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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4년 1월 25일부터 스페인을 여행하여 쓴 글입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지중해 지역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여행기를 통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스페인에서 국경을 넘어 포르투갈 리스본을 향해가다 보면 도로 양옆으로 상수리 나무와 비슷한 울창한 숲이 연이어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코르크 재료를 채취하는 나무다.

포르투갈은 코르크의 최고 생산국이다. 코르크는 흔히 와인 병마개로 쓰이는 것을 볼 수 있지만 다양하게 가공하여 사용한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이 나무는 코르크 채취를 위해 나무 둘레가 벗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2년가량 되면 다시 복구된다고 한다.

들판은 낮은 구릉지대가 펼쳐지고 올리브나무와 같은 과수들도 보이지만 그렇게 생산성 있는 대규모 농장은 안 보인다. 들판은 그렇게 왠지 조금은 빈약해 보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차를 타고 가면서 가이드가 들려주는 포르투갈 민속음악 '파두(Fado)'의 다소 느리고 한이 느껴지듯 가슴을 파고드는 듯한 음조는 스페인과는 다른 분위기를 갖게 한다.

파두는 운명이나 숙명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포르투갈의 암울했던 역사를 반영하듯 향수와 동경, 슬픔과 같은 포르투갈 특유의 정서가 담겨 있다. 파두는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처럼 1968년까지 36년간 독재정치를 하였던 살라자르 대통령이 일종의 우민화 정책(3F정책)으로 권장하여 육성한 음악이라고 한다. 당시 암울한 시대를 반영한 듯 노래 곡조는 쓸쓸함 같은 것이 배어있다.

지리적으로 유럽의 남서쪽 끝에 자리하고 있는 포르투갈, 축구선수 호나우드 외에는 이렇다 할 것이 떠오르지 않는 나라다. 오래전에도 그랬지만 유럽의 변방 국가와도 같은 곳이다. 지중해 연안 국가이지만 스페인에 막혀 지중해와도 인접하지 못하고 외톨이처럼 자리하고 있다.

여행을 통해 마주하는 포르투갈은 스페인에 비하면 그렇게 화려한 것들이 없다. 그러나 세계사를 통해 접하는 포르투갈은 대항해 시대의 서막을 열어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나라로 기록되고 있다.

인구 1천만명 가량의 작은 국가인 포르투갈, 하지만 15세기에 가장 먼저 대항해 시대를 열어 전 세계에 식민지 국가를 건설하며 서구 유럽이 세계사를 주도하게 만든 선도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면 놀랐다. 1488년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쿠다 가마의 인도항로 개척은 그만큼 기념비적인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은 포르투갈 인구의 약 30%인 3백만명이 몰려 살고 있는 도시로 대항해 시대에 대서양으로 향하는 관문 역할을 한 곳이다. 리스본을 가로질러 흐르는 타구스강이 길게 내륙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 강 하구를 가로질러 바스쿠다 가마 다리가 건설되어 이 다리를 건너면 리스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며 시내에 진입한다.
 
15세기 당시 약1백만 가량의 포르투갈이 세계곳곳에 식민제국을 건설하며 대항해시대를 연것은 미스터리라 할 수 있다.
▲ 포르투갈 리스본 대항해 기념탑 15세기 당시 약1백만 가량의 포르투갈이 세계곳곳에 식민제국을 건설하며 대항해시대를 연것은 미스터리라 할 수 있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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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을 여행하면 가장 많이 가는 곳이 리스본 시내에 있는 대항해 기념탑과 벨렝탑 그리고 제로니스 수도원이다. 그리고 다시 유럽의 서쪽 끝 호카곶을 들른다.
이들 유적은 모두 대서양을 통해 대항해 시대의 서막을 연 것과 관련 있는 곳이다. 새로운 세계를 찾아 떠나는 출발지이자 다시 돌아오는 시작과 끝의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사를 통해 포르투갈이 대항해 시대의 서막을 연 것은 미스터리한 사건 중에 하나로 꼽고 있다. 15세기 무렵 유럽에는 여러 강대국들이 있었지만 당시 인구 1백만명 가량의 포르투갈이 어떻게 전 세계에 식민지 국가를 건설하며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결과일 수도 있고 새로운 세계를 향한 탐험정신이 이룬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중세시대까지 지중해 동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지중해 서쪽의 끝은 낭떠러지가 있어 더이상 갈 수 없는 곳이라는 세계관이 있었는데 그 세계관을 뛰어넘게 한 것은 바스코다 가마를 비롯 포르투갈 출신 탐험가들이었다. 바스코다가마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보다 더 빠른 1488년 인도로 가는 길을 발견하는 신기원을 이룬 것이다.

리스본 대항해 발견 기념비

리스본 시내 산타마리아데벨렝의 타구스 강가에는 대항해 시대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있다. 이 기념비는 1960년 준공되었는데 기념비의 맨 앞쪽에는 엔히크 왕자가 지휘관처럼 서 있다. 흔히 항해왕자라고 하는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서아프리카와 대서양 탐험을 이끌고 지원한 인물이다.

이 기념비에는 바스쿠다가마를 비롯해 동쪽 부분에 16명, 서쪽 부분에 16명 등 대항해에 참여한 인물들이 조각되어 있다. 당시 항해에 참여한 인물들을 보면 탐험가, 행해사, 선교사, 작가, 화가, 지도제작자, 수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새로운 세계를 정복하고 이를 실현하려는 준비가 철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리스본 대항해 기념탑과 마주하고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대항해를 기념하여 지은 건물로 대표적인 인물인 바스코다가마가 안장되어 있다.
▲ 리스본 제로니무스 수도원 리스본 대항해 기념탑과 마주하고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대항해를 기념하여 지은 건물로 대표적인 인물인 바스코다가마가 안장되어 있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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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 발견기념비와 마주하고 있는 곳에는 대항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있다. 1502년에 건축된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포르투갈 건축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이 수도원은 리스본 대지진 때에도 피해를 보지 않고 건재하였다고 하여 건축적으로 아주 잘 지어진 건물임을 알 수 있다.

1497년 바스코 다가마와 그 일행들이 인도로 출발하기 전 머물렀던 곳에 1499년 이들이 돌아오자 귀환을 기념하기 위해 마누엘 1세가 수도원을 지었다고 한다. 이 건축을 위해 막대한 건축비가 들어갔는데 건축비의 상당 부분은 동양에서 수입해 오는 향료에 매긴 세금으로 충당했다고. 신항로 개척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스페인 세비야 성당에 있는 콜럼버스 관처럼 이 수도원에도 바스코 다가마의 묘가 안장되어 있다.

유럽의 땅끝 호카곶
 
서유럽의 땅끝인 호카곶은 땅의 끝이자 바다의 시작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곳이다.
▲ 유럽의 땅끝 호카곶 기념탑 서유럽의 땅끝인 호카곶은 땅의 끝이자 바다의 시작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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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투갈에서 유럽의 서쪽 끝이자 대서양을 향한 시작점임을 알 수 있는 곳이 호카곶 일명 까보다로까(Cabo da Roca)다. 리스본에서 서쪽으로 약 30여 분 달리면 신트라의 남서쪽에 호카곶이 있다.

이곳에는 1772년 처음 운행한 등대가 세워져 있고 바닷가와 면한 곳에 그다지 크지도 않고 돌로 만들어져 더욱 친숙하게 느껴지는 작은 돌탑이 있다. 그 끝이 갖는 상징성 때문인지 조그마한 시골 마을 같은 곳에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이곳이 땅의 끝이자 시작임을 상징하게 만든 것은 돌탑에 새겨진 글귀 때문이기도 하다.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서사시인 카몽이스는 이곳을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라 칭송하였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제주도와 무척 비슷한 분위기라고 말하는데 마치 제주도 해안가의 올레 코스를 간 것처럼 시원한 바닷바람과 망망대해 대서양을 보는 풍광이 일품이다.

인상적인 것은 그 일대를 가득 덮은 키 작은 선인장 일종의 다육식물이 만발하게 피어 마치 야생화 들판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호카곶 일대에는 다육식물이 꽃을 피워 장관을 이루고 있다.
▲ 호카곶 일대 활짝핀 다육식물 호카곶 일대에는 다육식물이 꽃을 피워 장관을 이루고 있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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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포르투갈, #리스본, #대항해시대, #엔리케, #바스코다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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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활동과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녹우당> 열화당. 2015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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