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억울함이 깊으면, 그 이야기를 하고 또하게 된다. 상대방은 왜 똑같은 이야기를 자꾸 하느냐고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아주 '중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대화를 통한 해결이 되지않으니까. 자꾸 하는 이야기라도 또 들어주셔야 한다. 억울한 마음이 해결되지 않으면 억울할 필요없는 사소한 일에도 억울한 마음이 건드려지면서 더 크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깊은 상처로 인하여 억울한 마음이 한이 되어버린 아내, 갈등을 피하고 싶어 대화를 거부했던 남편, 70대 노부부의 가슴아픈 사연이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3월 25일 방송된 MBC 부부상담 <오은영리포트 결혼지옥> 69회에서는 '억지가 억울해 VS 말하기 싫어, 억지 부부'편이 그려졌다.
 
신남용-함혜숙 부부는 결혼 42년차 70대 부부로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었다, 아내는 구리, 남편은 아들이 있는 양평에서 주로 거주하며 생활패턴이 달라 일주일에 한번씩만 만나는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었다.
 
 MBC <오은영리포트 결혼지옥> 한 장면.

MBC <오은영리포트 결혼지옥> 한 장면. ⓒ MBC

 
결혼 42년 차 부부의 팽팽한 입장차이
 
부부의 일상이 VCR로 공개됐다. 아내는 사교적이고 활달한 성격으로 판소리 학원과 수영장을 오랫동안 다니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조용한 성격의 남편은 정년퇴직 이후 자신의 로망이었던 전원주택에서 주변의 간섭없이 한가로운 혼자만의 시간들을 즐기고 있었다. 남편은 양평 주택을 아내로부터 자신만의 '대피소'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사연을 신청한 아내는 대화를 할 때마다 남편이 억지를 쓰는 것을 참기 힘들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반면 남편은 아내의 공격적이고 화내는 듯한 말투 때문에 싸움이 벌어진다고 주장하며 팽팽한 입장차이를 드러냈다. 부부는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벌어진 말다툼이 큰 싸움으로 번진 일도 있었다.
 
아내는 반찬을 싸들고 양평에 있는 남편을 찾았다. 아내는 남편에게 먼저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하다가 과거의 서운했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편은 아내의 이야기에 내내 별 반응없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과거 이야기가 계속되자 급기야 자리를 피해버렸다.
 
남편은 "엄청 듣기 싫다. 아내는 과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면 전부 다 해야한다. 사람 진을 빼놓는 습성이 있으니까. 그래서 대화를 회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내는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인정하든 사과하든 끝을 봐야하는데, 그냥 남편은 입다물고 나가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싸우면 길어진다. 그러면 자기도 지옥. 나도 지옥이다"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현재 부부는 모든 생활을 따로할만큼 심리적으로는 사실상 별거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본래 건강했던 아내는 남편과의 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몇 년전부터 심각한 건강 이상을 겪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아내는 남편과 집안 족보정리를 두고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을 벌인 후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아서 뇌경색이라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아내는 "그땐 죽음까지 갔었다. 살고싶지 않았다"며 고통스러웠던 심경을 밝혔다.
 
이에 남편은 당시 아내에게 화를 냈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아내는 항상 자신과 생각과 고집대로만 하려는 성향이 있다. 아내의 생각도 맞지만, 저는 제 생각도 맞다고 본다. 아내가 내 생각도 이해해줬다면 말다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운 심경을 밝혔다.
 
오은영은 부부의 대화를 분석하며 "아내는 남편과 대화할 때 그냥 권유해도 될 이야기를 '왜 이렇게 했어'라는 식으로 자주 이야기한다"라고 짚으며 아내식 화법의 문제점을 짚어냈다. 아내도 "제가 지적을 많이 한다"라며 오은영의 분석에 수긍했다.
 
부부는 함께 있을때 아내가 먼저 자꾸 대화를 걸어도 남편은 대답을 하지 않고 거의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데 조용해보였던 남편은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혼자 제작진과 인터뷰하는 상황이 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아내는 직설적이고 깔끔한 성격으로 한번 결심한 일은 당장 해결해야만 했다. 아내는 저택 인근 비닐하우스 내부가 어수선하고 쓰레기가 쌓여있는 것을 참지 못하고 남편을 재촉하여 함께 정리를 시작했다. 남편은 자신만의 생각이 있음에도 일을 하면 한 대로, 안하면 안한대로 계속되는 아내의 잔소리 때문에 화를 참으려고 해도 한번씩 언성을 높이게 된다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오랫동안 부부 사이를 갈라놓은 갈등의 가장 심각했던 진짜 원인은, 시댁으로부터 받은 상처였다. 부부는 과거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편의 누나에게 큰 돈을 빌려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시누이는 돈을 갚지 않았고 그로부터 약 36년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날 아내가 채무 이야기를 꺼내자 시누이는 오히려 '언제 돈을 빌려갔냐'며 적반하장으로 화를 냈다고 한다. 아내는 돈을 갚지않은 것은 이해할수 있지만, 사과는 커녕 발뺌하며 삿대질까지 하는 시누이의 태도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자연히 남편과 시누이 남매간의 관계도 멀어졌다.
 
하지만 아내에게 더 큰 상처가 된 것은, 중재 역할을 해야할 남편의 태도였다. 아내는 남편의 억지 소리가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였다고 주장했다. 또한 남편이 '누나들을 못보게 된 것은 아내 때문'이라는 말을 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아내가 시누이들을 만나면 또 돈 이야기를 꺼낼까봐 만남을 기피하게 되었다는 것.
 
아내가 진정으로 바란 것은 시누이의 진심어린 사과였다. 아내는 "돈을 안갚아도 원수지고 의리없이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원한 건 가족들이 화목하게 지내는 거였다"라고 이야기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남편은 이에 대하여 "어린 시절에 누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이 정도는 누나한테 배려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 고마움에 아내의 마음을 챙기지 못했다. 내가 누나들과의 인연을 끊으면 아내도 누나들과의 좋지않은 기억을 떠올릴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남편의 해명에 아내는 오히려 한숨을 쉬며 답답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오은영은 "아내가 이야기하는 남편의 '억지소리'를 정확한 표현으로 하면 '경험했던 억울한 일'이다.라고 정의했다. 오은영은 " 아내는 분명히 돈을 빌려줬는데 상대가 부인하면 아내는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리는 게 돈보다도 굉장히 억울했던 거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때 남편이 했어야 하는 이야기는 먼저 아내의 입장을 인정해주고 그 다음에 사정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 남편의 이야기에는 '당신이 잘못한 건 없어'라는 대목이 빠져있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부의 사전 심리검사에 따르면 아내는 가족과 가정사에 무심한 남편의 태도에 오랫동안 상처를 받아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시어머니와 시누이와의 관계에서 받은 심리적인 상처와, 이를 보듬어주지 못한 남편에 대한 원망이 컸다. 아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내 평생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남편과 행복하고 사는 것"이라는 소원을 밝힐만큼 여전히 남편에 대한 마음도 깊었다.
 
남편은 아내의 말투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게 과연 자신의 심리적 문제인지 걱정했다. 남편은 자율성이 낮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연대감이 높은 성향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작 가족구성원들간이 관계에서는 공감능력과 관심이 부족해보인다는 진단을 받았다. 남편은 어릴때부터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고 정년퇴직 이후로는 아내와 아들로부터 핀잔을 받으며 가장으로서의 자존감이 매우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남편은 아내와의 대화를 피하는 이유에 대하여 "한번 대화를 시작하면 과거에 서운했던 일들을 한참동안 계속 말한다. 또한 아내의 말투가 화를 내는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 대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큰 소리가 튀어나가고 싸움이 된다. 저도 이걸 어떻게 고칠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답답한 마음을 호소했다.
 
이에 오은영은 "아내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게 되는 이유는 그만큼 억울한 마음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계속 들어줘야한다. 그렇지않으면 앞으로도 사소한 일에도 억울한 기분이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지막 VCR 영상 속 놀라운 반전

그런데 마지막 VCR 영상에서는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부는 모처럼 외식을 나가서 둘만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런데 아내는 외식을 나간 자리에서 갑자기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부부는 그토록 오래 결혼생활을 했음에도 그 흔한 외식조차 함께 나가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아내는 "결혼 42년간 남들 오붓하게 외식하는게 왜 그리 부러웠는지 모르겠다"그간의 설움을 쏟아냈다.
 
그동안 말이 없던 남편은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속마음을 고백했다. "그동안 당신에게 고생 많이 시켰고 잘못한 거 안다. 항상 미안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말을 못했다. 그동안 잘못한 일들을 모두 인정하고 사과하고 싶다"면서 진심을 전했다. 처음으로 마주한 남편의 억지가 아닌 진심 어린 사과에, 아내도 감동하여 다시 한번 오열했다.

아내는 "만감이 교차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몇십년 만에 처음 들었다"고 고백하며 "여태 살아온 게 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자상하게 변하기는 힘들겠지만 지옥까지는 안 가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며 남편에 대한 애정을 에둘러 표현했다.

오은영은 남편의 노력을 인정하며 "사람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0에서 100이 되겠나. 노력하고 애써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부부에게 "아내에게 중요한건 '화내지 않았음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아내가 화를 내지 않았다고 하면 그 말을 바로바로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아내도 남편이 억지소리를 한다는 생각이 덜 느껴질 것 "이라고 당부했다.

부부를 위한 힐링리포트가 내려졌다. 오은영은 구리와 양평으로 각자 주요 활동범위가 분리된 부부를 위하여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고 되도록 간섭하지 않을 것'을 제안했다. 두 번째로 아내에게는 '상대에게 먼저 고마움을 표현하고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것'이라는 대화의 팁을 전했다. 또한 정년퇴직 이후 마땅히 할 일을 찾지 못하여 외로움을 느낀다는 남편을 위하여 새로운 삶을 위한 적극적인 준비를 제안했다.
 
노부부는 그동안의 앙금을 털고 손을 맞잡으며 새로운 출발을 기약했다. "앞으로는 잘할게"라고 쑥스러운 미소 뒤에 진심이 담긴 고백을 전하자, 아내도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대기실로 돌아온 부부는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앞으로 더 노력해나갈 것을 다시 한번 다짐했다.
결혼지옥 오은영 부부상담 억지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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