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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승의 본령은 선비이자 학자이며 시인이다.

4월 혁명기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그는 학문적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그의 시심도 줄어들지 않았다. 풍부한 시심은 1961년 5월에 두 번째 시집 <심장의 파편>(일조각)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그동안 틈틈이 쓴 시를 모아 묶은 시집이었다.

서문에서 온통 분통 터지는 삶을 살아온 그에게 '꿈'이라는 붕대가 버팀목이 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썼다.

유년기는 너무 어려서 이런 줄 저런 줄 몰랐지마는, 소년기 이후로 오늘날까지 반세기 나마를 내려오며 시원한 꼴이라곤 조금도 보지 못하고 살아왔다. 시원하지만 못하였을 뿐 아니라, 속이 상할 대로 상하고, 열이 터질 대로 터지며 지내왔다. 구역이 나고, 울화가 치밀고, 분통이 터지는 일만 수없이 겪어 왔다.

만일 나의 심장이 금속이었다면, 다시 주워 모아 붙일 수 없는 조각조각의 파편으로 흩어져 버렸을 것이다. 또는 희망을 말년에 그리는 '꿈'이란 붕대가 없었다면, 모아 붙인 파편들도 도로 터져서 산산조각으로 풍비박산이 되었을 것이다. (주석 1)

시집에는 서정시도 있지만 1950~60년대 초 한국 사회의 모순과 실상을 투시한 서사시도 적지 않다. <다방>이라는 시에서는 당시 도심에는 한 집 건너 하나씩 있을 만큼 즐비했던 다방에 대한 세태를 지적한다.
도쿄제국대학 유학 시절 김수경은 정해진, 이희승, 김계숙과 교류했다. 이희승의 회고에 따르면, 조선인 유학생은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도쿄제대에서 김수경과 함께 공부한 김계숙(金桂淑)은, 훗날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장(1962~1968년)을 지낸다. 사진 왼쪽이 김수경이다.
▲ 1942년 도쿄제국대학 도서관 앞에서 이희승과 함께 도쿄제국대학 유학 시절 김수경은 정해진, 이희승, 김계숙과 교류했다. 이희승의 회고에 따르면, 조선인 유학생은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도쿄제대에서 김수경과 함께 공부한 김계숙(金桂淑)은, 훗날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장(1962~1968년)을 지낸다. 사진 왼쪽이 김수경이다.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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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

밀수품의 처방도 여기에서
탈세의 '빠게인'도 여기에서
건곤일척
정상배의 거래도 여기에서
가다가는 애정의 선을 디디고 넘어
일생의 운명도 흥정하는 자유시장

나체보다 투명한 매끄러운 각선
하이힐에 얹혀 맴도는 '레지'들
찻잔도 지탱하기 어려운 위태로운 지점

돌아간다
온종일 돌아만 간다

성층권을 넘지 못하는 듯 다방 안에서만

몰매미마냥 돌아간다
어제도 오늘도 돌아만 간다
염량세태를 곁눈질 해 가며
내일도 모래도 돌아만 가리. 위와 같음.

1956년에 <문학예술>에 발표했던 <송년부(送年賦)>는 현실에 대한 예리한 감성이 잘 드러나는 시다.

송년부

고개를 넘어선 새 안계(眼界)의 낭활(朗闊)이
만화경처럼 눈앞에 펼쳐 있었노라
허나
시시하고 멋없는 시간이
바삭바삭 가랑잎 같은 시간이
깐깐스럽고 빡빡한 시간이
후줄근하여 흐늘흐늘한 시간이
건드렁거려 가눌 수 없는 시간이
밍밍하고 짐짐하고 덤덤한 시간이
건건하여 지린내 나는 시간이
퀴퀴하고 쿠렁쿠렁한 시간이
울컥! 구역나는 시간이

마치
바람이 불리는 책장마냥
후루룩 날아 넘어갔다
세월의 한 자락이 또 날아간다.

아니 나의 생명의 한 자락이
이끈둥 미끄러져 달아나 버린다. (주석 2)


주석
1> 이희승, <심장의 파편>, 일조각, 1961.
2> 위와 같음.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딸깍발이 선비 이희승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이희승, #이희승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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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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