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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춘삼월 봄이 왔다. 주말마다 꽃 잔치 구경 가는 지인들의 발걸음이 부산하기만 하다. 매년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활짝 꽃 피우는 군산의 벚꽃잔치도 바로 코앞에 와 있다. 요 며칠 꽃샘추위로 꽃봉우리 입을 열었다 닫았다, 때를 기다리는 봄꽃들을 보며 군산으로 오는 또 다른 봄의 문을 찾아나섰다. 바로 바닷가 어판장 경매시장이다.

군산은 누가 뭐래도 항구도시다. 금강하구의 물결이 도도히 흘러 서해바다에 이르는 길 위에서는 늘 크고 작은 어선들이 즐비했었다. 평생 어부셨던 친정아버지의 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군산의 중심에 고기잡이 배와 경매장이 있었다. 군산경제의 주축이었다.

근대작가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서 그려지는 째보선창의 초입에 있었던 어류경매장. 여자가 선창에 나오면 안 된다고 하셨던 아버지 말씀따라, 제대로 그 모습을 기억할 순 없다. 하지만 고등학생 시절, 어느 해던가, 만선으로 아버지의 배가 들어온다는 소문이 퍼져, 엄마와 함께 처음 나가본 경매장과 아버지의 웃음을 잊을 수가 없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들어서면 당시의 인기 어종이었던 조기와 갈치, 병치 등이 경매장에 놓여졌다. 싱싱한 물건을 사겠다고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경매를 주도하는 경매사 아저씨의 이상한 암호같은 소리는 아직도 그때를 술렁거리게 한다. 또 둥근 넓적한 대야를 들고 한쪽에 줄지어 남은 생선들을 담아가던 투박했던 손길도 기억난다.

"군산은 얼마나 좋은 곳인가. 월명산 벚꽃도 좋지만, 쌀밥처럼 떨어지는 꽃잎 마시며 새벽이슬 내린 해망굴을 지나 어판장으로 갔던 말랭이마을 어른들의 모습이 봄 아닌가. 가보세."

군산의 봄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니, 남편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솔깃해졌다. 다행히 어판장 근처에서 오랫동안 해산업에 종사하는 벗 덕분에 새벽 경매장으로의 발걸음은 흥이 났다.

올해 군산의 첫 일출을 마주한 어항 입구에서 새벽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어판장 쪽을 바라보니, 수백마리의 갈매기떼들이 나란히 입항한 배들의 깃발 곁을 맴돌고 있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배, 철로 만든 철선의 무게는 100톤. 학생 시절 보았던 그 배의 위용이 참 대단하다 할 정도로 커 보였는데, 정박한 배들이 평균 80~90톤인데도 왠지 작은 배처럼 느껴졌다.
 
군산근해어선의 입항을 환영하는 갈매기 홍어를 실어온 어선들을 맴돌며 어부들에게 인사하는 갈매기들
군산근해어선의 입항을 환영하는 갈매기홍어를 실어온 어선들을 맴돌며 어부들에게 인사하는 갈매기들 ⓒ 박향숙

선원들이 배 위에서 나머지 일들을 정리하며 담소를 사이사이마다, 갈매기떼들의 울부짖음이 마치 군산의 어선 성황기를 생각나게 해서 어찌나 마음이 훈훈해지던지... 한참동안 그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여러 칸으로 나눠진 경매장에는 각기 다른 어종들이 제 몸값을 받기 위해 경매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홍어가 기다리는 칸으로 들어갔다.

"아이야 아이야 아이야... 다섯 마리 두 개! 세 마리 다섯 개!"

경매인이 불러주는 숫자는 알아듣겠는데 그 소리를 받아 다시 말하는 또 다른 경매아저씨의 '아이야' 소리는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나중에 벗에게 물어보니, 일종의 노래가락 추임새 같은 역할을 하는 말이라고 했다.
 
군산의 참홍어경매장 900여 상자의 참홍어가 새벽을 열고 달려나가 주인을 만났다
군산의 참홍어경매장900여 상자의 참홍어가 새벽을 열고 달려나가 주인을 만났다 ⓒ 박향숙
 
자고로 '홍어하면 흑산도 홍어가 최고지'라고 했던 아버지 말씀. 이 홍어들도 그곳에서 온 것인지 옆 사람에게 물어봐도 모두가 경매꾼 장단에 몰두하느라 대답도 없었다. 나도 역시 노래가락 같은 그 소리에 저절로 발이 들썩거리고 흥이 났다.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은 오른손을 왼쪽 겉옷 속에 넣고 손가락으로 숫자를 말하고 있었다. 이날 들어온 홍어의 숫자는 약 900상자 정도라고 했으니, 아마도 총 숫자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요즘 다른 물가도 비싸지만 홍어의 몸값도 조금 비싸서 소매하진 않았다.

최근 군산의 특산품 하면 떠오르는 어종은 박대다. 그런데 군산이 전국 최대 홍어생산지로 부상하고 있다고 했다. 그 옛날 홍어의 아성지 흑산도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고, 이제는 홍어가 군산의 효자 어종이 되었다고 했다. 군산시 수협에 따르면 2021년부터 한 해 포획량이 1천톤을 넘어서고, 홍어잡이 배가 10척 이상 등록돼 조업한다는 말도 들었다.

30여 년 전, 정부에서 내린 어선 감축 계획에 따라 아버지의 배 역시 그 대상이 되어 어선사업을 정리했었다. 군산 근해업종인 안강망 어선이 싹쓸이 감축은 군산의 경제를 휘청하게 만들었고, 그 후 오랜기간 동안 항구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리게 했던 것을 기억한다.

오랜만에 들은 군산 어선들의 활황소식에 마치 내 아버지일인양 기뻤다. 배 안에서 사진 찍는 나를 바라보는 어부들의 모습에 손을 흔들면서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흔쾌히 수락해서 '고생 많으셨어요'라는 감사의 인사가 절로 나왔다.

비싼 홍어대신 갑오징어와 고등어를 사서 친정엄마께 아침 안부를 올렸다. 수선스럽게 갑오징어를 손질하여 버섯을 넣고 부침개 한 장을 붙이며 둥그런 아침밥상을 챙겼더니 엄마의 한 말씀이 나온다.

"아침부터 우리 딸이 주는 밥상을 받아보네. 김서방이 가자고 했고만~~"
"엄마, 오랜만에 어판장가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기분도 좋아지고 그러네요. 참 그때가 좋았어요. 우리집 배가 만선으로 오색깃발 흔들며 들어오던 때가 생생하고만요."


아무래도 홍어를 사다가 엄마의 홍어무침 맛을 봐야겠다 싶다. 새콤 달콤하고 쫄깃쫄깃한 참홍어의 맛. 버릴 것 하나도 없는 홍어. 3~4월 홍어의 풍미가 군산의 봄을 부르니 어찌 그곳에 빠지지 않을 쏜가. 여러분! 군산홍어의 맛 좀 보세요. 미끼를 활용하여 포획 시 상처가 없고 깨끗하게 신선도 최고로 입항하여 판매된다고 하네요.

#군산해망동#홍어어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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