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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 태안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이 열립니다. 약자에게 더욱 가혹한 기후위기, 해고와 지방소멸을 막아내고, 모두가 함께 사는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이뤄내기 위해 충남의 노동자와 시민이 함께 330 충남행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향한 충남의 노동자, 시민의 목소리를 알려내기 위해 오마이뉴스 연속기고를 진행합니다. 3월 30일, 태안에서 만납시다![기자말]
최종현 학생사회주의자연대, 스튜디오R 활동가
 최종현 학생사회주의자연대, 스튜디오R 활동가
ⓒ 정의로운전환을위한충남노동자행진 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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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 특정 지역과 업종만의 일 아니다

대학생이 돼 서울로 거주지를 옮기기 전까지, 필자는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나 한평생을 보냈다. 고향집이 있는 주교면 은포리 한전 사택촌에서 벗어나 해변가를 향해 자전거를 밟다보면 금세 능선 너머 신보령 1·2호기가 위용을 드러낸다. 오늘날 보령시는 해수욕장과 머드축제 등 관광산업으로 유명한 지역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령시가 관광산업 이상으로 화석연료 산업에 크게 의존해 온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보령시는 한때 충남 최대의 탄광인 성주광업소의 소재지였으며, 오늘날에는 약 5000MW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가 매일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석탄산업과 흥망성쇠를 함께해온 보령시는 임박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앞에서 극심한 고용불안과 지역소멸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2020년 보령화력 1·2호기 폐쇄를 기점으로 보령시 인구는 10만 명 선이 무너졌다. 2026년 보령 5·6호기 폐쇄를 포함해 나머지 화력발전 설비들도 2036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될 예정이다.

발전노동자들의 재고용을 보장하고 지역사회 붕괴를 막을 대책이 절실하지만, 지자체·국가·발전사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고 있다. 지역에서 일터와 삶터를 찾지 못한 청년들은 대안의 구심이 되는 대신, 다른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길을 택한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에너지 전환은 발전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령시는 수십 년 전 성주광업소와 석면광산의 폐쇄로 이미 한 차례 몰락을 경험했다. 노동자들이 떠나며 폐광촌이 된 성주면에서는 더는 과거의 번영을 찾아볼 수 없다. 석면광산이 있었던 청소면의 석면 피해자 발생률은 전국 평균의 977.3배에 달한다.

갈수록 극심해지는 기후재난은 끝내 지역의 존립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난 30여 년간 한반도 연안 해수면은 10cm가량 상승하고, 지구 전체의 평균 해수면 상승 속도는 1990년대에 비해 2배 이상 빨라졌다. 전 지구 평균 해수면 온도 역시 지난해 4월부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유의 해양생태계를 바탕으로 지역사회를 지탱해온 어업 등의 1차산업, 관광산업은 기후재난 앞에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
 
위험의 외주화 반대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요구하는 발전노동자들
 위험의 외주화 반대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요구하는 발전노동자들
ⓒ 정의로운전환을위한충남노동자행진 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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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의 위기는 노동과 자본의 역관계 속에서 더욱 극명해진다. 2018년 자본의 일방적인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는 대량해고와 원도심 붕괴를 불러왔다. 실직과 지역소멸에 대한 공포는 인접 지역이자 같은 업종으로 연결된 보령으로까지 퍼져나갔다.

2021년 10월, 보령 한국지엠 변속기 공장에서 19년을 일해온 40대 노동자가 동료 작업자도 없이 홀로 일하다 설비에 끼어 숨졌다. 고인은 혼자서 10대가 넘는 기계 설비를 운전하고 점검하는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군산공장 폐쇄의 여파 속에서 자본이 원하는 물량을 채우지 못하면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내팽개쳐질 것이라는 압박이 작업장 내부에 조성됐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작동이 멈추지 않은 설비 속으로 몸을 던질 것을 강요하는 현장, 그 앞에서도 고용과 소비를 의존해 온 일터와 산업이 사라질까 두려워 아무런 저항도, 대책도 제시하지 못하는 길들여진 지역. 이 앞에 '김용균' 그리고 '김용균들'의 현장이었던 태안과 보령은 얼마나 다르단 말인가?

전 세계적 기후재난은 어느 특정 지역, 특정 산업만을 상대로 하지 않는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생태계를 무한정으로 파괴할 수 있는 생산체제, 이윤을 거스른다는 이유로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외면하는 행동이 용인되는 체제 아래에서는 어떤 지역, 어떤 사업장도 기후재난의 최전선이 될 수 있다.
 
"절망할 바에야 정신나간 희망을 품겠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924 기후정의행진 참여자
 "절망할 바에야 정신나간 희망을 품겠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924 기후정의행진 참여자
ⓒ 사회주의를향한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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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부정의에 맞선 학생운동 리부트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에서 새로운 전망을 찾자


오늘날 학생들에게 기후정의운동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가속하는 기후위기 속에서 이대로는 자신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청년·청소년 세대들이 기후운동에 함께하고 있다. 지난 9.24 기후정의행진, 9.23 기후정의행진 등 '자본주의 생산체제의 종식'을 외치는 대중적·변혁적 기후정의행동에 동참하며 연대를 표명하는 학생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대학가에서도 기후의제는 다른 운동 의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동의지반과 참여를 형성하고 있다. 최근 대학 노학연대·여성·인권 단위에서 기후정의운동은 급진화와 함께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극단적인 기후에 대처할 수 있는 노동권·주거권·에너지기본권의 중요성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이는 학생들이 체감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기후위기는 코로나19 이후 학생운동에서 다소 침체돼 있던 의제를 꺼낼 수 있는 계기로 작동하고 있으며, 의제들 사이에 놓인 장벽도 허물고 있다.

이렇듯 기후정의운동은 학생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실천의 상은 여전히 모호하다. 체제의 변화를 갈망하면서도 구체적인 실천은 텀블러와 플로깅으로 대표되는 체제 내적 캠페인에 머무르고 있다.

청년·학생을 '기후유권자'로 호명하는 일각의 움직임은 청년·학생을 기후정의운동의 주체로 앞장세우는 대신, 이들 개개인을 의회정치에 동원될 표 하나로 환산시키고 있다. 1년에 한 번 거리에 모여 행진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을 넘어 자본과 정권에 두려움을 줄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아야 할 때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후위기의 주범인 자본과 맞서 싸울 힘이다. 노동자는 자본과 직접 대립하는 유일한 계급이자 이윤 창출을 중단시킬 능력을 갖춘 유일한 계급이다. 노동자와 생태계를 모두 살릴 수 있는 '정의로운 전환'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생산만을 수행하는 민주적 계획경제를 통해 실현할 수 있다. 그 길에 있어 노동자는 참여와 거버넌스의 대상을 넘어 전환의 주체로 앞장서야 한다.

충남노동자행진은 한국 최초로 노동자들이 제안한 기후정의운동이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기후위기 앞에 학생과 노동자의 생존권을 기후정의로 묶어낼 노학연대가 절실하다. 발전노동자뿐만 아니라, 산업전환을 앞둔 금속노동자, 사모펀드에 장악당한 준공영제 버스노동자, 노동자 산업통제를 요구하는 모든 노동자가 기후정의운동의 주인공이 될 때 기후위기는 해결할 수 있다.

충남노동자행진은 그 첫걸음이 돼야 한다. 기후정의는 알아서 쓰이지 않는다. 청년·학생들도 3월 30일 충남노동자행진에 함께 모여 기후정의운동의 역사를 새로 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종현님은 학생사회주의자연대, 스튜디오R 활동가입니다.


태그:#기후위기, #기후정의, #산업전환, #석탄화력발전, #정의로운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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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발전은 멈춰도, 우리 삶은 멈출 수 없다! 누구도 홀로 남겨지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충남의 노동자와 시민들이 함께 모여 330 충남행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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