로 알려져 있는 < Les Feuilles mortes >의 번안작 <낙엽>에는 현인이 쓴 가사와 영어 가사가 앞뒤로 나오고, 1950년대 맘보 열풍의 선두에 있었던 <체리 핑크 맘보>도 현인의 가사에 영어 가사를 일부 덧붙였다.

프랑스 샹송뿐만 아니라 <베싸메무쵸>, <꿈속의 사랑> 등 멕시코와 중국 곡까지 번안해 부른 현인은, 때문에 195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국제적 감각이 가장 뛰어났던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1930년대 말 일본 도쿄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광복 직전 중국 상하이에서 잠시 활동했던 그의 이력이 그러한 평가가 나온 데에 중요한 배경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CD 마지막 곡으로 수록된 <체리 핑크 맘보> SP음반 딱지
 CD 마지막 곡으로 수록된 <체리 핑크 맘보> SP음반 딱지
ⓒ 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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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 대한민국의 희망을 노래한 <럭키 서울>, 식민지 시절 강제동원의 아픈 흔적이 담긴 <고향 만리>, 전시에 만들어진 대중가요 중 단연 걸작으로 꼽히는 <굳세어라 금순아>, '한국 샨송'이라는 이채로운 표기로 발표된 시인 박인환의 유작 <세월은 가고(세월이 가면)> 등, 이번 음반에 선정되어 실린 노래 하나하나에는 한국 근현대사와 대중예술사의 다양한 모습들이 담겨 있다.

역사적 소재로 만들어진 이색 작품 <사육신>은 수십 년 동안 공개된 바 없다가, 유정천리 회원의 자료 제공으로 이번 기념 음반에 특별히 수록되었다. 현인이 직접 주연까지 맡았던 '최초 음악영화' <푸른 언덕>의 주제가도 작곡자 황문평이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한 음반이 파손되어 공개된 음질에 아쉬움이 많았는데, 복각 작업을 통해 훨씬 양호한 상태로 수록되었다.
 
'한국 샨송'으로 소개된 <세월은 가고(세월이 가면)> SP음반 딱지
 '한국 샨송'으로 소개된 <세월은 가고(세월이 가면)> SP음반 딱지
ⓒ 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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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천리에서는 현인 대표작 22곡 선집 음반 제작 발표회를 오는 13일 현인 22주기에 맞춰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개최한다. 발표회에서는 복각 음반 소개와 함께 현인의 노래 인생을 스물두 장면으로 재구성한 영상 쇼도 선보일 예정이다. 광복 이전에 사용한 일본식 예명, <전우야 잘 자라> 관련 의문, 기자로 활동했던 아버지 현명건의 일화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태그:#현인, #유정천리, #신라의달밤, #굳세어라금순아, #성보악극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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